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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r 30. 2024

배울수록 퇴보하는 중국어

  오래간만에 옛날 룸메이트들을 만났다.

  "언니, 우리랑 안 살더니 중국어가 퇴보했어!" 신디의 말이다. 

  "좀 그렇지? 나도 미치겠어. 왜 자꾸 퇴보하는지." 내가 얼굴을 잔뜩 찡그려 대답한다.

  "괜찮아, 이 언니는 박사 논문 쓸 능력만 있으면 돼." 위칭이 이렇게 위로해 준다.

  "신디 봤지 봤지? 위칭은 이렇게 사람을 위로할 줄 안다고. 내가 이래서 위칭을 더 좋아하잖아."


  그렇지? 나, 중국어로 논문도 써내는 사람인데, 말 좀 안 된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되겠지? 


  방학이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으로 날아가서는 학기가 시작하고서야 겨우 대만으로 돌아오니, 일 년의 반 이상을 한국서 지내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중국어를 1도 쓸 일이 없으니 중국어가 자꾸 퇴보한다.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라도 하면 어째 유지라도 되겠는데, 게을러터져서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도 안 한다. 

  사실, 자발적 고독을 실험 중인 이래로, 사람들을 만나고 살지 않은지 오래되어 한국말도 사실 조리 있게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이것도 못 알아듣고 저것도 못 알아듣자 신디가 '에휴 에휴'한다. 

  "나, 남자친구를 만들어야겠어! 주변에 내 나이 또래 남자가 있으면 소개해줘." 내가 대단한 결심이나 한 듯이 선언했다. 

  "어떤 사람이면 돼?"

  "중국어로 말하는 사람이면 돼."

  "생긴 거고, 성격이고 다 필요 없고?"

  "그딴거 다 필요 없어. 중국어로 소통할 수 있기만 하면 돼."

  정말이지 중국어 실력을 늘리기 위한 '목적'을 위해 대만남자와 사귀는 '수단'을 써볼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 중이다.  


  내 주변에 대만 남자가 하나 있긴 하다. 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내 1호 대만 친구 왕 선생. 내가 그에게 연락을 하기만 하면 그는 신이 나서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연락하는 게 좀 꺼려진다. 

  "왜?" 위칭이 묻는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내 말을 잘 들어줘. 그런데, 나는 그런 식 딱 질색이야. 나는 나랑 싸움이 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이 언니는,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싫다네. 나 같으면 좋겠구먼."

  "그런 대화는 평등의 대화가 아니야. 나는 나랑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내 중국어는 유리천장이 있는 것처럼, 딱 그 이상을 넘어가주지를 않는다. 하긴, 내가 그 유리천장을 뚫겠다고 획기적인 방법을 써보지도 않았긴 했다. 박사 공부는 이제 곧 끝날테고, 곧 대만을 떠날 텐데, 이 실력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대만남자와 연애하는 특단의 수단을 써볼 테다! 

  아, 그런데 남자는 어디 가서 발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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