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들 Dec 30. 2023

아가씨, 차에 뭐 문제 있어요?

올해만 긴급출동 두 번, 싼타페에게 사과한다.

자동차보험 긴급출동 첫 번째

  

> 게으름의 변명은..

 일이 치여 매일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던 주무관은 밤 11시가 넘어 예열해 놓은 주차장 차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도 꼴찌로 회사문을 닫고 시동을 켰다. 방전된 몸으로 1분이라도 빨리 도착하려고 늦은 밤 악셀을 꾹 밟았는데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다. 너도 배고프구나. 늦은 시간이라 가는 길에 있는 주유소는 문을 닫았고 주유소를 찾자니 내 몸이 방전될 것만 같다. 마이카와 스스로 합의하고 집에 도착해 씻고 누우니 다음날이다. 몸은 누우려 하고 출근하는 발걸음은 관광지의 낙타처럼 느릿하지만 지각하지 않기 위한 운전스킬은 누구보다 탁월하다. '어제 60km 남았을 때 주유등이 켜졌으니까 출근까지는 가능하겠지?' 3차선에 길게 늘어진 차를 하나 둘 제치고 2차선을 시원하게 달리다가 간격이 벌어진 틈으로 쏙 들어간다. 얌채같지만 이해해 달라며 비상깜빡이를 2초 켜는 동안, 마음속으로 사정없이 두 손을 비볐다. 두 번의 주유할 기회를 외면하고 회사 주차장에 골인하자 출근을 축하한다는 폭죽과 환호성이 터졌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출장 준비를 했다.


 주유 후에 출장지로 이동하려고 회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유소로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속력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주유소 앞에서 차가 서버렸다. 이럴 줄 알았어. 미련하게. 혼나도 싸고 욕먹어도 싸다. 당황해서 차밖으로 나온 김기사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교보 악사 전화번호는 뭐더라, 인터넷에 나온 전화번호로 연결을 했더니 다이렉트 보험 가입 안내만 나오는데, 급하니까 뭣도 안된다. 혹시 폰에 저장되어 있던가, 다행이다. 저장되어 있던 번호로 통화해서 보이는 ARS를 연결했다. 차주 주민등록번호를 누르고 계약자 조회를 하려는데 수월하지 않다. 상담원 연결을 했더니 가입이 안되어 있다고 한다. 응? 어느 보험사인지 모르겠다. 아 작년에 변경한 곳이 동부화재였던가.

 애매하게 2차선과 갓길 사이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켠 채 보험회사를 기다렸다. 여자 혼자 도로 위에 비상등 켜고 있던 게 안쓰러웠는지 몇몇 분이 차를 세워 물어보셨다.


 - 아가씨, 왜 뭐가 문제 있어요? (트럭아저씨가 도와주려고 내리셨다)

 - 무슨 일이에요? (경찰차가 지나가다가 묻는다)

 - 아.. 네.. 기름이 떨어졌어요..

 - 하하하..(휙 가버린다)

 - 죄송합니다!

 

 웃으며 떠나시는 표정으로 뼈를 맞았다. 아 창피하다. 도와주려고 오신 분에게 미안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피곤했어도 주유는 하고 다녔어야 했다. 앞으로 이러지 말자.

 


이제 주유등 들어오기 전에 주유합니다.





자동차보험 긴급출동 두 번째

 매일 왕복 2시간 넘게 출퇴근하면서 같이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나의 애마. 오늘도 주인을 무사히 집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린다. 언제부터인지 내 차는 영혼이 있는 것 같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모처럼 여유 있는 퇴근길이라 멀리 산허리에 피어나는 노을도 눈에 들어온다.



조수석에서 찍어본 퇴근길 영상 <최유리-끝>


 

 도로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만 이렇게라도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어제는 남편차로 퇴근하면서 <최유리-끝>을 들었고 오늘은 혼자 퇴근하면서 <최유리의 숲>을 듣고있다. 몽환적인 음색이 차 안을 아늑하게 해 주었고 밖으로 보이는 주황색 하늘은 오늘따라 더 예쁘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는, 그런 기분으로 취해있을 즈음, 어쩐 일인지 차 밖은 예사롭지 않다. 차에 뭐가 튀었나? 싶더니 오른쪽 바퀴에서 속도에 맞춰 탁탁탁 소리가 났고 타이어에 뭐가 걸린 것 같은데 자동차 전용도로라 멈추면 2차 사고를 부를 것 같아 저속으로 타이어를 꾸역꾸역 굴렸다. 그러자 그 물체는 왼쪽 타이어로 옮겨간 듯 갑자기 운전석 뒤쪽 타이어에서 '팍'소리가 나더니 앞유리의 노을이 삐뚤어졌다.

 차가 왼쪽으로 좀 기운 것 같다. 천천히 달려 갓길에 세운뒤 동부화재를 불렀다.


 - 장연터널 앞인데요

 - 괴산방향이요? 반대방향이요?

 - 청주에서 괴산가는 방향 터널 들어가기 전 증평에서 오는 차가 합류되는 지점이에이요

 - 터널 안인가요?

 - 아니요!! 터널 50미터 전 합류하는 지점이요! (점점 답답해진다)

 

 비상등을 켜고 밖에 나와 상황을 보니 서있는 내차 때문에 진입하는 차가 공간이 부족해서 조치가 필요했다. 안 되겠다. 긴 머리 휘날리며 우아하게 도로 위에 섰다. 긴급출동은 여러 번 불러봤지만 수신호를 해본 적은 없는데 이게 웬일. 보험회사는 왜 이리 늦지. 도로 위에 사람이 서있는데도 쌩쌩 달리는 차를 보니 무섭고 얄밉다. 내 신호를 보는지 마는지 모르지만 도로 위의 지휘자가 되어 '천천히 천천히'를 외치며 보험회사가 빨리 오길 기다렸다. 차가 선곳은 청주에서 괴산, 충주, 증평, 음성, 등등 출퇴근차로 혼비백산인 곳이다. 곧 회사사람 차들도 보였는데 '제발 날 알아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라고 기도하듯 내뱉었다.

 15분이 지나고 반짝반짝 요란한 차가 드디어 도착했고 '내가 구해줄게'를 외치며 내 앞에 섰다.




 - 타이어가..  (중략) 그랬어요.

 - 터졌네, 찢어졌구만~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 왔댜

 - 거의 다 와서 소리가 났는데 갓길이 없어서 20킬로로 간신히 왔어요~

 - 안 터진 타이어도 마모된 지 한참인디~

 - 그럼 다갈아야 하나요?

 - 다갈어야쥬, 트렁크.

 - 네?

 - 트렁크 열어봐요 타이어 바꿔낌고 천천히 카세타로 가유

 - 타이어 지금 바로 교체가 돼요? 갖고 오셨나여? 보험에서 되나여? 지금 사는건가여?



 트렁크에서 뭔가가 꺼내졌는데, 타이어였다.

 '타이어가 있었어? 내 차에?'

 트렁크에 꽁꽁 숨어있던 스페어타이어는 10년 만에 자신의 쓸모를 알았다. 아저씨는 타이어 교체하는 동안 위험하니까 수신호를 해달라고 하셨는데 수신호 좀 해본 여자라(5분 전에) 잽싸게 아저씨와 차를 막고 앞으로 나가 파리 쫓듯 허공에 손을 휘휘 저었다. 도로 위에서 차를 안 보고 일을 하시니 그 앞을 내가 막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가씨가 겁도 없네' 하시며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아줌마였다가 아가씨였다가 이모였다가 엄마였다가 하는 여자는 허공에 있던 손을 멈추었다. 보험 아저씨와 진입하는 차들을 번갈아보며 예의주시하는 동안 나의 애마는 스페어 타이어로 말끔히 교체완료되었다. 이렇게.



멋짐이 폭발한다.


 천천히 조심히 오래된 새 타이어를 모시고 카센터에 무사히 도착했다.

높은 연비 효율을 인정받은 타이어

눈길과 빙판길에서 안정적으로 드라이빙할 수 있는 타이어

도시형 SUV의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사계절용 타이 타이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랬지,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 아니면 차차선으로. 지난번에 산 게 어떤 거더라. 좋은 걸로 하려니 네 바퀴 다 바꾸려면 금액차이가 크네. 장거리이고 이제 눈도 많이 올 텐데 스노우타이어 따로 할바에 좋은 걸로 할까? 일단 제일 윗등급으로 정하고 남편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나는 답정너인데 남편이 오답을 고를 것만 같아서 남편이 전화를 받기 전에 끊어버렸다. "사장님, 제일 윗등급으로 주세요."


 세심하게 고른 선물을 전해줄 때의 기분, 그 마음과 같아서 애마에게 또 영혼을 넣어본다. 11년 동안 나의 팔다리가 되어주고 내 마음 따라 움직여준 고마운 아이. 너에게 최고급 타이어를 주겠다.






 브런치스토리 작가 신청을 할 때 쓴 글도 차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마 남편보다 차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름도 없이 11년 동안 게으른 주인 만나 전국 곳곳을 누비며 같은 곳을 보며 달렸고(애틋) 아이들 뒷자리에 태우고 육아도 함께, 덕질도 함께했는데 더 오래 같이 달리자고 말은 못 하겠지만 있는 동안 더 잘할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휴에는 푹 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