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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Apr 27. 2020

월요일을 대하는 자세

양말과 할머니에게서

2019년 12월 말, 전 회사 송년회를 하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편지 한 통과 양말 하나씩을 선물했다. 실용적인 선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양말 묶음을 대량으로 사주기도 했다. 실용적인 선물, 이라 하면 나는 양말을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매일 신고 다니니까 빨리 헤져서 금방 사야 하기도 하고, 세탁기가 먹은 건지 아니면 집에 나 모르는 블랙홀이 있는 건지 꼭 한 쪽만 사라져 버리는 양말. 그러한 나의 삶을 바탕으로 남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양말을 자주 선물했다. 


양말 브랜드가 한국에 있을까, 하고 찾아보다 알게 된 브랜드인데 이름이 독특하고 귀엽다. '아이 헤이트 먼데이'.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 다가오는 게 너무 싫어서, 브랜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너무 공감되지 않은가. 월요일 때문에 울적한 기분을 달래주는 건 아침에 만나는 양말이라고 인터뷰한 사장님. 사장님에게 지금의 월요일은 어떤 지 다음번에 또 가게 되면 여쭤봐야겠다 싶다. 월요병은 잘 극복하셨을까. 그곳에서 산 양말 덕분에 나의 월요일 또한 덜 울적한데 말이다.


'아이 헤이트 먼데이' 양말을 신고 설에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작지만 옹골찬 우리 할머니. 까불거리는 손녀를 익살스럽게 받아주는 것부터 말 많은 것까지. 나는 정말 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게 확실해. 할머니랑 밥상 앞 끝도 없는 수다를 떨다 할머니가 요즘 마을 회관에서 요가 선생에게 요가를 배운다고 하셨다. 아니 이 시골에, 버스가 몇 대 다니지도 않는 곳에 할머니들을 위한 요가 선생님이? 믿을 수 없는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자 요가를 시작한 뒤로 올라가지 않던 오른팔이 올라간다며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오른팔을 길게 들어 보이셨다. 어머, 진짜네, 신기하네. 매주 월요일. 동네 어르신들 스무 명 남짓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요가 수업을 받으신다고 한다. 너무 귀여워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상상만 해도 너무 귀엽다. 파마 똑같이 한 할머니들께서 요가 매트를 펴고 열심히 요가 자세를 따라 하시는 모습이라니. 배꼽 빠져라 밥상에서 웃어대자 내 모습이 웃겼는지 할머니도 결국 낄낄대신다.


“예순 하나야, 강사가, 아주 젊어”


아 너무 웃겨. 지금 쓰면서도 웃겨. 우리 할머니 왜 이렇게 웃긴 거야? 생각해보니 할머니 입장에선 열 살 넘게 어린 강사였다. 충분히 어리게 느껴질 만도 했다. 


“들기름 두 통이나 줬어."


할머니는 직접 들깨를 키워서 들기름을 만드신다.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는 들기름이라 할머니는 매번 들기름을 짤 때면 자식에게 나눠주신다. 그 귀한 걸 우리에게 나눠주시고, 본인 드시는 거 조금 아껴 그 젊은 요가 강사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


“왜 줬어요, 그 귀한 거를 두 통이나”
“팔이 이게 쑥 올라간다니까 그래?”


왜 줬냐는 말에는 답을 안 하고 올라가지 않던 팔 얘기만 하시는 할머니. 옆에 있던 고모가 우리 엄마 월요일만 보고 살아 아주, 하며 웃는다. 우리 할머니는 월요일이 좋은가보다. 난 싫은데. 그래서 이 양말 신고 온 건데. 할머니에게는 '아이 라이크 먼데이'라는 양말을 선물해야 하나. 할머니가 월요일이 좋다니까 나도 오늘은 월요일을 좋아해 보기로 한다. 월요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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