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라는 것의 크기에 관련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내 몸, 그러니까 손가락 끝이나 발가락 끝과 같은 모든 부분까지 저릿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야말로 온몸 가득한 충만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감정은 딱 내 몸만큼의 크기라고 칭할 수 있겠다.
요즘은, 그런 충만한 기분을 느껴본 지가 꽤 된 듯하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나는 가끔 다른 세계로 빠져서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기에 온전히 집중하여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꼭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은 아닐 것인데, 나는 그동안의 모든 행위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며 꼭 무언가를 해야 하고, 느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러한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씩 모여 뭉치게 되면서 나의 어딘가를 틀어막고, 망가지게 만들었으리라. 그것의 부작용은 조급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난 왜 이렇게 느리지, 난 왜 이렇게 하지 못하지, 난 왜 이렇지. 이런 생각들은 충분한 어떤 감정이 되지 못한 찌꺼기가 만들어내는 망상이 아닐까 싶다. 나는 늘 그 조급함에 망가졌지만, 지금에서 드는 생각은, 그리 조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시간 계산을 잘못한 경우에는 지각하기 일쑤다. 가끔 나는 지각하지 않기 위하여 아예 일찍부터 서두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가 나의 길을 가로막을 확률이 높을 것을 가정하여,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오후 느지막이 약속이 있더라도 오전부터 길을 나서는 편이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오직 그 약속만을 위해 그 지역을 방문했을지언정, 낯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허기를 달랠지언정, 늦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되면 약간 체력이 많이 떨어지긴 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충만하다. 일단, 늦을 거라는 조바심이 사라지고, 내가 어떻게든 여기에 지금 현재 존재하기 때문에 약속을 제대로 잘, 그것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이러한 작은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은 우리가 잘 흘러가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조급함도 물론 필요할 때가 있겠다. 마감이 정해진 어떤 일에 있어서 차분히 진행하는 사람이 있고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 직전까지 서두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통, 마지막에 서두르는 사람들은 갑작스레 영감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것이 참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끙끙 앓아야 하는, 좋게 말해서 예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급함'이라는 것을 조금은 다른, 그러니까 나의 상황에 맞는 '조급함'으로 바꿔내고 있다.
나는 꾸준히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고, 앞으로도 읽을 것이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급해할 필요가 하등 없을 것만 같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나에게 맞는 삶의 태도를 조금씩 유지하고픈 생각이 든다. 그게 누군가에게 미련해 보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미련해 보이는 게 사실, 뭐가 중요하겠는가?
감정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정확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다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감정은 그것이 생겨나는 그 순간에는 유한하다. 화를 내는 것을 생각해 보자. 화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하루 정도 자고 일어나면, 화가 난 그 순간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게 그 감정을 바라보거나 그 감정에 관련해서 놓친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정말 유한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겪은 지 오래된 감정이지만, 그때를 떠올렸을 때, 마치 지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는 경우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감정은 무한한 것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정이 유한한 것인지 무한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감정이 유한할 수도 있고, 무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감정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것을 남겨두고, 어떤 것을 흘려보낼지를 결정함에 따라서, 어떤 것은 유한함이 되고 어떤 것은 무한함이 된다. 아주 유한한 존재로 살아가면서, 내 마음에 담아주는 감정은 결코 무한할 수 없겠다. 그러니, 우주적(?) 시간으로 보았을 때 아주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생을 사는 우리는, 유한함으로써 우리에게 좋은 작용을 하는 감정을 마음에 심어 살아가는 동안이라도 꽤 괜찮은 인간으로 살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