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때, 나는 매일 다르게 답한다. 어느 날은 타이타닉, 또 어떤 날은 어바웃 타임, 또 어떤 날은 영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덧붙이는 영화는 '토이스토리'이다.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는 그야말로 명작이다. 3D 애니메이션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는 그런 류의 훈훈한 영화를 보면 눈물을 뚝뚝 흘리곤 한다. '인사이드 아웃'이나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들도 무척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꼭 '사람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 관한 답도 늘 다르게 한다. 어떤 날은 그렇지요, 어떤 날은 아니요, 저는 사람 때문에 살아가고 자극받고 글을 쓴답니다, 대답한다.
'토이스토리'는 많은 이들이 아끼는 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그 영화를 보며 자라온 나와 같은 동년배들은 영화에 나오는 각각의 주인공 서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앤디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들은 앤디가 잠을 자거나 집이 비워져 있을 때 각자 살아 움직인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의 상태를 살피기도 한다. 그들을 아우르는 대장은 보완관 인형 '우디'다. 이 장난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날은 앤디의 생일, 크리스마스와 같이 선물이 제공되는 날이다. 앤디가 받는 대부분의 선물은 장난감이므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신상 장난감에 밀려 자신이 침대 밑이나 장난감 박스 저 밑에 처박힌다면? 그 생각으로 벌벌 떨며 그날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장난감들의 마음이다.
그러나, 늘 일은 벌어지고 만다. 앤디는 생일날, 그 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로봇 장난감인 '버즈'를 선물 받는다. '버즈'는 자신이 장난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광고에서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한다. 자신은 어느 행성에서 왔으며, 우주선이 불시착하는 바람에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언젠가 다시 저 광활한 우주로 가야 한다고. 그 말을 듣는 '우디'는 어이가 없다. 자신들은 그저 아이들의 한 순간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일 뿐인데, 저토록 허망한 생각을 갖고 있다니.
둘은 자주 다른 생각에 부딪힌다.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다양한 장애물을 거뜬히 넘어서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서로의 생각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장면, 그러니까, 내가 상대로 인해서 조금은, 아니 어쩌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하게 되며 변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띤다. 사실, 영화가 아니면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날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를 우습게 보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 보라고 만들었는데, 어른들이 더 많이 보고 우는' 영화를 보고 열광하는 이유는. 언젠가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고,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오는 눈물이 아닐까.
내가 이 영화에서 꼽는 명대사는,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라고 외치는 버즈의 대사다. 버즈는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믿는다. 가슴팍의 버튼을 누르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날개가 양쪽으로 촥 펼쳐지는데, 버즈는 당연히 이 날개로 하늘을 날며 세상만사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질 리 없다. 우디는 그게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난감 로켓에 몸이 묶여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그 순간, '버즈' 공기를 가르며,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잡는다. 그때, 버즈에게 안긴 우디는 말한다. "버즈, 너 지금 날고 있어!" 그럼 버즈는 말한다. "이건 나는 것이 아니야, 멋지게 추락하는 거야."
멋지게 추락. 추락이 멋질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한 번, 아니 몇 번 정도는 삶에서 미끄러져 추락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계단 한 칸 정도의 높이에서도, 63 빌딩 높이에서도, 우주에서도 떨어져 본 적이 있다. 추락할 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좀 우습다. 떨어지지 않으려, 떨어지는 중임에도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 자신이 참. 안쓰러워서 말이다.
사람들은 가끔 '무한한 공간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곳은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 맞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을 벗어나면, 저기까지만 가면, 내가 세운 어떤 선을 통과하면, 내가 세운 울타리의 담을 훌쩍 넘는다면, 나는 분명히, 분명히 무한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늘 강조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서. ……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유한한 존재일 뿐이라서, 아직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간 다음에 돌아와 거기가 참 괜찮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당신은 '무한한 공간 저 너머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에 기꺼이 다가가고 있는가? 아니면, 애당초 걸음을 멈춰버렸나. 걷는다는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한 가지 요소가 확실하기에, 나는 당신이 어디든, 어디로든 걸었으면 한다. 멈추고 싶을 때까지. 귀에서 들리는 멈추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곧장 뇌로 속삭이는 말을 들을 때까지는, 계속. 유한하게. 유한하게. 자신의 걸음걸이 속력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