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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Mar 04. 2024

뜨거운 것을 먹고 시원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았어요

카페에서는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아주 추운 겨울날에도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수한다. 하지만, 얼마전에, 그러니까 마음까지 너무 차가워졌을 땐 처음으로 카페에서 바닐라라떼 그것도 따뜻한 것을 주문해보았다. 매일 가는 카페라 직원분들과 사장님까지 나를 아는 상황에서, 내가 새로운 메뉴를 시킨 것이 소소한 이슈가 되었다. 오늘은 왜 바닐라라떼를 먹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그것이었고, 오늘은 좀 따뜻하고 달달한 것을 먹고 싶었다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그냥 웃기만 했다. 


바닐라라떼를 받아 제일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바닐라라떼엔 적절한 거품과 흰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먹기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얼른 몸을 녹이고 싶고, 마음도 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모금 마셨다. 천천히 몸이 녹기 시작하고, 따뜻해졌다. 나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절대로 차가워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여름에는 물론 뜨거운 것보다 차가운 것이 훨씬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낀다. 왜 어른들이 뜨거운 것을 먹고 시원하다고 하는지를. 


뭔가 뜨거운 것을 목으로 넘기는데 시원함이 느껴졌다. 알 수 없었다. 그날은 좀, 여러모로 힘든 날이었다. 내 글을 처음부터 쭉 읽어오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나는 공황과 우울증을 달고 있었고, 그런 것들이 몸으로 표출되는 날에는 늘 집밖에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종일 누워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무기력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섰다. 도착한 곳이 카페였다. 카페에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슬쩍 들으면서, 글의 소재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다. 오늘은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이어폰을 착용한다. 착용하기 전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요즘 일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둥, 부동산을 얼른 매입해야 한다는 둥, 땅을 사야 한다는 둥, 투자, 돈, 일, 직업, 그리고 서로의 애인에 관해 친구에게 부산하게 떠드는 이들. 


모두가 고민이 있다. 카페에 조금만 앉아 있으면 세상 모든 고민을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희한하다. 하지만, 정말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민을 토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답이 미리 정해진 경우가 있기도 하고, 상대의 말을 통해서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며 도움을 얻는 경우들도 많다. 거나하게 술을 마신 이들이 큰 목소리로 떠들기도 한다. 그들도 다 고민이 있다. 자신들이 또 언제 만날지를 궁금해하고, 서로의 건강을 염려한다. 또 보자고 이야기한다, 또 보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걱정, 걱정, 고민, 고민. 


나는 그날 무엇때문에 마음이 시렸더라? 아무튼, 어떤 일이 있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종일 멍한 상태였고(아마 일 아니면 글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나에게 다른 고민은 사실 없다), 생전 안 먹었던 핫 바닐라라테를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넘길 때처럼의 시원함을 느낀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나는 갑자기 문득, 핫 바닐라라테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가끔 엉뚱한 생각은 머리를 환기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다시 상상에 빠진다. 그냥 핫바닐라라떼처럼 달달하면서 따뜻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싶다. 


내가 우울증이나 공황을 앓고 있다고 말하면 그걸 들은 이들의 표정은 심히 당황스러워진다. 자신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면 너무 고맙지만, 그걸 하나의 병처럼 생각하고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은 오히려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든다. 내가 그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몸이 좀 좋지 않을 때인데, 내가 상대방의 말에 잘 동조하지 못하거나 반응이 느리거나, 행여나 공황이 오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놀라지 말고,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조금만 나에게 시간을 달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그들이 나를 평소처럼 대하지 않고 뭔가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조금 부담스러워진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탓하는 것은 아니다, 걱정해주는 건 너무 고맙다)


나는 나를 그렇게 대하는 이들에게 차갑게 군 적이 있었다. 그냥 두면 돼. 네가 걱정할 거 아냐. 내가 알아서 약 먹으면 조금 있으면 풀려. 이런 식으로……. 어쩌면, 그들의 호의를 무너지게 만든 셈일 수도 있다. 내가 조금 더 따뜻하게 반응했다면 어떨까. 고마워, 걱정해줘서 고마워, 내가 미리 그런 상황이 온다 싶으면 말할게, 그때 나 좀 도와줘. 그러면, 내 상태에 관해서 말하는 것도 쉬울 것이고, 상대도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우울증이라고 해서 매일 방안에 틀어박혀있고, 시니컬하게 구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나는 비록(?) 우울증, ADHD, 공황장애를 모두 안고 있는 사람이지만, 더는 차갑게 굴지 않으려 한다. 내가 따뜻하게 이것들을 품으면, 이들도, 그리고 상대에게서도, 나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따뜻함일 것을 안다. 


뜨거운 해장국을 먹고 시원하다! 소리치고 싶다. 속이 풀리는 기분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요즘엔 속이 꼬일 때로 꼬였다. 그러나, 나는 매듭을 억지로 풀려고 하지 않고, 천천히 풀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구간부터 느슨하게. 오늘 마음이 답답하신 분들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번 해보시거나, 발을 담궈보시길. 아니면, 뜨거운 물이나 차, 커피라도 한 잔 드셔보시길. 그리고, 마음으로 외쳐보자.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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