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돈 관리
은행 수수료
막 대만 생활을 시작할 때, 한국에 예금된 돈을 대만달러로 뽑아 쓰기 위해 시티카드를 이용했다. 한국 시티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시티은행이 있는 어느 나라에서나 현지돈으로 인출해 쓸 수 있다. 긴 유학생활뿐만 아니고 짧은 해외여행에도 유용하다. 환전을 해가는 것보다 여행지에서 현지돈으로 인출하면 환율상 훨씬 유리하다. 이렇게 유용한데, 시티은행이 한국에서 철수를 한다고 하니, 통장에 있는 돈을 정리해야 했고, 시티 카드를 대체할 다른 카드를 하나 만들어야 했다.
원래는 내가 가는 치과 근처에 시티은행이 있어서 치과 가는 길에 같이 볼일을 보면 되는 거였는데, 철수한다는 발표와 함께 이 분점이 사라져 버렸다. 무료한 어느 날, 없는 부지런함을 까짓것 동원하여 대구 지역에 아직도 문을 열고 있는 시티은행을 하나 찾아냈고, 통장을 해제하러 갔다. 갈 때는 깨끗이 통장을 정리해 버릴 생각이었는데, 물어보니 고객이 다 정리될 때까지 서울에 지점이 하나 남아 있을 거란다. 그러니 고객의 통장에 돈이 있는데, 시티은행이 문을 닫아서 돈을 인출 못하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쩐다? 시티카드를 대체할 하나카드를 하나 만들기는 했지만, 대만에서 돈이 제대로 인출될지 어떨지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시티카드를 보험처럼 하나 더 들고 가면 좋겠다 싶다. 막 카드 사용기한이 지난 카드를 내밀며 연장이 가능한지 물어본다.
"새 카드를 주소지로 보냈는데 수령인이 없어 여러 번 되돌아왔다고 기록이 되어 있네요. 주소가 여기가 맞나요?"
그러니, 연장이 가능하다는 거네? 연장이 되면 연장을 해달라고 하니, 조회를 해보고는 금방 새로 만들어 준다. 앗싸!
내가 인터넷으로 검색해 읽은 바는 이렇지 않았다. 시티은행이 철수 예정이기 때문에 새 통장개설이나 새 카드발급 업무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 김에 아주 오랫동안 찍어보지 않은 통장 정리도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후룩 보다가 깨닫는다. 시티은행이 카드의 사용기한 종료 전에 내게 새 카드를 보내고, 은행이 곧 철수하는데도 다시 만들어달라니 만들어 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내 수수료를 엄청 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건당 이삼천 원씩의 수수료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확 열불이 나서 꼼꼼히 수수료를 훑어보니 건당 수수료가 붙고, 인출하는 금액에 비례해서도 수수료가 붙었다. 그러니 자주자주 돈을 빼내서 쓰는 것보다 한 번에 많은 금액을 빼내는 것이 유리했던 것이다. 금액에 비례해서 생기는 수수료는 적은 금액을 뽑나 많은 금액을 뽑나 금액에 비례하는 것이니 내가 절약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지만, 건당 수수료는 아낄 수 있는 거였다. 나는 한 번에 대만돈 5000원씩, 한국돈으로 치면 20만 원 정도씩 자주자주 인출해 쓰는 바보짓을 했다. 그리하여 시티은행이 예뻐라 하는 고객이 되어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시티은행 ATM기는 대만대 맞은편에 있는 청핀서점과 따안공원 맞은편에 있는 것 둘이었는데, 나는 현금을 인출하러 나가는 일을 걷기 운동으로 삼았던 터라 자주 들리는 것을 그다지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대만생활 수년을 하면서 시티카드가 소용이 없어진 지금에야 통장을 찍어보고 수수료가 어떻게 붙는지를 발견한다. 아우 바보! 내 아까운 수수료.
해외카드 결제 수수료
이 교훈으로 지금은 조금 똑똑해져서 수수료에 나름 신경 쓰고 산다. 사실, 신경을 쓴다고 하기에는 턱 없이 게으르긴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대만장학금을 받게 되어, 한국 통장에서 돈을 빼 쓰는 게 아니라 대만 통장으로 들어오는 장학금을 빼서 쓴다. 남들은 다 적다고 하는 장학금이 나한테는 자꾸 쌓여서, 방학 때면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해외카드를 받아주기만 하면 대만카드로 결제를 한다. 결제를 할 때 어떤 곳은 "대만통화로 결제하시겠어요, 한국통화로 결제를 하시겠어요?"하고 묻는다. 내 카드가 대만에서 만든 것이라서 대만돈으로 결제를 하는 게 이익인 줄 알았다. 한국돈으로 결제를 하면 환전하는 비용만큼의 돈이 더 드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 반대였다. 거의 1년이나 지나서야 카드명세서를 살펴보고, 한국에서 거래할 때는 한국돈으로 결제해야 환전수수료가 안 빠지는 것을 안다. 카드명세서는 이메일로 오고, 거류증번호를 처넣어야 열린다. 10자리의 거류증번호는 감히 외울 생각 따위 해보지 않았고, 그러니 거류증을 꺼내 들고 봐가며 처넣었어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이 뭔 사이트에 회원가입하기 위해 한 페이지 가득 정보를 적어 넣는 만큼이나 번잡해 죽겠는 것이다. 그리고 열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이번 겨울 방학에야 한국으로 돌아와 열어봤다. 내가 일찍 알았더라면 아낄 수 있었던 수수료 수만 원을 보니 상당 아깝다!
놓칠뻔한 퇴직금
나는 돈을 엄청 좋아하기는 하면서, 돈에 대한 관리는 상당 소홀한 편이다. 이런 적도 있다. 기간제 교사로 일할 때였다. 월급만 한 돈이 하나 더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뭔가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퇴직금이라는 것이다. 정식 교사는 퇴직금이 퇴직을 할 때 나오지만, 기간제 교사는 1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바로 지급이 된단다. 이렇게 좋은 일이! '이전 학교에서는 퇴직금을 받지 못했는걸?' 이건 한두 푼도 아니고 1년을 일하면 한 달 치 월급이 나오는 거잖아? 돈 좋아하는 나는 이걸 안 받은 채로 넘어갈 수는 없다. 귀찮아서 오랫동안 미적거리다가 따분했던 어느 날, 학교로, 교육청으로 연락을 했다. 나답지 않은 부지런을 떨게 만든 것에 좀 열이 받아서 따져 물었다. "다른 교육청은 퇴직금을 챙겨 주던데, 왜 이 교육청은 퇴직금을 안 줬던 거죠?" 이 교육청 담당자가 하는 말이 자기 교육청은 퇴직금을 교사가 신청했어야 주는 거란다. 아, 놔. 서류를 갖춰 신청을 했을 때 알게 되는데, 내가 조금만 더 늦게 신청을 했더라면, 퇴직금 신청이 가능한 퇴직 후 3년이라는 기간이 지나서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고스란히 날릴 뻔했다. 무료한 날에 감사를!
또, 이건 얼마 전의 일인데. 생각보다 대만살이가 길어지면서 통장에 있는 돈들을 저렇게 방치해 둘 게 아니라, 이자가 많은 적금 형태나 뭐로 좀 전환해야 되겠다 싶어서 여기저기 찌금찌금 돈이 든 통장들을 정리했다. 언니가 이래라저래라 아무리 잔소리를 했어도 끄덕 앉았는데, 코로나 이후에 은행 이자가 오르는 것을 들으면서, 1, 2% 이자에는 그깐 것 싶던 것이 5%도 있고 하는 소리에 욕심이 발동한 때문이다. 그 바람에 통장들을 정리하다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돈 하나를 발견한다. 개설만 했지 오랫동안 버려둔 통장에 한 달 월급만큼의 돈이 들어있었다. 누군가 송금한 돈이다. 송금한 사람이 누구인지 적혀 있지 않다. 날짜를 보니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가 아니고 대만살이를 한두해하고 있을 때다. 돈 들어올 구석이 전혀 없을 때다. '어쩌다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 있는 거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돈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는 것이다. 세상에 눈먼 돈이 굴러들어 오는 법은 없으니까, 이건 분명히 어떤 이유로 여기 있는 것일 텐데, 도대체 생각이 안 나니 공돈이 굴러들어 온 것처럼 행복해한다.
바보는 바보의 복이 있다
중국어에는 ‘샤런요우샤푸(傻人有傻福)’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바보는 바보의 복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바보스러운 것이 좋다. 바보는 바보의 복이 있을 것이어서. 통장에 돈이 들어오던 나가던 별생각 없이 사니까, 나중에 우연찮게 발견하고는, 공돈이 생긴 것처럼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게 바보의 복이 아니겠냔 말이지.
잠깐! 알려주는데. 나는 '샤런요우샤푸'를 직역해서 멋대로 갖다 붙이지만, 진짜 중국어 용법은 내 번역과 달리 아주 깊이가 있다. 중국어는 이렇게 짧은 몇 글자에 포함하는 내용이 한 무더기인데, 바로 그래서 매력적인 언어다. 여기서 말하는 '샤런' 즉 바보는 나 같은 바보를 뜻하는 게 아니고, 작은 이득을 탐하지 않는 사람,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총명을 감출 수 있는 겸손한 사람, 교묘한 수단으로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는 사람, 너무 따지고 들지 않는 사람 등등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지혜로운 사람을 '바보'라고 칭한 것이다. 그러니 '지혜로운 바보의 자세로 살면 복이 따른다'로 이해하면 되겠다. 나의 바보짓과 중국어 속담이 가리키는 바보는 결이 다르지만, '샤런요우샤푸'라는 말이 너무 예뻐서 억지를 부려서라도 쓰고 싶은 것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