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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Apr 06. 2024

내 버터는 누가 먹었을까?

  식빵을 토스터기에 구워서, 버터를 바르고, 쨈을 바르고, 치즈를 올려 밀크티와 함께 먹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내 사소한 행복이다. 피곤해서 일어나기 싫은 날에는 '아침 먹어야지.'로 유혹해서 나를 깨운다. 


  오늘 아침에 버터를 바르려고 했을 때, 내 버터가 내가 마지막으로 잘라먹은 가지런한 모양이 아니고, 여기 툭 저기 툭 막 잘린 모양새로, 양도 푹 준 것을 발견한다.

  '이건 뭐야? 누가 내 버터를 먹은 거야?'

  누구 짓일지 단박에 생각이 미친다. 뤠이 짓이다. 청명절 휴가로 다들 집에 갔거나 여행을 떠나서 집에는 나와 메이쓰와 뤠이 셋 밖에 없다. 메이쓰가 아니면 뤠이의 짓인 것이다. 메이쓰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좀 쓰자고 말하지 그냥 남의 물건에 손댈 애가 아니기 때문에 제외하고 나면, 뤠이 밖에 더 있냔 말이지. 그는 어제저녁에 스파게티를 해 먹었었다. 

  

  한 번은 그냥 눈 감아준다고 치더라도, 같은 일이 한번 더 일어난다면? 내가 왜 소양 없는 그의 행동으로 평화로운 내 아침의 정적에 '이건 뭐야?'하고 열받아야 하냔 말이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뤠이에게 직접 "너 이 버터에 손댔냐?"하고 물어서 "응"하는 대답을 뱉게 하고 "그거 내 거야. 스티커가 붙어져 있잖아. share라고 안되어 있잖아."하고 민망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다. 그래! 나는 유치해서, 나는 덜 자라서. 하지만 참았다. 소양 없는 그를 응징하겠다고 내 인격을 갈아 넣을 필요가 뭐 있나. 우리 세어 하우스는 단체톡이 있는데, 거기다 "이거 내 거니까, 공용인 줄 오해하고 쓰거나 하지 말아 줘 "하고 가볍게 한마디 올렸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물건을 공용인 줄 알고 썼는데, 물건 주인이 단톡으로 이렇게 말한다면, "어, 미안, 나는 공용인 줄 알고 썼어."라고 자기 실수를 단박 인정할 것 같다. 그런데, 뤠이는 자기는 그런 일 모른다는 듯이 아무 말이 없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실토하건대 나는 저 녀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딱 보는데 싫었다가 아니다. 한 사건을 겪고 나서 싫어하게 되었다.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우리 세어 하우스는 쓰레기를 돌아가며 버린다. 쓰레기는 일반쓰레기, 종이, 플라스틱, 이렇게 세 종류인데, 자기 차례가 오면 일반쓰레기는 반드시 하나 버리고, 종이류와 플라스틱류는 버릴 만큼 쌓였으면 버리고 그렇지 않으면 안 버려도 된다. 

  뤠이가 막 이사 들어와 살기 시작할 때였다. 낸시가 뤠이에게 일반쓰레기 두 개를 처리하라고 시킨 적이 있다. 다들 일반쓰레기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두 화장실의 휴지통도 비워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낸시, 쓰레기 버리는 규칙은 일반쓰레기 하나잖아. 왜 뤠이에게 두 개를 버리라고 하는 거야?"

  "일반쓰레기 하나와 재활용쓰레기 하나를 버리나, 일반쓰레기 둘을 버리나, 어쨌든 두 개를 버리는 거잖아."

  "그렇지 않지. 우리 누구도 화장실 휴지통 비우는 것을 반기지 않잖아? 일반쓰레기를 둘과 일반쓰레기 하나와 재활용 하나는 다르지." 

  "뤠이가 하겠다잖아."

  뤠이는 내가 자기편을 들어 낸시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데, 한마디 거들지 않고 어물쩍 서있기만 했다.

   '쓰레기를 이래 둘 버리던, 저래 둘 버리던 아무 이의가 없었더라면, 아까 그 원치 않던 표정은 뭐였대?'

  

  뤠이는 오늘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역시 그의 사람됨은 내가 싫어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동해, 밖에 묶어둔 쓰레기, 위저가 버려야 한다는데?" 메이쓰가 말한다. 

  "아냐, 그거 뤠이가 버리려고 묶어 놓은 거야." 내가 대답한다. 

  "자기가 묶어 내놓은 게 아니래." 메이스가 하는 말이다. 

  "뤠이, 지난번에 TK가 너 대신해서 쓰레기 버려줘서 이번엔 네가 연속 두 번 하기로 했잖아. 그래서 네가 저거 묶어 내놓은 거잖아." 마침 방에서 나온 뤠이에게 확인을 한다. 

  "어, 그래?" 내 눈을 피하며 어쭙잖게 대답했다.

  기가 막혀서. 연속 두 번 버려야 한다고 내가 닦달을 해서야 겨우 쓰레기를 묶어 내놓고서는, 몰랐다는 듯이, "어, 그래?"라고? 애가 인격이 뭐 이래?

  뤠이는 딱 '여자 낸시'다. 낸시의 소양 없음은 언제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우스메이트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꾀부리는 면이 안 보이면 좋겠는데, 난 이게 너무 보여서, 애들이 소양 없는 짓을 하면 딱 밉고 딱 싫다. 나이가 들면 수용력이 커질 줄 알았더니, 싹수없는 짓을 보고 참아내는 인내력은 점점 사라지고, 눈에 싫은 사람들만 자꾸 더 보인다. 이를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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