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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Apr 27. 2024

뤠이, 내가 졌어

  "동해~"

  '네가 날 부를 일이 뭐 있지?' 

  뤠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참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너 방금 부엌에서 요리한 거 맞아?"

  "응."

  주말인 오늘, 집에는 딱 셋만 있다. 메이쓰가 맨 먼저 점심을 만들어 먹었고, 다음으로 내가 요리를 했다. 그래, 방금 주방을 쓴 것은 내가 맞다. 우리 셋다 뻔히 아는 사실을 뭐 때문에 묻나? 

  "요리한 후에 가스밸브 잠그는 거 잊지 마."

  '아하! 내가 가스밸브 잠그는 걸 깜빡 잊은 걸, 옳다구나 하고 잡아서 내게 잔소리를 돌려주는구나?'

  뤠이의 얍삽한 눈빛이 희미하게 눌러가며 웃더라니. 내게 그 잔소리를 하고 싶었던 거야?


  뤠이가 나를 대신해서 가스밸브를 잠그면서 '가스 잠그는 거 잊지 마'하고 일깨워주는 것이면, 그건 뤠이가 아니다. 뤠이는 점심을 만들러 주방에 들어가서 막 가스레인지를 쓸 참이라 내가 가스밸브 잠그지 않은 것이 그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집 공동수칙에 '주방을 사용한 후에 가스밸브를 잠근다'가 있으니, 내가 공동수칙 어긴 지점을 잡은 것이다. 

  '뤠이, 너의 치사함에 탄복하겠다!'


  뤠이는 이 세어 하우스에서 생활습관이 제일 엉망이라, 내 잔소리를 좀 많이 듣는 편이다. 뤠이가 금방 쓰고 나온 화장실을 들어갔다가는, 똥을 누고 물을 깨끗이 내리지 않은 걸 보게 된다. 그럼 여간 더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잔소리를 했다.

  "뤠이, 다음 사람을 위해 확실하게 물 좀 내려."


  대만의 전기밥솥은 우리나라와 좀 달라서, 물을 바닥에 깔고 그 증기로 뭔가 익히는 방식인데, 전기밥솥 바닥에 물이 다 증발하면 딸깍하고 눌러놨던 버튼이 탁 올라오면서 다 익었다고 알려준다. 플러그를 뽑지 않고 그냥 두면 솥이 절절 끓지는 않지만, 보온상태처럼 뜨끈뜨끈하다. 그러니 사용이 끝나면 플러그를 뽑아야 한다. 한국 전기밥솥처럼 선이 꽂힌 상태에서 '사용 끝'을 설정하는 기능이 없다. 뤠이는 전기밥솥을 사용하고 플러그 뽑는 법이 없다. 한 일주일간 내가 대신 뽑았다. 더 이상은 짜증이 나서 그를 대신해 줄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뤠이, 전기밥솥 쓰고 플러그 빼는 거 좀 잊지 마. 벌써 일주일째야."


  우리 집은 돌아가면서 쓰레기를 버리는데, 다들 쓰레기통이 꽉 차 넘쳐나기 전에 알아서들 착착 처리한다. 뤠이 차례만 오면 쓰레기통이 폭발을 한다. 한 번은 집주인이 욕실 수도꼭지를 수리하러 왔다가 그 꼴을 보고 쓰레기를 묶어놓고 간 적도 있다. 

  쓰레기통이 폭발할 지경이 된 것을 보니 이번에도 뤠이가 처리할 차례인가 보다. 낸시가 방으로 들어오며 내게 투덜거린다.

  "동해, 뤠이보고 쓰레기 좀 처리하라고 해. 내가 말하니까 들은 척도 안 해." 

  "낸시, 뤠이는 내 말도 안 들어." 

  나와 낸시가 그의 비협조적 태도에 '참 답이 없군' 하며 살짝 욕을 퍼붓고 있는데, 밖에서 쓰레기통 비우는 철커덩 벌커덩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 치우는 모양인데?" 우리 둘은 웬일이라니 하는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뤠이가 내게 잔소리를 돌려주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데, 뤠이는 누가 '너 이거 잘못했잖아'하는 소리를 굉장히 듣기 싫어하는 것 같다. 나이 든 내가 젊은 애들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면 미움을 받을까 봐 참고 또 참았는데, 이제 놈의 약점이 뭔지 알았으니 안 참아도 되겠다. 놈이 공동수칙을 잘 지키지 않으면 다른 룸메이트들이 보는 앞에서 '너 이거 잘못했잖아'하고 잔소리 퍼붓고 말겠다! 잔소리 듣는 게 싫으면 고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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