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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Apr 09. 2024

완벽주의는 피곤해, 귀찮아, 힘들어

  나는 내가 완벽주의자가 아닌 게 좋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면서, 부족하거나 정확하지 않아도 그냥 '발행'을 눌러 일단 글을 '생산'하고 본다.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데, 대만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정확한 답을 얻으면 다시 덧붙이도록 하겠다'느니, '지금은 통계가 없어 내 주장이 맞다고 큰소리치기 좀 그렇지만, 내가 보는 사람마다 물어봐서 통계치가 쌓이면 그 결과는 나중에 다시 덧붙이겠다'하고 일단 넘어간다. 

  

  나는 어제 글 하나를 연재했어야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와서 오후 내내 붙들고 있었지만 완성해내지 못했다. 밤이 되어서는 '아, 된장' 싶은 것이다.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잖아? 이거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응, 연재를 달아놓은 것은 말이야, 나 자신을 닦달하는 수단이지, 딱 그때까지 글을 올리겠다고 누군가와 약속을 했다라는 뜻은 아니야.' 

  그리고는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누워 즐겁게 중드를 봤다.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내가 완벽주의자가 아닌 것이 사뭇 자랑스럽고 싶다. 연재했어야 하는 날 연재를 못했다고 찝찝해서 미치거나 하지 않는 내가 좋아야 한다.


  당신은 완벽주의자가 어디까지 강박증을 발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본 가장 겁나는 완벽주의자는 우리 과의 한 여교수님이시다. 박사반 첫해에 그녀의 수업을 들었는데, 첫 시간에 그녀가 어떻게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이라는 소개를 하던 날 나는 이미 소름이 쫙 돋고 만다. 그녀는 자기가 쓴 교재로 수업을 하는데, 그 교재의 어디서 어디까지는 무슨 내용이며, 우리는 중간고사 때는 어디까지, 기말고사 때는 어디까지 수업한다고 설명을 하는데, 나는 발견해 버렸다. 

  '오, 마이갓! 책 목차의 길이가 똑같잖아!'

  

  당신은 목차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똑같은 길이로 된 책을 본 적이나 있는가? 

  한국어나 영어는 띄어쓰기가 있어서 같은 길이로 쓰는 강박을 발휘하는 게 뭐 좀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의미도 없어 보이는데, 중국어는 띄어쓰기가 없어서 강박을 부리면 글자수를 똑 같이 맞추는 '예술'을 할 수가 있다. 


  강의내용을 소개하는 실라버스(syllabus)에서도 그녀는 모든 칸의 글자가 같은 지점에서 끝나게 맞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두 글자의 단어를 하나의 한자로 표현하는 강박을 부리면 가능하다. 두 글자를 대신한 하나의 한자가 평소에 자주 쓰는 글자면 모르겠는데, 자주 쓰지 않는 글자일 때는, 모국어자는 몰라도 우리 같은 외국인 학생들은 무슨 뜻인지 파악하느라 조금 힘겨울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완벽주의는 남을 괴롭힌다. 


  친구 중에 이 교수를 지도교수로 선택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 여교수의 완벽주의를 적응 못해서 졸업을 반쯤 포기하고 있다. 이 교수는 논문을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순서대로 써나가게 하고, 앞에 쓴 내용이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 봐, 완벽주의 좋을 게 없잖아? 그러니, 나, 완벽주의자가 아닌 걸 뿌듯해하기로 한다. 나의 비완벽주의는 나 자신도 피곤하지 않고, 타인도 괴롭히지 않는 얼마나 좋은 자질인가 말이지.

  당신은 동의해 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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