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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Jun 23. 2024

자신의 아픔을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

가만히 있어도 아픈 사람이 알아서 찾아오는 곳은 병원, 그리고 약국이다. 나는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약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현재 나의 상태가 어떤지도 알지 못하지만, 약사님을 도와 처방전을 입력하고 재고를 정리하고, 계산하고, 매입 전표를 입력하는 등등의 일을 한다. 면접에 통과한 후, 인수인계를 맡은 선생님(우리는 약국에서 '쌤'이라 불린다, 혹은 아가씨……)께 물어보았다. '제가 약을 잘 모르는데도 여기서 일할 수 있을까요?' 그때 '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저도 1년이나 되었는데 약의 효능에 관해서 잘 몰라요. 그건 약사님만 알고, 우리는 그냥 보조할 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약은 무조건 약사님이 내주셔요.' 


나는 출근하면 화분에 물을 주고, 주변을 청소하고, 먼지를 닦고, 처방전을 입력하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인사를 크고 명랑하게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처방전을 들고 오지 않은 분들은 어떤 일로 오셨는지, 무슨 약이 필요하신지 물어보고, 그에 맞게 약(흔히 밴드, 감기약)을 대충 찾아놓는 것도 몫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엔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몰라 허둥거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조금은 적응이 되어 약국을 찾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할 정도는 되었다. 


매일 아픈 사람들을 만난다. 몸이 아파 예민해진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인사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다. 약국 근처에는 이비인후과, 피부과, 성형외과, 통증의원, 치과가 있다. 감기, 알레르기, 다리 통증, 치아 통증을 겪는 이들이 대부분 방문한다. 나는 성형외과라고 하면 외모를 바꾸기 위한 무언가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약국에서 일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장난치다 넘어져 눈 주변을 꿰매고 온 아이, 축구하다 넘어져 봉합하고 온 아이, 음주운전 차에 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치지 않고 몇 바늘을 몸에 새긴 사람, 걸어가다 톡 튀어나온 돌에 걸려 앞으로 넘어져 턱을 다친 여성, 이런 분들이 성형외과를 다녀온다. 


나는 특히나 아픈 것에 관한 통증 공유 감정(?)이 너무나 뚜렷하게 발달해서 이렇게 덕지덕지 밴드를 붙이고 방문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같은 부위가 막 아파온다. 그들은 서슴없이 나에게 자신이 아픈 곳의 부위를 보여준다. 멍들고 찢어지고, 부어오른 상처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는 큰소리로 '약사님!' 외칠뿐이다. 그들이 갈 때면 '안녕히 가세요, 빨리 나으세요.' 등의 인사를 건넨다. '또 오세요!'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약국에서 자주 봐서 좋을 건 없으니까. 


늙은 노인이 들어섰다. 옆으로 메는 가방은 지퍼가 열려 있었는데 그 안엔 기계들이 가득했다. 그는 드레싱 밴드를 찾는다고 했다. 그것은 내가 찾아서 드릴 수 있는 것이었기에 약국 제일 뒤에 자리한 진열대로 향했다. 


"어느 정도의 크기를 찾으세요?"


묻자마자 그는 상의를 들어 올렸다. 상처를 보여주었다. 가방에 잔뜩 넣어진 기계의 줄이 그의 몸을 전부 관통하고 있었다. 그 위에 드레싱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이 정도의 사이즈를 찾는데요."


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에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려면, 자꾸 그의 상처를 보아야 했는데 볼 때마다 명치가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방수도 되고, 크기도 여러 가지 혼합된 드레싱 밴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건강하시라고 답했다. 그가 가고 나서 나는 계속 떠오르는 그의 가방과 그의 상처를 생각했다. 자신의 상처를 서슴없이 보여주는 사람은 그 말고도 많지만, 그냥 그것 하나가 걸렸다. 혹시 순간적으로 나의 표정이 굳어지진 않았을까, 놀란 표정을 보고 그가 속상해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들을 때,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미간을 아주 잠깐 찌푸렸다가 금방 풀어버린다. 누군가가 아픈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힘들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의 아픔에 빗대어 나의 행복의 정도를, 그러니까 나는 아직 저 정도 아프지는 않으니까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노력은 쉽게 통했다. 쉽게 통한 이유는 간단했다. 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속 안에 있는 어떤 덩어리를, 암을, 물혹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약을 먹으며 낫기 위해 노력한다.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한다. '아파야 죽지, 안 아프면 죽나!',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픈 이들은 약사님께 약을 받으며 그렇게 말한다. 힘이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포기하는 사람은 여태 보지 못했다. 그래, 그렇다. 나는 언젠가부터 천천히 걸어 자신의 아픔을 짚어주는 곳에 갔다가 다시 그에 맞는 약을 타러 이곳에 오는 발걸음의 무게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대한 그들을 밝게 반기고, '안녕하세요!', 그 후 모든 처방이 끝나면 말한다. 


조심히 가세요, 건강하세요, 천천히 가세요, 잘 챙겨드세요. 그러면, 그저 무표정으로 나가던 이들도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본다. 고개를 꾸벅 숙이곤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다. 약국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나는 다른 아픈 사람을 기다린다. 자신이 아픈 곳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서슴없이 보여주며, 아픈 것에 관련해 이겨내려 마음먹은 사람들을. 그리고, 곧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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