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한 Mar 12. 2024

나는 그저 우울할 뿐이고,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드디어 실밥을 뽑았다. 사랑니가 있었던 자국은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잇몸이 다 아물지 않았으니, 당분간 음식을 먹을 때 조심하란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부터 이비인후과에 가 콧물과 기침, 가래에 관련한 치료를 받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여태 쓴 소설을 손에서 떠나보낸 후, 약간은 후련하고 약간은 섭섭한 마음으로 택시에 올랐다. 치과로 향했다. 그저, 이 가라앉는 기분을 가만히 두고 싶었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는 끊임없이 말을 한다. 내가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아가씨, 만나서 반가워요, 방가방가!'를 외친 아저씨는, '추워요? 추우면 말하세요. 원래 히터 틀면 50만 원씩 받는데, 오늘 화요일이잖아요. 화요일은 공짜예요.' 하신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대답한다. '제가 운이 좋았네요, 그런데 춥진 않아요. 괜찮아요.' 아저씨는 자신의 말이 재미없느냐 묻고, 나는 재미있다고 답한다. 그 이후로 둘 다 말이 없다. 신호는 끊임없이 붉게 물들고, 택시는 달리지 못한다. 나는 얼른 치과에 가고 싶다. 


치과에서 우산을 잃어버렸다. 아끼던 우산이었다. 가볍고, 색이 예뻐 좋았다. 그런데, 그 우산을 누군가 가져갔다. 내가 치료를 받는 사이, 가져갔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나올 땐 비가 오지 않았다. 우산은 우환이라고 하던데. 어둡게 내리는 비를 대신 맞아줘서 우환이 가득한 물건이라던데. 누가 내 우울과 우환을 가져간 걸까? 그런데, 완전히 가져가지는 않은 것 같다. 우산이 가벼워서 그런가, 아주 가볍게 내 우울을 가져간 누군가는 오늘 기분이 어떨까? 나는 잇몸에 새살이 차오르는 것처럼, 빈 우울의 자리를 다시 채우는 새로운 우울을 느끼며 카페로 향한다. 


내가 쓰는 우울의 글, 하루의 글을 읽고 친구가 말했다. "넌 매일 우울하니?" 그래서 나는 답했다. "은은하게 우울해." 그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그래, 그럼 가끔 안부 물을게. 넌 매일 우울하고, 글 쓰느라 바쁘니까 메시지에 답하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쓰일 거 아니야. 답장 안 해도 돼. 대신 다음엔 네가 먼저 나한테 안부를 물어줘." 나는 그러겠다고 답한다. 친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나를 배려해 줌에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우울할 뿐이고, 우울하다고 말할 뿐이다. 나는 우울함을 말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우울하니 너는 나를 아껴줘, 나는 오늘 우울하니까, 내 기분에 맞춰줘, 나는 오늘 우울해, 그러니까 너 내 기분을 풀어줘. 뭔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그저 우울해서 우울하다고 말할 뿐이고, 그걸 글로 배출할 뿐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내가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우울할 뿐이고,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 내 우울은 내 것이고, 내가 품고 가야 하는 단어다. 숨겨야 할 생각은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그저 우울하다고 말할 뿐인 것인데, 사람들은 당황한다. 나는 그들이 나를 그렇게 볼 때부터 우울증을 앓으면서, 이상한 글을 쓰는 예술병 걸린 30대 여성이 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우울할 뿐인데. 


"네가 그런 글을 씀으로써 더 우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네 글을 읽는 사람들은 우울하지 않았는데, 네 글을 읽고 우울해지지 않을까?" 그런 물음에 나는 답한다. "내 글을 읽고 우울해지는 사람은 또 내가 달래주면 돼. 사람들은 다 우울을 밑바닥에 두고 살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끔 멍해진다. 정말 내 글 때문에 우울한 사람이 있을까? 내 글을 읽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바라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을 쓰는 것이다. 나는 더더욱 우울하다고 크게 외칠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이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는다. 나를 웃겨주길 바라지도 않고, 나와 함께 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딱 하나 바란다면, 굳이 바란다면, '혼자 우울하지 말고, 같이 우울'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묻힌 말을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 내 마음의 모양은 다르게 빚어질 수 있으니. 당신의 마음에 내 지문이 있었으면 좋겠고, 나의 마음에 당신의 지문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다다. 전부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에 글방을 열어본다. 혹시나 마음이 동하는 분들이 있다면, 시간이 되는 분들이 있다면, 관심 가져주시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