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은 것을 보거나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며칠 동안 앓는다. 소화되지 않고 몸 어딘가를 자꾸만 떠도는 이미지 혹은 언어의 메아리에 머리가 울리거나 이명이 들릴 때도 적지 않다. 자주 아픈 것에 관해 사람들은 쉽게 말을 얹는다. 운동을 좀 해.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뭘 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그럼 나는 생각한다. 운동은 내 나름대로 조금씩 하고 있고,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뭘 하려고 하는 건 나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런 당연한 것으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라고.
동물을 사랑하지만, 동물을 학대하는 영상을 보지 못한다. 그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부풀어 올라서 숨 쉬지 못할 지경이지만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말로, 누군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 속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말은 흘려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귀를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듣고 속을 게워내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내가 자라오면서 수없이 겪은 어떤 것들이고, 나는 이것이 맞다거나 맞지 않다는 것으로 나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어떻게든 맞는 쪽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러고 싶기 때문에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본다. 분명, 나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로도 나는 그전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고 믿을 뿐이다.
요즘에는 생각이 바뀌고 있다. 조금 더 현실을 직시하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인간에 관해 가장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했던 나는, 마찬가지로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의 어떤 부분을 마주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될까 봐 걱정되어 인간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생명을 무자비하게 다루거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놓은 이들의 행위를 보면 또 며칠 앓아누울 것이 걱정되어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도망치다가, 도망치다가, 나는 나만의 굴을 파게 되었고, 거기서 조용히 속삭이던 것을, 아직 일어나지도, 어쩌면 영영 일어날 일도 없는 일에 관련해서만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태껏 이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한순간에 내가 무언가를 직시하는 힘을 얻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요즘 잠에서 자주 깨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깨서 아침의 동이 틀 때까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잘 보아야겠다', '이제부터는 잘 들어야겠다',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정도로. 어떤 것이든 알아야 거기에 관해 무엇 하나라도 더 얹을 수 있으니. 나의 말에 큰 무게감이 없더라도, 용기 있는 누군가가 낸 큰 목소리와 큰 목소리들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이라도 메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잊지 않고 자주 웅성거리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알려주었다. 무한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언제까지나 무한할 것이지만, 유한한 순간을 잠시 스쳐가는 우리는, 서로의 상황을 분명히 직시할 수 있으므로. 보았으면 모른 척하지 말아야지. 들었으면 대답해 줘야지. 싶었다. 에너지를 잘 분배하는 일에 관련해선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에너지를 잘 나누고, 잘 비축하면서 힘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아니 굳이 힘이 아니라 위로라도, 포옹이라도, 말 한마디라도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나를 나눠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