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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Oct 27. 2024

마음에 불이 났을 땐 어디로 전화하는 것이 좋을까요

나 홀로 한 생각인데, 우리에게 있어 '마음' 그러니까 '감정'을 조장하는(나는 '마음'이란 곳에서 '감정'이 퐁퐁 솟아오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부위는, 우리 몸의 중심, 뭐 아주 중심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중심인, 명치 혹은 단전 쪽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면, 아주 다양한 것들을 줄줄 말할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읽는 분들이 공감할만한 한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더 쉬울 것 같다. 우리가 '마음'이 상하거나, 아니면 그곳에 어떠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 몸의 반응에 대해서. 우리 몸은 일단, 아프다. 아프고, 힘이 없고, 무기력하고, 그렇게 되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운동을 할 기력도 없을 것이다. 음식을 먹더라도 소화시킬 힘이 없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기력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순환과 반복인 셈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우습게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마음은 생각보다 아주 빠른 회복력을 지녔기 때문이랄까.


나는 우선 '마음'이 힘들어지거나, 그곳에 상처를 받거나, 그곳이 무거워지면(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다), 몸부터 늘어지게 된다. 한숨을 굉장히 많이 쉬거나 물을 끊임없이 먹는 것도 '마음'이라는 기관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때 생기는 일이다. 괜히 명치 쪽을 만져보기도 하지만, 꽤 단단한 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사랑과 사람에 관한 에세이를 쓰다 보면,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로 마음이 상한 일에 대해서 쓰게 된다. 마음이 아프고, 상하고, 쓰리고, 다치고 하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다시금 늘어놓는 과정은 아주 지겹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장을 만들거나, 그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상황으로서의 무언가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를 특별히 미화하거나, 혹은 그를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만들진 않는다. 오직 사실만을 적어도, 그 사실 안에서 풍기는, 그러니까 나의 입장에서 숨겨놓은 무언가는 나의 글을 읽고 나의 입장에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가끔 맡아내곤 한다. 


사람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나 혼란은 모두 그 크기가 다르고 모양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나누면서 공감이란 걸 한다. 나는 그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결국에, 그 어떤 누구도, 심지어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도, 나의 문장을 읽고는 자신의 지나간 사랑을 더듬다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상대에게 보내려 했던 어떤 마음을 나에게만 슬쩍 보이곤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분의 상처를 예고 없이 들춰낸 것에 관해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탓하지 않는다. 나의 상처를 먼저 보여줬기 때문에, 그들도 쉽게 자신의 상처를, 혹은 흉터를 더듬을 수 있었을 테니.


물을 자주 마시고, 한숨을 자주 쉴 때면, 나는 내 마음에 불이 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나는 글을 쓸 때, 마음이 답답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마음에 불이 났다' 혹은 '마음에 불을 얹은 듯'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실제로 마음에 불이 붙은 적은 없으나, 나는 가끔씩 나의 몸속에서 일렁이는 어떤 불씨를 느낀다. 


방 안에 작은 캔들이 있다. 어느 날은 그것을 켜놓고, 한참 바라봤다. 사람들이 왜 '불멍'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작은 불꽃은 비록 유리 안에 갇혀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뛰쳐나오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춤을 추는 두 사람, 혹은 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 몸짓을, 저 유연한 움직임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불을 바라봤다. 현란하고, 정말 빠져들게 만들고……,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저런 불꽃이, 저렇게 작은 불꽃이라도, 어쨌든 저런 움직임을 가진 무언가가 내 속에 들어있으면, 적어도 가만히 앉아있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무언가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남게 마련이므로. 나는 아직 나의 까맣게 탄 속을 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치유하는 마음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끊임없이 한숨을 쉬고 물을 마신다. 그것이 속으로 들어가 불을 끄는데 작은 도움을 분명히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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