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생은 가치롭다?

온라인으로 책 주문하기

by 김동해

조별보고서에 쓸 책

이번 보고서는 같은 주제하에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선정하여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인지 15차시로 설계하는 것이다. 우리 조는 주제를 나한(呐喊, 절규)으로 잡았다. 사실 먼저 주제를 잡고, 문학 작품을 선정한 것이 아니고, 서로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씩 꺼내 들고, 거기서 억지스럽게 공통 주제를 뽑아내다 보니,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 조의 주제는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었다.

누구는 시를, 누구는 루쉰의 산문을, 나는 프리모 레비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추천했다. 난 우리가 매번 만나 다 함께 토론해 가며 보고서를 쓸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추천한 저 작품들은 다 같이 분석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을 간단히 할 줄 아는 똑똑한 친구가 그럴 필요가 뭐 있냐며, 각자가 추천한 작품을 가지고 몇 차시씩 맡아서 하고 합쳐버리기만 하잖다.

프리모 레비 책을 내가 추천했으니, 이게 내 몫이 되고 만다. '너네는 시(詩)랑, 산문(散文)이고, 난 너무 두껍잖아. 바꿔, 바꿔.' 하고 싶지만, 반페이지도 안 되는 시는 읽어봤으나 이해할 수 없었고, 루쉰의 산문은 말이 산문이지 거의 원옌원( 文言文) 수준이었다. 원옌원은 고전 문어체 중국어를 말하는데, 모국어자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뜻을 모른다.

프리모 레비의 책이 도서관에 없다. 보고서를 쓰자면 사야 한다.


온라인으로 책 주문

나는 조원들이 책을 다 사면, 내 것도 같이 주문해 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나만 책을 사야 하게 생겼다. 된장,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그 귀찮은 과정을 좀 건너뛰나 싶었으나...

모니카가 가장 저렴하고 빨리 책을 주문하는 곳이라며 사이트를 하나 가르쳐준다. 보커라이(博客來, www.books.com.tw). "너 혼자 주문할 수 있지?"하고 다정하게 묻는데, "네가 좀 해줘."하고 게으름을 피우기는 좀 그랬다. "해 보지 뭐."라고 답할 수밖에.

정오 전에 주문했어야 내일 받을 수 있었는데, 오후에 주문하니 토요일에나 받을 수 있다고 뜬다. '그래선 늦어서 안되는데…'

우리나라는 주문 즉시 서점에 가서 바로 찾는 주문방식이 있지 않던가. 그러면 당일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대만도 분명히 그런 시스템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청핀(誠品, www.eslite.com) 서점 사이트로 들어가서 주문을 한다. 과연, 있다. 대만대 근처에 있는 청핀(誠品) 서점에서 찾도록 주문을 하고, ATM으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결제방식을 선택한다.

ATM 송금부터 애를 먹는다. 편의점에 갔더니, 아가씨가 거기 있는 ATM으로 송금할 수 있는 것은 맞는데, 자기는 할 줄 모른단다.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거지. ATM기를 쓰려고 줄 선 인내심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뒤에 두고, 시간을 끌어가며 서툴게 이리저리 조작할 엄두가 안 났다.

학교 근처 우체국엘 간다. 거기는 ATM기 3대가 나란히 있어서, 대체로 하나쯤은 여유 있게 비어있으니까. 막 돈을 찾아 나오는 중년여인에게 좀 도와 달래자, 자긴 그런 거 할 줄 모른단다. 응, 그럴 수 있다. 도와줄만한 사람을 골랐어야 한다. 이번엔 젊은 청년을 붙잡고 좀 가르쳐달라고 한다. (나는 이런 걸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ATM기에 송금할 돈을 넣는 줄 알았는데, 현금 카드를 꽂고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식이었다. 중국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혼자 해보면 되지 뭐 이런 걸 구질하게 도움을 청하냐 싶지만, 내가 기계치인걸 어쩌겠나.


서점서 즉시 수령

후딱 돈을 송금하고는 책을 찾으러 대만대 앞 청핀(誠品) 서점엘 갔다. 서점에 있는 책을 바로 빼서 주는 방식인 줄 알았더니만, 서점에 있는 책을 바로 줄 수 없단다.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부쳐와야 하는데, 무려 4,5일이나 걸린단다. 그럼, 집으로 받거나 가까운 편의점으로 받는 게 상책이었잖아?

바로 가져가려면 온라인으로 주문한 것을 취소하고 정가를 주고 사가란다. 책의 정가는 380원이고, 인터넷 주문가는 300원이다. 80원, 한국돈으로 치면 3200원이다. 난 이것도 아껴야겠고, 책도 빨리 받아야 한다.

먼 길을 걸어 다시 집으로 와서 구입취소 메시지를 보낸다. 취소가 될지 어떨지 의문스럽다. '어디로 돈을 돌려드릴까요'하는 란이 없었단 말이지... 우리나라 인터넷 사이트처럼 구입 후 바로 취소 가능한 기능이 없었다. (사실, 이 돈이 다시 돌아왔는지 어땠는지 모른다. 게으른 나는 통장을 찍어보는 습관이 없다.)


대만의 택배

보커라이(博客來)에서 다시 주문을 넣어 편의점으로 도착하고, 찾을 때 돈을 지불하는 방식을 택한다. 편의점으로 오도록 하는 것과 집으로 오도록 하는 것의 운송 비용이 다르다. 편의점으로 받는 게 싸다. 대낮에 택배를 받아줄 사람이 집에 없다면 편의점으로 택배가 오도록 하는 것도 상당 괜찮은 방법이다. 배송비도 더 싸고.

대만의 이 제도, 택배를 받고 그때 상품값을 지불하는 방식은 참 편리한 것 같다. 인터넷상으로 결제하려면 카드 번호를 처넣으라니, 인증번호를 집어넣으라니 해서, 나는 그게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번거롭게 느껴진다.

물건을 먼저 배송해 주고 돈을 받아가는 대만의 결제시스템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우와!' 싶었다. 어째 소비자에게 더 유리하고, 소비자를 참 신뢰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든 생각인데, 이건 소비자가 판매자를 신뢰하지 않아 생긴 제도 같기도 하다. 돈만 받고, 물건을 안 보내는 일이 흔해서 생겨난 방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여간, 책 값 아끼겠다고 바보짓 좀 했다. 돈 보내랴 서점 다녀오랴 하면서 뒈지게 걸었고, 아까운 시간을 다 허비했다. 내 멍청함이 한심해서,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보자면,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해 봤고, ATM으로 송금하는 법을 익혔고, 서점에서의 책 수령은 우리나라의 그 개념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러니, 뭐 생고생이 가치롭지 않은 것은 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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