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관찰

추운 겨울 손뜨개

by 김동해

나는 한동안 같은 일을 하는데 좀 진심이다. 한동안은 등산만 다니고, 한동안은 야구장만 다니고, 한동안은 책만 읽고, 한동안은 중드만 보고, 한동안은 술만 마시고 이런 식이다. 그래서, 어느 해 어느 계절에 뭘 했나 생각하면, '아! 그때는 집에 콕 박혀 시장도 안 보러 가고 중드만 봤구나' 이렇게 회상이 되는 것이다.

이번 겨울 방학, 한국으로 돌아와 2개월은 넘고, 3개월에는 조금 못 미치는 동안 뭘 했나 하면, 뜨개질만 했다.


나이 팔십이 가까워져 가는 엄마가 소일 삼아 뜨개질방을 다니면서 롱코트를 하나 떴는데, 제법 괜찮았다. 나도 여름 카디건이나 하나 배워서 떠볼까 하고 엄마가 다녔다는 뜨개방을 찾아갔다. 여름옷은 다 코바늘로 뜬다고 생각을 하고 코바늘 작품을 골라보려는데, 사장님이 여름옷도 대바늘로 뜨는 것이 더 예쁘다고 대바늘 뜨기를 권하신다.

'오우, 그래? 난 대바늘은 안 배워도 뜰 수 있잖아?'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수년 전에 거의 다 뜨고 마감이 하기 싫어 내버려 뒀던 조끼를 몽땅 풀었다. (다운업방식의 대바늘 뜨기에서는 앞뒤 몸판을 뜨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이어 붙이는 등의 마감을 하는 게 상당 귀찮고 어려운데, 아마도 그래서 마감을 마치지 못하고 버려둔 것 같다.)

"어머니, 심심한데 이거나 좀 풀어줄래?"

시골에 사시는 엄마는 특히나 겨울이면 할 일이 없어 심심하시다. 나는 엄마와 시간을 같이 보내는 방법으로 엄마에게 실을 좀 풀어달라고 했다.

"앗따 마감을 꼼꼼히도 해놨네." 엄마가 말했다.

나도 안다. 내가 꼼꼼함을 발휘하면 어떤 수준이 되는지. 나는 한 올 한 올 풀 생각을 했기 때문에 풀 엄두가 나지 않던 것인데, 엄마는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은 툭 잘라내면서 후뚝후뚝 풀어냈다. 그런데, 수년동안 조끼인 채로 있었던 실은 꼬불꼬불해서 그대로 다시 뜨기는 좀 말씀이 아니다.

"김을 씌우면 새 실처럼 되는데." 엄마가 말했다.

집에 마침 전기냄비가 있어 거실에 가져와 물을 끓여 그 위로 실을 통과시켜 실에 뜨거운 김을 씌워주었다. 그리고는 새 실처럼 된 털실을 가지고 엄마가 언젠가 떴던 카디건형 조끼의 도안을 보고 사이즈만 조금 줄여서 뜨기 시작했다.

엄마도 언제가 뜨다만 것이 있는데, 다시 풀어서 내 옆에서 다시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나는 소파 바닥에 앉아 다정한 모녀 그림을 만들어가며 뜨개질 삼매경에 빠졌다.

카디건 형태의 조끼기 때문에, 뒤판, 오른쪽 앞판, 왼쪽 앞판, 이렇게 세 장을 떠서 이어 붙이고, 겨드랑이선, 목선, 가운데 단추여미는 부분은 코잡아 뜨기로 마감해줘야 한다. 하루씩 걸려 세 장의 편물을 완성했다. 마감도 하루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거의 세 장의 편물을 뜨는 시간만큼 걸렸다.

떴다 푼 실을 김까지 씌웠더니 가늘어져서, 엄마의 사이즈에 맞도록 잡아둔 도면에서 몇 코를 줄였더니, 조끼가 너무 작았다.

'아, 실패!'

실패에서 끝낼 수는 없는 것이어서, 다시 실을 주문해서 설날 연휴에 열심히 붙잡고 떴다. 아, 된장, 이번에는 실을 너무 싼 걸 샀더니, 뜬 수고가 아깝도록 싼 티가 난다.

'아, 또 실패!'

"그냥 사 입는 게 사게 치이지 않겠니?" 언니의 말이다. 내가 봐도 좀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대만으로 돌아가기 전에 입을만한걸 하나는 완성하고 말겠어!'의 의지가 충천한다.

그리고 또 실을 샀다. 이번에는 도면까지 샀다. 도면에는 몇 코를 잡으시고요, 어디는 어떻게 뜨시고요 하는 상세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뜨라는 대로 뜨면 사이즈가 작거나 커서 못 입는 낭패는 면할 수 있다.

이번에는 대만에 가서 입을 수 있도록, 여름용 실로 반팔을 떴다. 옷 모양새는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나왔는데, 옷이 너무 두꺼워서 이걸 어떻게 여름에 입겠나 싶다. 뜨개실 파는 사이트에서 도면을 팔기 위해 보여준 사진과 너무 느낌이 다르다. 사진에서 보여진 옷은 구멍이 송송해서 여름에 입기 좋겠다 이런 느낌이었단 말이지. 떠본 결과, 웬만한 수건 두 장 두께의 느낌이 났다.

'아, 또 실패!'


화가 나서, 평소에는 게을러서 절대 하지 않는 상품 구매 리뷰를 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선 이어폰의 안 편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