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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기관찰

무선 이어폰의 안 편리함

by 김동해

나는 핸드폰에 별 욕심이 없다. 가족들 중 누가 새 핸드폰을 사면 헌 것을 물려받아 쓴다. 내게 핸드폰은 전화기로서라기 보다는 잠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중국드라마를 보는 용이라, 너무 좋으면 차라리 아깝다. 중드를 좀 빡세게 보는 편이라 내 손에 들어오면 고장 나지 않는 핸드폰이 없어서, 일 년도 채 안된 완전 새것 같은 것을 내게 물려줄라치면 내게 물려주지 말고 중고로 팔아 새것을 사는데 보태라고 한다.

이번에는 작은올케가 쓰던, 반으로 접는 삼성 핸드폰을 물려받게 되었다. 남들은 핸드폰을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쓰는지, 내 보기에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 만족스럽다!'

카톡과 라인만 깔아놓고는 그냥 내버려 뒀다. 한 며칠 있다가 중드를 보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는데, 이어폰 꽂는 구멍이 없는 것을 발견한다.

'아, 된장! 무선 이어폰을 사야 하는 거야?'

가족들이 쓰다 버린 핸드폰이 남아돌듯이, 누군가 쓰다 둔 무선 이어폰도 있을 것이다. 가족단톡에 안 쓰는 무선 이어폰이 있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답이 왔다.

"내일 갖다 줄게."


한 며칠 지나 엄마가 잠든 밤에 혼자 조용히 중드를 볼 거라고 이어폰을 꺼냈다. 무선 이어폰은 써본 적이 없으니 검색을 해가며 이리 조물 저리 조물 했지만 첫날은 이어폰으로 드라마 보기에 실패했다.

'된장, 뭐 이케 복잡해.'

내가 기계치라 뭔 전자제품도 내게 와서는 비행기 조정판처럼 복잡해져 버리니까, 이건 뭐 내 탓이라고 치자. 하지만 며칠 뒤에 나는 다른 이유로 무선 이어폰에 완전 분노하고 말았다.

"오 마이갓! 이어폰을 충전을 해야 해?"

무선 이어폰은 충전을 해야 한다는 것에 기가 딱 막히고 말았다. 핸드폰을 충전해서 쓰는 것도 귀찮아 죽을 판인데 말이다.

남들이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었을 때, 조금 부러웠었다. '선이 없으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쓰는 이어폰은 제대로 말아서 정리해두지 않으면 뒤룩 엉켜버렸다. 아무리 잘 넣어둔데도, 매번 꺼내 쓸 때마다 이리저리 엉킨 것을 좀 풀어야 했다. 그러니, 무선이어폰에 대한 환상이 좀 있었더랬다. 그 심플함! 그 날렵함! 그 도시감! 그 젊은 감!


된장, 웬걸. 충천을 해야 한다. 저녁에 중드 몇 편도 안 봤는데, '배터리가 10% 남았습니다. 5% 남았습니다, 2% 남았습니다'하는 멘트가 계속된다. 편리한 무선 이어폰의 이 안 편리함 때문에, 나는 이걸 진보한 상품이라고 도저히 인정해 주지 못하겠다. 매번 부지런히 전기를 먹여줘야 한다는 거, 나는 이걸 원시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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