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낮은 성적을 주세요

들통난 표절

by 김동해

표절이 들통나다

관(管) 교수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내가 제출한 기말보고서에 남의 문헌을 그대로 베낀 부분이 너무 많다며, 그러면 안 된다며, 일주일 줄 테니 다시 고쳐서 내란다. 그대로 점수를 매겨버리지 않고 일주일을 주는 관교수가 너무 고마워서 곧장 답장을 보낸다.

"교수님 다시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저, 인정해요, 연구 문헌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남의 논문의 개요를 가져와설랑은 아주 조금 수정해서 낸 것이 맞아요. 저는 그래도 좀 수정을 했으니 표절을 무사히 벗어날 요행을 바랐죠. 28일까지 다시 고쳐서 낼 것을 약속드려요!"


정말 쓰기 싫어 죽을힘을 다해서 겨우 짜깁기해서 내었더니만, 관교수는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돌려서 검사를 해버렸다. 그런 게 있는 줄 내가 어찌 알았겠나.

내 소식을 듣고 윤지 씨는 하루 종일 자기도 관교수한테서 메일이 날아올까 봐 조마조마했더란다. 그녀도 다 가져다 붙였다고 하는데, 걸리지 않은 이유가, 나는 논문 쓰듯이 다 문장으로 서술했고, 자기는 고등학생 필기노트 하듯이, 1번 뭐, 2번 뭐,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서 안 걸린 것 같단다.


된장! 다시 기회를 줘서 감사하긴 하지만, 난 정말 이 과목의 과제들이 다 정말 토가 나올 정도로 하기 싫어서, 애를 쓰기도 싫었고, 애를 쓴다고 더 잘 해낼 수도 없어서, A+은 바라지도 않았고, 그냥 통과만 해서 졸업 학점만 채우기를 바랐는데, 굳이 또 기회를 주니 안 고칠 수도 없다.


교수의 평어

관교수 과목의 성적이 떴다. 그래도 A쯤 기대하고 있었는데, A-가 떴다. '3개의 과제 중에 하나를 엉망진창으로 해냈다고 해서 A-가 뜨는 건 좀 아니지 않아?' 하면서 원망하고 싶은 것이다.

하긴, 나는 관교수의 과목을 무사히 통과하기만 바랬지, 조금도 열성을 가지고 뭘 배우겠다고 노력하지 않았다. 관교수가 가르치는 내용은 당초 흥미가 1도 느껴지지 않았고, 거기에 더해, 너무 어려워서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수업시간 내내 괴로웠고, 한 학기마저 우울했다.


치엔회이와 친화는 교수가 보고서에 평어를 써놓았다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나는 낮은 성적에다가 평어까지 받지 못했다는 것에 기분이 급 상하고 만다. 사실 나도 평어가 있었다, 내가 못 찾은 거였다. 친화가 알려주기를 어디로 클릭해 들어가서 pdf파일을 열어서야 보인다는 것이다.

관교수가 다시 쓸 기회를 줬을 때, 그래도 끝까지 좋은 성적을 받겠다고 작정하고 용을 썼더라면 더 완벽한 보고서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관교수는 내가 처음 낸 보고서가 표절이었건 아니었건 상관 않고 후에 제출한 보고서만으로 공정하게 점수를 매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표절이 들통난 것에 이미 가망이 없는 것처럼 생각이 되어, 쓸데없는 정력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겨우 통과만 할 정도로, 얄팍한 속임수를 써서 작성했던 것이다. 윤지 씨가 고등학교 노트 작성하듯이 해서 제출했는데 표절에 안 걸렸다니, 나도 그렇게 형식만 살짝 바꿔서 냈다. 그랬으니 그냥 통과한 것만으로 '아, 다행이다' 하고 말면 좋겠는데, 역시 낮은 성적은 기분을 잡쳐서, 성적을 낮게 받고 나면 그 과목 교수조차도 미워진다.


치엔회이와 친화는 교수가 학생들의 그 많은 과제를 하나하나 다 읽고 평어를 쓰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했지만, 내가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의 숙제를 검사해 봐서 아는데, 그거 그냥 마음을 쓰지 않고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치엔회이와 친화의 평어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보고서에 쓰인 교수의 평어는 내가 쓴 내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문장의 기계적인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하나도 감동이 되지 않았다!

내 보고서의 평어는 이렇다. '문헌탐구도 논문 쓰듯이 문장형식으로 썼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쭉쭉 열거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너, 틀린 글자가 많다, 이거 최대한 줄이도록 해야 해. 지난 문헌을 나열한 후에 자기 생각을 좀 많이 적었어야 하는데, 너 너무 적게 적었어. 그리고, 마지막 결론을 좀 맺어줘야 하는데 결론이 없네?' 여기 어디에 비판적인 사고 후의 평어가 있냔 말이지, 이런 기계적인 평어는 전혀 마음이 쓰이는 일이 아니고, 그냥 시간이 쓰이는 일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관 교수가 평어를 쓰는 것은 학생들의 성적 이의에 대한 자기 방어를 철저히 해놓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감동을 깨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짓을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바보짓을 안 하기 위해서.


푸념

내 지도교수에게는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겨보려고, 한 달도 전부터 발표 연습을 하고, 멍청해 보이지 않으려고 논문을 최대한 지적으로 써보겠다고, 정말 많은 지난 연구 논문들을 읽는 것과 비교하면, 나는 관교수의 수업을 위해, 그녀가 평어를 쓴 딱 그 태도로 그냥 시간에 맞춰 수업에 앉아 있었을 뿐이지, 마음 한구석도 학습의지가 없었다.

나는 감히 관교수의 연구 분야가 참 의미 없고 지루해 보였다.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독서 과정을 파악하고, 뇌의 어느 부분이 활발해지는 지를 보여주는 뇌스캔사진으로 읽기 과정이 이러니 저리니 설명하는 연구가, 그냥 갓 나온 과학을 이용해서 뭔가 현대적이고 근사해 보이게 멋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아서 싫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그냥 뻔히 생각이 닿는 것에 뭣하러 그 복잡한 절차로 굳이 증명을 해 보여야겠다는 건지 하며 무시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관교수의 A마이너스 학점을 혼자 소화하지 못해서 결국은 칭루를 찾아 한바탕 토로한다. “난 관교수가 맘에 들지 않아! 난 신교수도 싫어하잖아. 이 두 사람은 내게 A- 학점을 줬다고. 신교수는 내게 발표를 다시 하게 했고, 관교수는 내게 보고서를 다시 쓰게 했어. 그렇게 고생을 시키고도 학점은 어찌나 짜게 주는지. 좀 시원시원하게 줘서 학생을 격려해 주면 안 되나?”

유치해 죽지만, 낮은 학점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관교수와 신교수를 싫어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법교수는 한 학기 내내 무거운 과제로 나를 고생시키고, 나의 직설적인 화법을 간접적으로 불편해하고,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싱글인 것을 낮게 평가하는 태도가 은연중 흘러나왔지만, 어쨌거나 A+를 쥐서 한 학기 동안 쌓였던 미운 마음이 싹 가셨다. 나는 학기가 끝나고 감사의 메일까지 보냈다.


교수님 감사해요

관교수의 메일을 받고 기말보고서를 다시 썼어야 했을 때, 나는 타이중에서 개최하는 연구토론회에 논문을 발표하게 되어 ppt도 만들고 발표 연습도 해야 했다. 또 지도교수와 약속한 일정분량만큼의 논문도 완성해야 했다. 이것만도 기한안에 다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초조한데, 기말보고서를 다시 쓰는 일에 발이 묶였던 것이다. 다시 쓸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해 놓고는 돌아서서 원망을 했다.

'된장! 표절이 발견될 건 뭐람. 발견되었던들 그냥 낮은 점수를 주고 말 것이지 다시 제출할 기회를 줄 건 뭐람.'


그랬던 내가. 졸업논문의 '감사의 글'에 관교수에게 감사한다는 글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관교수님! 뇌파, 눈동자의 움직임, 통계 등을 언급하는 교수님의 수업은 중국어가 부족한 저에게는 참 어려운 도전이었어요. 교수님은 저한테 이렇게 물어보실 수도 있겠죠,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억지로 이수하려고 했냐고요. 졸업을 하려면 교수님 수업을 꼭 들어서 '학습류(學習類)' 학점을 채워야 했거든요. (우리 과는 학습, 언어, 교학, 실습의 4개 영역의 수업을 적어도 하나씩 들어야 한다. 그 학기에 '학습류'로 개설된 들을만한 과목은 관교수 수업뿐이었다. 다른 과목은 영어로 수업해서 내가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말 보고서를 쓸 때,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읽어도 이해가 안 돼서, 어떤 내용들은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었어요. 이 일을 발견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로 인해 부끄럽고, 다시 쓰는 고통을 겪은 것이, 저로 하여금 졸업 논문을 쓰기 전에 표절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줬어요."


기말보고서 표절 사건을 겪고 교훈을 얻어서, 표절이 되지 않도록 신중히 신경을 쓴 덕에, 내 졸업논문은 논문표절검사에서 8%가 나왔다. 보통은 18% 수준으로 뜬다고 하니 나는 거의 예술 수준으로 낮췄다고 볼 수 있다. 20%를 넘으면 졸업논문을 다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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