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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Oct 27. 2024

나를 스쳐간 유한한 존재들에게

유한할지도, 혹은 무한할지도 모르는 이 세계 안에서 나를 스쳐간 모든 유한한 존재를 다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무한히 기억되는 일은 전혀 없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요즘 하루하루를 가만히 보낸다. 누군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오래 기억되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망각'이라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누군가 나를 잃는 것, 잊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잊혀가는 것. 혹은 내가 누군가를 잃거나 잊는 것 모든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슬펐던 것, 다시 만날 수 없는 누군가의 존재에 마음 아파했던 것이 서서히 잊혀 갈 때 나는 행복했던가, 두려웠던가? 그저 그때 나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에 매달려 슬퍼하기에만 급급했던 듯하다. 여전히, 죽음이란 것은 익숙하지 않고 누군가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익숙하지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예전처럼 답답하거나 조급하지는 않다. 두렵지도 않다. 


유한한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뭘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더 가벼워지고,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훨씬 더 가벼워진다. 나는 내가 특별하고, 나를 잘 알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금의 의심은 들지만, 적어도 남이 나를 말로 해하려 할 때, 똑같이 말로 나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솔직히 말해서, 잊 남이 하는 말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할 자유가 있고, 나에게 이야기할 자유가 있다. 나는 그것을 듣지 않을 방법은 없지만, 들은 후에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정말 쓸데없이 느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약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최대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정말 단단하고, 정말 특별하다고만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어쩌면 그전부터 조금씩 깨닫고 있었던 듯하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득이 된다. 그렇지만, 너무 거기에 얽매여 있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조급하게 된다. 하나하나에 모든 의미를 다 가져다 붙이면서 행여나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느라 조급한 와중에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허우적거리지 말고, 그냥 흘러가자. 나를 구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바다 중앙에 둥둥, 혹은 불어난 물에 휩쓸려 가더라도, 허우적거리지 말고 그냥 한번 흘러가보면, 뭐 어떻게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죽음으로 인해서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도 있고. 그건 또 가봐야 아는 일 아닌가, 뭐 그런 생각들. 꼭 날씨 탓이 아니더라도, 희한하게 나는 꼭 이맘때쯤 한 번씩 생각의 탈피를 겪는다.


나를 스쳐간 유한한 존재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순간에 마주친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서 모르고 지나친 존재들도 많겠지.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나는 그저 지나가는 어느 존재일지도 모른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지만, 어쨌든 나를 스쳐간 유한한 존재들에게 나는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전하고 싶다. 유한하게 존재하는 나의 순간에 잠시나마 동행해 주어 고맙다고. 내가 용서해야 하는 이들도 있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이 무한한 세계에서 아무 의미가 없으니. 


아무쪼록 유한할 때까지는, 행복하게 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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