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일찍 졸업하기 위한 분투기
12월 졸업자 명단
졸업의 마지막 관문, 도서관 심사시스템에 졸업논문을 올렸다. 그리고 통지받기를, 당신이 12월 졸업예정자 명단에 있는지 확인해 보던가, 아니면 1월 3일 이후에 올리란다. '나 참, 기가 막혀서.' 1월 3일 이후에 올릴 수 있다는 소리는, 1월 4, 5, 6일쯤이 되어야 귀국할 수 있다는 소리다. 이건 안될 일이다. 나는 크리스마스 전에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라고.
나는 내 지도교수에게 연락할 일이 생긴 것을 기꺼워하며 (나는 지도교수를 짝사랑하는 중이라), 이미 업무시간이 지난 저녁시간인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임(林) 교수에게 문자를 보낸다.
“교수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제가 12월 졸업생 명단에 없어서, 1월 3일 이후에나 논문을 올릴 수 있다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학과사무실에 가서 슈에니 조교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할 건데요, 만약 그녀가 내 이름을 12월 졸업자 명단에 넣지 않았다면, 조정할 수 있을까요?”
'조정할 수 있을까요?'라고 의문형을 썼지만, 내 의도는 슈에니를 압박하여 '조정해 주세요!'였다.
귀국 일정이 어긋난 것보다, 내가 보낸 문자를 임교수가 빨리 확인하지 않는 것에 기분이 우울해진다. 임교수에게서 신속하게 답이 오면, 어째 총애받는 학생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고, 보낸 문자를 읽지도 않고 있으면 나도 교수를 귀찮게 하는 학생 중 하나이구나 싶어서 우울해지는 것이다.
저녁 8시에 보낸 문자에 밤 10시가 되어 답이 왔다. 내일 물어봐 주신단다.
“아마 이번 학기 졸업생은 1월 3일 이후에나 논문을 올릴 수 있을 거야. 박사과정 신청에는 영향이 없을 거야. 미뤄지면, 대만 장학금 신청에 영향을 미치니?”
“둘 다에 아무 영향이 없어요. 하지만, 귀국에는 영향이 있어요. 1월 3일이 지나야 논문을 제본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에 12월 명단에 있다면, 지금 당장 논문을 도서관 시스템에 올릴 수 있고, 바로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고요. 이준(伊君)은 이미 졸업장을 받았거든요. 제가 슈에니 조교에게 12월 안에 꼭 졸업할 거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어요. 그녀도 내게 언제 귀국하냐고 몇 번이나 물었더랬어요. 그런데, 12월 명단에 없어요.”
학과조교 슈에니
아, 나는 정말이지 아무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 싫다. 아주 바쁘게 뭐에든 정신을 쏟아야지, 아무것도 급하게 할 것이 없는 무료함이 딱 싫다. 졸업이 미뤄지면 한 1, 2주를 그렇게 보내야 하는데, 난 그게 아주 싫다.
다음날 아침, 학과조교 슈에니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마침, 내 지도교수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는 슈에니 옆에 서서 그 전화 통화를 귀 기울여 들었다. 임교수가 오래도록 따져 물었고, 슈에니는 "방법이 없어요."를 되풀이했다.
임교수의 전화를 끊고 나서 슈에니는 '네 지도교수를 동원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거야'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럼, 12월 명단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요?"
"10월에 논문 구술시험을 신청했었어야 해."
"이번 학기 구술시험 신청기간은 11월 1일부터 19일까지였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10월에 신청한다는 거예요?"
"10월에 신청했었어야 해."
"빨리 졸업하고 싶은 사람은 10월에 신청하라는 통보를 한 적이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래."
"지금 바꿀 수는 없는 거예요?"
"이미 시간이 지나서, 방법이 없어."
"알겠어요."
그녀는 '미안하다'라고 했지만, 나는 정말이지 '괜찮아'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학과 사무실을 나왔을 때, 임교수의 문자를 받는다. 슈에니 조교에게 전화를 해봤는데,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며. 임교수가 행정을 알아야, 슈에니를 다그칠 수 있을 텐데, 임교수도 졸업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그냥 슈에니가 하는 말이 맞거니 듣기만 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학과조교 슈에니는 수십 년째 학과조교를 담당하고 있어, 학과 행정을 가장 잘 아는데, 어떨 때는 주임교수의 파워까지도 능가한다. 그러니, 슈에니의 태도는 이런 거였다. '내가 안된다고 했으니 안 되는 거야.'
본부의 교무행정처를 찾아가다
슈에니의 답변은 어째 뭔가 석연치가 않아서, 나는 고분고분 "알겠어"를 해줄 수가 없었다. 본부의 교무행정처를 찾아갔다.
"도대체 어떤 조건의 사람들이 12월 졸업자 명단에 들어가는 거죠?"
담당자가 내가 왜 꼭 12월에 졸업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우리 학과조교에게 전화를 넣어 무슨 상황인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내 논문시험 성적을 조회해 보는 것이다.
"12월 명단으로 바꿔줄게요."
'뭐? 이렇게 간단한 거야?'
그냥 시스템상에서 조금 조정만 하는 정도인 것 같다. 명단을 바꿨다고 상사의 사인을 받거나 하는 과정도 없는 것 같다.
'슈에니는 왜 안 해주겠다고 버텼던 거래?'
내가 짐작하기에, 슈에니는 외국인 학생이 12월 10일에 논문시험을 봤으니, 졸업심사위원들의 의견대로 논문을 다시 고치는데 한 달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보고, 나를 1월 졸업자로 보고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슈에니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은 채로, 임교수에게 '제가 슈에니를 이겼어요.' 하고 보고했다. 다음날 점심때쯤 임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점심때 교무행정처의 누구랑 점심을 먹었는데, 빨리 처리해 주라고 당부해 두었단다. 그리고, 2시쯤 해서 담당자의 전화를 받는다. 처리해 뒀으니, 이제 도서관 시스템에 논문을 올리고 뒷 졸업수속을 밟으라는 것이다. 친구들과 따안(大安) 공원을 산책하다 급히 돌아와, 졸업수속을 밟는다.
졸업장
다음날 바로 본부 교무행정처에 졸업장을 받으러 갔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서, 옆에 있던 직원이 대신 처리를 해주는데,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내 졸업장을 출력해 뒀느냐고 물었다. 전화 저 편에서 졸업장은 출력해 뒀는데, 내가 졸업을 위한 다른 행정 처리를 다 하고 왔는지 되묻는 모양이다. 옆 직원이, “다 했어.”하고 대답한다. 정말 빨리 처리해왔어 하는 표정이다.
'그래, 나 똘똘하고 싶을 땐 똘똘해진다고. 그깐거 며칠 걸릴게 뭐 있어.'
알록달록 화려한 졸업장을 받고, 1층에 내려가 성적증명서와 여분의 졸업장을 출력한다. 자리를 비웠던 담당자는 오늘 거기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과 태도는 어제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임교수의 당부가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녀는 어제도 오늘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눈밖에 볼 수 없어서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한 사람의 눈빛이 어제의 그 눈빛이었다가 오늘의 저 눈빛으로 변하는지. 나는 이런 사람을 제일 싫어해.
어떤 사람들은 외국어가 서툰 것을 두고, 그 사람의 정신 수준이 마치 그 수준인 듯이 취급하는데, 그럴 때 좀 경악을 느낀다.
'나 바보 아니거든! 나 중국어가 좀 안될 뿐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