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섬웨어를 부르는 중드

랜섬웨어

by 김동해

중드와 랜섬웨어

두 번째로 랜셈웨어에 걸리던 날, '된장 할, 또 랜섬웨어에 걸렸다.' 하고 말았다. 유튜브(YouTube)에도 없고, 유쿠(youku)에도 없고, 데일리모션(Dailymotion)에도 없는 중드(중국 드라마)를 굳이 찾겠다고 뒤적이고 돌아다니지 말았어야 했다. 중드를 보다 랜섬웨어에 걸린 것이 이게 처음이 아닌데, 나는 어째 교훈을 얻지 못했던지.


증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 먼저인지 중드를 보기 시작한 것이 먼저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맨 처음 중드를 보기 시작할 때는 한글 자막으로 봤다. 중드는 우리나라 드라마와는 달리 보통 40화를 훌쩍 넘는다. 한국인에게도 제법 알려진 ‘보보경심(步步驚心, 2011)’은 35부작이고, ‘랑야방(琅琊榜, 2015)’은 54부작이고, ‘삼국(三國, 2010)’는 무려 95부작이다. 난 이게 조금도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삼국'은 한글자막 버전이 인터넷상에서 찾아지지 않았는데, 같이 중국어 학원을 다니던 어느 중년 아저씨가 구해주셨다. 퇴근해 돌아오면 곧장 앉아 중드를 보기 시작해서 새벽녘에야 잤다. 하루에 10편 이상을 봤던 모양이다. 한 주만에 95편을 다 봤다. 수면이 부족한 것은 그렇다고 치고, 눈이 뻑뻑하고 실핏줄이 섰다. 눈에 엄청난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대만으로 건너와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맘먹기 전부터 나는 좀 중드에 중독될 체질이었던 것 같다.


한국어 자막 없이 중드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한 드라마를 연속 세 번이나 보기도 했다. 중국어 어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대만 아가씨들과 세어 하우스에서 살았는데, 다들 명절을 맞아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집이 텅 비었을 때, 평소의 나라면 혼자 집에 있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해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지도 못하는데, 책상에 앉아 있으면 등 뒤가 싸늘하다, 드라마를 보느라 무서운지도 몰랐다. 그때 세 번 연속 본 게 바로 옌청쉬(言承旭) 주연의 취상뢰저니(就想賴著妳,2009)다.

세 번 본 드라마는 이것 말고도 딱 하나 더 있다. 훠젠화(霍建華)와 마쓰춘(馬思純) 주연의 타래료, 청폐안(他來了,請閉眼,2015 )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세 번이나 봤다', '남주와 여주의 러브라인이 달달해서 정말 재밌다'하며 한 한국 아가씨에게 추천을 했는데, 그 아가씨는 예쁘지도 않은 마쓰춘이 예쁜 척을 해서 거북해서 도저히 못 봐내겠다고 했다. 하하, 사람들의 취향이란 너무도 각각이라.

지금 이걸 세 번 보라고 하면 나도 못 본다. 그때는 중국어가 조금밖에 안 들릴 때라, 볼 때마다 들리는 대사가 달랐기 때문에 세 번을 봐도 신선했다.


중드 덕후

독일 아가씨 만란과 나는 중드 이야기만 나오면 옆에 누가 같이 앉아 있는지를 잊어버리고 둘이서 서로 드라마 추천하기 바쁘다. 이 남주는 목소리가 끝내주고, 그 드라마는 스토리가 짱이고, 저 여주 성격에 완전 감정이입이 된다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중드를 보지 않는 칭루는 언젠가 대화에서 소외되어 혼자 심심해하다가 우리의 이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는데, 중드에 흥분해할 때는 중국어를 제법 자신 있게 말하는 내 모습이 좀 예뻐 보였다.


사실 나는 드라마 보는 것을 딱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중국어에 빠져서 어쩌다 중드 덕후가 다 됐다. 한국드라마는 돈을 줄 테니 보라고 해도 봐낼 자신이 없는데. (내 세어 하우스의 대만 친구들은 나만 빼고 다 한국드라마를 미친 듯이 본다.) 한글자막으로 구장쥐(古裝劇, 시대극)를 볼 때는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지만 중국어의 리듬에 빠졌고, 중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하고는 발랄한 대드(대만 드라마)를 보며 열 마디 중에 한마디만 들려도 호들갑스럽게 좋았다. 쓸만한 대드를 다 봐버려서, 중드로 넘어왔는데, 중국은 드라마 생산량이 무지막지해서, 내가 40화가 넘는 드라마를 하루에 하나씩 본다고 해도 내일이면 또, 볼 수 있는 새 드라마가 있다.

지금은 대만친구들보다 내가 아는 중국인 배우도 더 많고, 배우들 빠과(八卦, 가십)도 더 많이 알고 있다. 뭐 그래도 내 첫사랑은 대만배우 옌청쉬(言承旭)이다. 내게는 옌청쉬(言承旭)의 조금 기운 없는 허스키한 음색이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다. 라오난하이(老男孩,2018)에서 린이천(林依晨)과 연인으로 나왔던 이에(劉燁)의 목소리도 상당 유혹적이긴 한데, 그의 허스키는 남성성이 너무 강하다. 환르어쏭 2탄(歡樂頌 2, 2017)에서 앤디의 남자로 나왔던 양슈어(楊爍)의 목소리에도 내가 한동안 빠졌었는데, 옌청쉬(言承旭)에의 편애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옌청쉬(言承旭)의 목소리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섹시함인데, 사랑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 그가 주연한 드라마는 거의 죄다 찾아봐서 언제든 내 느낌 속에 그의 목소리를 불러낼 수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아마도, 유성화원(流星花園, 2001)에서 따오밍쓰(道明寺)로 나와서 던진 이 대사,“如果道歉有用的話,要警察幹嘛?”가 아닐까 싶다. "사과(apology)가 유용하면, 경찰 있어 뭐 하게?" 옌청쉬(言承旭)가 이 대사를 쳐낼 때의 느낌이란!


세 번의 랜섬웨어

중드를 보다가 두 번이나 랜섬웨어에 걸리고 나서는 중드는 핸드폰으로만 본다. 그러니, 다시는 랜섬웨어에 걸릴 일이 없겠지 철떡 같이 믿고, 역시나 백업하는 습관 같은 것은 양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이 걸리기도 한다. 세 번째로 랜섬웨어에 걸렸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고 당황도 하지 않았다. '어머, 나 복권에 당첨되려나 보다. 어쩜 이런 확률이!' 싶었다.

엄청난 자료들을 잃어버렸다. 처음 랜섬웨어에 걸렸을 때가 가장 처참했다. 십여 년간 쓴 노트북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자료가 들어있었다. 모든 사진파일을 잃어버렸다. 그 후로 사진 찍는 일에 초연해진 것은 좋은 점이라고 해야겠다. 두 번째 랜섬웨어에서는 두 번째로 짝사랑한 한 남자에 대한 몇 년간의 기록이 날아갔다. 그건 차라리 좋았다. 그 파일을 잃으면서 그 짝사랑도 접었다. 세 번째 랜섬웨어에서는 한 학기 동안의 과제 자료와 한 학기 동안의 일기장을 잃었다. 그 학기 동안 가장 많이 쓴 내용은 새로 짝사랑하기 시작한 한 남자 이야기니까, 그것도 아까워하지 말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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