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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r 13. 2024

이 단순함을 사랑해

해치우고 줄 긋기

  '나 이거 했어'하고 줄을 쫙 긋겠다고 내가 정말 하고 있는 이 모습이란!  


  3개월을 집순이 놀이만 하다 대만으로 돌아오니 어찌 적응이 안 되는지. 한국에서의 게으름이 그대로 따라붙어와서는 중국어로 말하는 것조차 힘겨운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부지런을 올려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메모지에 오늘 할 일을 하나, 둘, 셋 하고 적었다. 하나씩 해치우고는 줄을 쫙 그었다. 어머! 나, 써놓은 항목에  줄을 긋겠다고 그게 해진다.


  매일의 목록에는 한국어 책 읽기가 있다. 이건 다른 어떤 항목보다 실천하기 귀찮은 것이, 맥북으로 바꾸면서 전자도서관의 책이 열리지 않아 윈도가 깔린 노트북을 하나 더 들고 왔는데, 전자책을 읽으려면 이 노트북을 하나 더 펴는 번거로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하고 줄 긋겠다고, 평소 같으면 이미 침대로 들어갔을 늦은 시간에라도 컴퓨터를 펴고 있다. 


  나, 이걸 일주일 넘게 하고 있다! 이건 하루에 하기는 좀 많지 않나 싶도록 많이 나열해도, 그게 또 딱히 힘겹지도 않다.

  '나 이렇게 단순하게 움직여지는 사람이었어?'

  

  '해치우고 줄 긋기'는 어떻게 기능하는가? 

  예를 들어, 치약을 하나 사야 한다고 치자. (뭘 구매하는 일은 누군가에는 아주 쉬운 일이겠지만, 집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내게는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해치우고 줄 긋기'를 하기 전에는 '치약을 사야 해, 치약을 사야 해, 오늘 좀 부지런해지면 안 될까, 좀 움직여!', 이렇게 마음을 몰아대야 했다. 하지만, '해치우고 줄 긋기'는, 일단 할 일 목록에 '치약 사기'라고 적어 넣었다 하면, '해야 해'가 아니라, '하고 줄 긋자'가 돼서 마음이 힘겹지 않게 그냥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했어!'하고 줄 그을 때, 조금 기쁘기까지 하다. 


  사실 날마다 모든 항목을 클리어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째 할 일 항목에 적어 넣고 있지만, 며칠째 계속 클리어를 못 하고 있는 항목은,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 숙제성 항목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고, '언제까지 반드시 해야 하는'것인 셈인데. 어째 숙제성 항목에는 '해치우고 줄 긋기'가 안 통한다. 이건 역시 기한이 닥쳐야만 해지는 것인가? 


  그렇지만 괜찮아! 다행히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서, 100퍼센트 클리어 안 한다고 찜찜해 죽거나 다른 작은 성취까지 시시해 보여 아예 줄 긋기를 집어치우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언제까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쉽게 처리하는 방법은 계속 찾아봐야 할 듯. 

  지금까지의 내 방법은 '기한이 닥치면 하게 되어있어'였다. 이제 이걸 좀 고쳐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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