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불고기

"이 한 점이라도... 애들 입에 넣어주고 싶었어요."

by 김두필

어김없이 문이 열렸다.

낡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백여운은 칼을 닦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하은은 무심한 듯한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삐죽 나온 종이쪽지를 봤다.

구겨진 빚 독촉장이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하은이 물었다.

남자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숨이 꽤 길었다.

그러다 힘없이 말했다,


"... 불고기... 상추쌈이랑... 부탁드려요."


백여운은 싱크대 아래에서 작은 간장병을 꺼냈다.

그리고 차례대로 조리대에 놓이는 것들.

양파 반쪽, 다진 마늘, 설탕과 깨소금 등등.

하은은 양파를 얇게 썰어 작은 볼에 담았다,


"사장님 오늘도 역시 양념은 직접 하시네요?"


하은이 속삭였다.


백여운은 대답 대신 간장을 조심스레 부었다.

참기름은 맑은 빛으로 흘렀다.

숟가락으로 다진 마늘을 풀며 묵직한 향이 났다.

그 뒤로 깨소금이 고기 위로 흩어졌다.


"이런 고기는... 바로 굽지 않고 좀 기다려야 돼요."


백여운의 낮은 목소리가 양념에 스며들었다.

양념에 고기가 잠기는 동안.

남자는 고개를 떨군 채 상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식탁 위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불고기.

작은 손들이 상추에 고기를 올려 웃고.

아내는 따뜻한 국을 떠서 그에게 건넸다.


'한 번만이라도... 이 밥상을...'


봉돌이는 그의 발치로 다가와 코를 킁킁거렸다.

하은은 그 모습을 보고 무심코 속으로 중얼거렸다.


"냄새가 죽입니더. 이런 고기는 가족들끼리 같이 먹어야 더 맛있지예."


봉돌이가 이야기하는 동안 팬이 달궈졌다.

참기름 한 방울.

고기가 팬 위에 올라가자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소리가 혼밥집을 채웠다.

양파 조각이 달짝지근한 양념에 스며들며 부드럽게 눌렸다.


하은은 상추를 물에 씻어 물기를 털었다.

남자는 피어오르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애들이랑 같이 쌈이라도 싸서... 웃었을 텐데."


백여운은 팬을 조용히 저었다.

양념이 눌어붙지 않게.

고기가 타지 않게.

그리고 그 소리가 그의 기억을 끌어냈다.


***


낡은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빌라 복도.

문틈엔 새빨간 독총장이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


[부재중 : 대부업체]

[문자 : 최종 독촉]


그는 액정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한 번만 더 버티자... 이번 달만..."


그날 남자의 주머니에 있는 돈은 삼천 원이 전부였다.

편의점 진열장에 있는 냉동불고기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아빠 주말엔 고기 먹자!"라고 웃던 얼굴이 겹쳤다.

손에 쥔 냉동불고기 팩이 미지근해졌다.

계산대에 올려두었다가 조용히 다시 내려놨다.

결국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고작 삼각김밥 하나였다.

포장지 위에 손을 얹고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러나 그 말은 목구멍에 걸려 끝내 삼켜지지 않았다.

편의점 불빛이 점점 멀어지고.

그는 강둑 난간에 발을 멈췄다.

물 위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 떠 있었다.


'조금만 더...'


중얼거리던 말은 찬 바람에 묻혔다.

그리고 그 강하고 찬 바람은 그의 마음에 남은 마지막 불마저 꺼버렸다.


***


혼밥집.

불고기는 노릇하게 익어갔다.

하은은 상추 한 장에 밥과 불고기 한 점을 올려 조심스레 쌈을 만들었다.

남자는 그 쌈을 받아 손에 쥐었다가 손끝이 살짝 떨려 쌈이 흘렀다.

하은은 잠깐 머뭇거리다 그의 손을 받쳤다.


"어서 드세요. 그래도 마지막 식사인데..."


그는 힘겹게 쌈을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불고기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눈이 시렸다.


"이 한 점이라도... 애들 입에 넣어주고 싶었어요."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밥상 한 번은 차려주고 싶어요..."


하은은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자신도 모르게 그가 떠올린 웃음 속에 어린 시절의 자신이 어렴풋이 겹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여운은 팬을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다, 그 말이... 밥보다 무겁지."


가장은 고개를 떨군 채 작은 숨을 내쉬었다.

식탁 위에 상추쌈 하나가 덜 먹힌 채 남았다.

남자는 코트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그리곤 뒤를 뒤집어 펜으로 무언가를 눌러 적었다.


'아빠가... 미안해...'


그 종이는 접시 옆에 놓였다.

마치 못다 한 고백처럼.


남자는 떠나고 혼밥집의 문은 닫혔다.

하은은 식탁 위 남은 상추쌈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장님... 이런 고기 냄새는요... 어디까지 따라오는 걸까요?"


백여운이 낮게 대답했다.


"밥은 식어도, 마음은 안 식으니까."


창문 큼으로 바람이 스쳤다.

혼밥집엔 달짝지근한 불고기 향이 천천히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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