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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26. 2024

공동의 적, 제니

나와 다른 생활습관을 견디는 일

  신디(Cindy)가 화장실 문을 열어보더니 투덜거렸다. 

  “동해언니가 제니(Jenny)한테 청소 좀 하라고 해!”

  ”나 제니 무서워.”

  “동해언니는 언니잖아. 언니 말은 들을 거야.”

  내가 사는 셰어하우스는 공동구역을 청소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걸 제니가 맡아하고 있다. 그녀는 셰어하우스를 청소하는 대신 방세를 할인받는다.


  우리가 이 집을 택한 데에는 1. 공동구역을 청소해 주는 사람이 있다, 2. 전기요금이며 수도요금 등등이 월세 안에 포함된다, 3. 셰어하우스 청소담당자가 쓰레기를 내다 버린다, 는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대만은 쓰레기를 아무 때나 버릴 수 없다. 쓰레기 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 버려야 하는데 이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런데, 제니는 성실한 청소담당자가 아니라, 우리는 이 첫 번째 혜택을 못 누리고 산다. 청소담당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 집주인은 그녀가 맘에 들지는 않지만 딱히 나무라지도 못한다. 

  제니는 화장실 청소를 거의 안 한다고 보면 된다. 자기도 변기가 더럽다고 생각은 하는지 변기세정제를 잔뜩 사두고서는 그것만 부어 댄다. 세정제가 변기통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변기를 알아서 닦아준다는 듯이. 


  오늘은 신디가 불평을 할 만도 한 것이 화장실 문을 여는데 찌린네가 나서 찝찝해 죽을 판인 것이다. 웬만큼 더러운 것을 다 견디는 나로서도 저 변기에 앉기가 좀 찜찜해진다. 병이라도 걸리까 두려워서 내가 청소하기로 한다. 

  “신디, 고무장갑 어딨는지 알아?” 

  “제니한테 좀 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사놔.”

  제니는 집주인에게 얼마간의 돈을 받아서 집에 필요한 휴지며 세제며를 자유롭게 산다. 제니는 규칙적으로 휴지통을 비우는 것 말고는, 휴지통은 비우지 않으면 차 넘쳐서 비울 수밖에 없긴 하다, 달리 청소라고는 제대로 하지 않으니 고무장갑의 필요성이 간절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사놓지도 않는다. 

  오늘은 고무장갑이 없어도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해야만 하겠다! 신디는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집주인에게 보여주고 방값을 좀 깎아주라고 해야겠다며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신디, 제발 그러지 마.”

  변기솔로 변기 위쪽의 물이 나오는 면을 문지르다 놀라 자빠지고 만다. 우웩! 그냥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변 찌꺼기가 누렇게 떨어져 나온다. 그러니 냄새가 안 날 수가 있나. 

  욕조도 씻고 세면대도 씻는다. 전면적으로 건드리지도 않고 아주 사소하게 손댔을 뿐인데, 화장실이 확 깨끗해졌다. 화장실이 깨끗해진지는 알아서, 다들 이쪽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우리 집에는 화장실이 두 개다.


  통통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저녁을 먹을 참이다. 오븐으로 뭘 익힐 참이었는데, 오늘도 오븐은 제니가 닭고기를 굽느라 점령 중이다.   

  “아, 맨날 이래.” 통통이 짜증스럽게 불만을 뱉는다. 

  제니는 정말이지 우리가 보통 '잘 먹는다'는 여자보다 더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치우는데, 하루에 먹는 고기의 양은 아주 사람 질리게 할 지경이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제니가 집에 있는 날이면 주방에서 늘 고기가 굽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제니가 있는 시간에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이 오븐을 쓴다는 것은 될 턱이 없는 일. 

  

  제니와 리(Lee)가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신경전을 벌일 때, 제니는 왜 리와 날마다 으르렁거리면서도 이사 나갈 생각을 않느냐고 물어봤을 때, 누가 그랬다. 제니는 이 집의 부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나갈 수 없다고. 제니는 정말이지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요리를 한다기보다는 고기를 익힌다는 말이 적합할텐데, 고기를 익히고, 담배를 피우고, 물건을 너저분하게 꺼내놓고, 나머지 시간은 먹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 씻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씻는 시간은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데, 자기 꼴리는 시간에 샤워를 하고 자기 꼴리는 시간에 자러 들어오느라 남들이 다 고요히 자는 새벽에 쾅쾅 방문을 여닫고, 옷장 문을 열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전등을 탁 켜버린다. 


  나는 날이 갈수록 제니가 싫다. 침대를 길거리 부랑자 소굴처럼 만들어 놓는 것은 뭐 자기 침대이니 그렇다 치고. 부엌이며, 소파테이블이며, 책상이며, 거실테이블이며, 곳곳에 그녀의 물건으로 가득한 것도 뭐 참아준다고 치고. 제일 못 견디겠는 것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인데, 냄새가 거실로 다 들어와서 딱 죽겠다. 


  6인실로 옮겨오면서 그녀와 같이 방을 쓰지 않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그녀가 있는 4인실은 6인실의 '한 방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산다'는 복닥스러움을 능가하는 '교류할 수 없는 더럽고 덩치 큰' 그 무엇과 사는 예상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 

  옮겨온 6인실은 아주 천국이다. 위칭은 거의 모든 것에 귀찮음을 느껴 꼼짝 않으면서도 방의 습기에는 민감해서 틈만 나면 제습기를 가동한다. 케런은 너무도 규칙적으로 지내고 걸음걸이도 조용해서 오가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신디가 수다스럽긴 하지만, 거실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고 방으로 돌아오면 조용해진다. 갓 들어온 베트남 두 아가씨들이 아직 이 방 규정을 잘 몰라서이기도 하겠고, 방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기 때문이기도 한데 좀 존재가 느껴지도록 움직거리기는 한다. 나는 통풍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 다들 일어났다 싶으면 하루 종일 창문과 방문을 열어 놓는다. 


  셰어하우스에 오래 살면서 타인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간다. 나와 다른 생활습관을 견디는 일은 어쩜 이리 어려운지. 아니, 사실 조금쯤 혐오스럽다. 저들도 나의 어떤 행동을 혐오할지 모른다. 

  결혼을 하고 살면 남편의 못마땅한 습관을 봐내는 것도 참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속 좁은 나는 혼자 사는 것이 더 맘 편한 일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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