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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Oct 22. 2024

'역시 글 쓰고 읽는 사람은 다르네'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여태껏 내가 만든 테두리 안에서 나를 키워왔다. 그 둘레가 얼마나 넓고 광활한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그것이 원의 형태라면(그게 아닌 다른 형태이더라도), 나는 중앙이 아니라 어떤 방향의 끄트머리에 바짝 붙어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중앙으로 가서 멋지게 활개치고 돌아다녀도 모자랄 판에 자꾸 그 끝, 어느 선에 부딪히면서 나를 재단하고 있다는 소리다. 사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중앙으로 갈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직은'. 이 말은 나를 재단하기에 충분하다. 아직은 나를 작가라고 부르기가 조금 애매하고, 아직은 내가 꿈을 이뤘다고 말하기에도 조금 애매하고, 아직은 내가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그것이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재단하고 있다. 내가 나를 쉽게 재단하기 때문에, 쉽게 막아서기 때문에, 사람들도 곧잘 나를 그 어떤 미안함이나 죄책감없이 쉽게 막아설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서른의 초반이었다. 목구멍이나 명치에 꽉 들어찬 답답함의 형태를 눈으로 볼 수 있어야만 겨우 숨을 쉬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 형태로 쓰는 글이었지만, 매일 눈치 보며 사는 주인의 습성에 따라 그것은 그리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자꾸 문장을 빼먹었다. 쓰지 않고 먹은 문장은 명치에 꾹꾹 얹혔다. 그래서 일기를 써도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의 마무리를 하게 해주는 하나의 순서가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의 시작이 되었다. 썼던 일기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도 내용이 매일 같았다. 1년 전에 쓴 일기를 보아도 마찬가지로 방황, 우울, 등의 어둑한 단어가 가득했다.


그즈음, 아무래도 솔직하게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글의 장르는 '사랑'이었기에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문장이 막히는 일은 없었다. 문장은 애매했다. 지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처럼 보이지만, 다른 시점에서 읽었을 땐 헤어진 연인을 교묘하게 응징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은 문장을 썼고, 그렇게 쓴 글들이 하나의 얇은 책으로 묶여 독립출판물이 되었을 땐 이것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우겼다.


나와 관련한 글은 매번 똑같은 이야기여서, 나는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가만히 있을 때마다(사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매번 머릿속을 울리곤 했던 여럿 상상을 문장으로 썼다. 지구가 멸망하거나, 인간이 사이보그화 되거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거나, 지구상에서 홀로 남은 마지막 해녀가 그들을 대체할 인공지능과 만나게 되는 내용, 그런 걸 썼다. 주인공은 늘 무언가 하나가 부족했고, 그와 상응하는 인물은 주인공이 가진 것만 빼고 다 가졌으며, 주인공을 도와주는 친구들은 세상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크게 다치기도 하며 주인공의 각성을 도왔다. 


소설을 쓸 때는 흐릿했던 상상의 장면이 조금은 선명해진다는 느낌에 행복했다. 그렇게 애썼던 것이 누군가에게 읽혀 '꽤 괜찮았다'라는 평을 받거나, 조금 더 나아가서 상을 받게 되었을 때는 더없이 기뻤다. 그러나, 공허했다. 아주 살짝. 나는 곧, 내가 '상상'이라는 단어 아래 내가 정작 쓰고 싶었던 어떤 문장을 또 빼먹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내 몸 어딘가에서 또 문제를 일으켰다. 답답하고, 나아가지 않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쓰는 걸까?', '나는 무엇을 쓰려하는 걸까?' 고민에 빠졌을 때, 주변 지인들은 내가 하는 고민이나 뱉는 말을 들으며 참지 않고 외쳤다. "역시 글 쓰는 사람은 다르네! 달라! 말하는 것부터가 다르잖아!" 


그 말은……. 나의 모든 회로를 차단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말을 하기가 어려웠고, 쓰는 것도 미루게 되었다. '아직은' 그리 대단한 작가가 아닌데 술기운이 잔뜩 묻은 웃음과 더불어 나를 '쓰는 사람' 혹은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밉고, 민망했다. 가슴에 불을 얹은 듯 온몸이 후끈거렸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면,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겸손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사람에 관해서,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내가 보기 싫어하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직시하며 글을 공부하고 쓰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나는 입을 닫아버렸으므로 이 문장은 음성화되지 못했다. 아주 무한한 이 세계에서, 누군가가 만든, 어떤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 속절없이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와 내가 닿고 싶은 것 사이를 막는 막이 정말 얇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은' 그것을 뚫을 힘이 없는 듯하다.


너무나 무한한 공간에 갇힌 유한한 존재로 살면서, 나는 내가 언제 그 막을 뚫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반면에,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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