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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Mar 06. 2024

일부러 아프고 싶어서 사랑니를 뺐다

분명 욱신거리는 통증은 있었다. 그러나, 그 통증을 제대로 보아주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미 다른 아픔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성이 없고, 뭐랄까, 주기적인 고통도 없는 우울증은 계속 나를 좀먹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계속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걸 가만히 두면 더 커진다! 이걸 가만히 두면 내가 더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계속 이것만 보고 있자! 더 커지는지, 더 아파지는지! 언제 나를 잡아먹을지 모르니까 계속 쳐다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더 발전하지도 말고 우울증을 지켜보는데 신경쓰자! 라고.


그래서 결론은? 더 우울해졌더랬다. 더 우울해지고, 더 힘들어졌다. 우울을 지켜보느라, 힘이 빠졌다. 우울은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더 힘이 세지고, 더 우울해지는 것만 같았는데 그건 우려가 아니라 진짜였다. 우울은 내가 보고 있을 때만 자랐는데, 내가 하루종일 그걸 보고 있으니 우울감은 더 짙어지고 깊어졌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면…… 파업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잠깐 쉼!을 외친 것인데. 마침 일을 하는 곳도 없고 했으니, 쉴 수 있는 여유는 충분할 듯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글도 안 쓰고(지금은 쓰고 있지만, 나는 이런 변화를 반갑게 생각한다, 적어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니까!), 읽지도 않고, 그냥 잠오면 자고, 한껏 게으르면서, 나를 방치하고 싶었다.


방치. 이건 내가 우울증을 극도로 느낄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내가 나를 방치하는 건 하나의 방법이다. 우울증에서 깨어나는 나만의 방법이랄까. 계속 나를 방치해두면, 언젠간 내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싶다던지, 글을 읽거나 쓰고 싶다던지 하는 그런 소소한 것들이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떡하는가, 일단은 참는다. 그 마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때까지 참는다. 샘몰처럼 퐁퐁 솟아나서는 안된다. 더 많이 쏟아져야 한다. 그때까지 참다가, 참다가, 지금처럼 마음이 동할 때 쓰거나 뭔가를 읽으면 훨씬 집중력이 커지고, 마음이 후련해진다.


나는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아픔, 그러니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아픔이나 고통이 싫어서 '이유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예전부터 살짝 욱신하던, 언젠가는 빼야했던, 왼쪽 밑 사랑니를 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사랑니를 뽑았기 때문에 아프다. 사랑니 때문에 아프다. 그러니까, 사랑니가 나에게 준 햄스터 같이 부은 볼과 아픔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카페에 나갈 것이고 일을 할 것이다.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진짜 빨리 낫고 싶고, 왜 생고생이냐 싶지만, 효과가 좋다. 아무튼, 나는 지금 '사랑니 때문에 아프다'.


참 무식하고 단순한 방법이지만, 나는 나를 다루는 방법을 어느정도 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이게 뿌듯함을 느낄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괜찮다. 그리고, 이제 남은 사랑니는 하나다. 오른쪽 밑 사랑니. 아직, 한 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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