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해 Feb 23. 2024

보드게임 딕싯

자꾸 똑똑해지는 느낌

  신디(Cindy)가 며칠 전부터 내일 뭐 할 거냐 뭐 할 거냐 노래를 불렀다. 10월 10일은 대만의 국경일이고, 휴일이다. 그러니, 전야에 뭐든 재밌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노래방을 갈 거냐, 공원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을 테냐, 야시장을 갈 거냐 등등, 제안이 많다.

  "나, 그날 저녁에 중국어 고급반 수업 있어. 6시 40분에 시작해서 2시간이나 해."

  "가지 마. 우리가 중국어 보강해 줄게."

  "안돼, 가야 돼. 먼저들 놀고 있어."

  "동해언니, 보드게임도 중국어 배우는데 도움이 될 거야. 같이해."

  어린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청하는데, '난 너희들이랑 노는 게 귀찮아' 할 수는 없었다. 

  "알았어, 수업 마치고 바로 올게.". 


  사실 나는 보드게임에 별로 흥취가 없어서, 수업을 마치고도 째깍 집으로 향하지 않고, 느적느적 볼 일을 다 보고서야 집으로 간다. 

  "뭐, 이렇게 조용해? 논다며?"

  "언니가 오길 기다렸지."

  지룽(基隆)이 집이고, 타이베이의 좀 대단한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혼자 타이베이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야윈(雅荺)이 학교 동아리에서 쓰던 보드게임을 몇 가져왔는데, 그중 한 게임을 골라 설명을 시작한다.


  딕싯(DiXit) 게임은 대략 이렇게 진행된다. 

  1. 모든 플레이어들은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5장씩 받는다.

  2. 첫 주자가 카드 한 장을 비공개로 제출하며, 자기 카드의 그림이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이야기를 꾸며 말한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라고 하더니, 다들 한 단어로 표현하고 말더라.)

  3. 나머지 사람들도 자기가 가진 것 중에,  방금 들은 이야기의 느낌이 나는 카드를 비공개로 제출한다.

  4. 제출된 모든 카드를 잘 섞은 후에 오픈하면, 플레이어들은 그 중에서 첫 주자의 카드가 어느 것이었을지 맞춘다.

  5. 맞힌 사람은 게임판의 말을 앞으로 진행하며 옮겨가는데 빨리 옮긴 사람이 승리한다.


  카드의 그림들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그림은 좀 애매모호하고 상징적인 느낌인데, 그래서 같은 카드도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 

  “유쾌한 합작” 내가 말했다.

  “어디 유쾌한 합작이 있어?” 카드가 공개되었을 때, 신디가 따졌다.

  “왜 없어? 아주 명확하잖아. 그들이 막 악수를 하고 있잖아.” 내가 대꾸한다.

  “이건 분명 싸우는 거라고.” 신디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게는 명백히 악수하는 장면으로 보이는 그림이, 신디에게는 싸우는 장면으로 보인 것이다. 딕싯(DiXit)이 이렇다. 


  “즈쒼주에루*(自尋絕路).” 

  “뭔 뜻이야?” 내가 묻는다.

  “자살이랑 좀 비슷해.” 

  “그래? 그럼 난 량창산뚜안(兩長三短)할께.” 

  “컥, 산창양뚜안(三長兩短)**이야.” 신디가 고쳐준다. 

  "하하하, 순서는 틀렸지만, 내가 이런 것도 알잖아, 기특해해 줘."

  드라마를 보면서 몇 번 들었던 산창양뚜안(三長兩短)이 생각난 것 만도 나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 앞뒤를 바꿔 말했든 어쨌든. 


  두 종류의 보드게임을 더 했다. 내가 원래 보드게임을 이렇게 흥분해서 하던 사람이던가? 나는 게임 규칙을 한국말로 설명해도 잘 못 알아듣는 편인데, 중국어로 게임규칙을 단번에 알아듣고 있다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딸리는 중국어로 수업을 따라가느라 머리를 자꾸 쓰다 보니 나 좀 똑똑해진 것 같다!


* 저쒼주에루(自尋絕路) : 스스로 막다른 길을 찾다.

**산창양뚜안(三長兩短) : 1. 뜻밖에 발생한 재난이나 사고 2. (사람의) 죽음. 사망.

매거진의 이전글 상요우를 짝사랑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