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귀가 얇아서

by 김동해

2월에 자원봉사자 시간표를 자기가 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것과 관련한 메일은 오지 않았다. 내가 뭔가 자료를 덜 올려서 2025 쌍북세계장년운동회 자원봉사자 신청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기다리고 기다려서야 메일이 하나 왔다. 당신이 봉사하기로 신청한 경기장이 취소되었다, 여전히 자원봉사를 할 생각이라면 남은 장소를 찾아봐라,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남은 경기장 이름이 몇 적혀있었다. 자원봉사자 수가 부족하다는 경기장들이 어디쯤 있는지, 갈만한 위치인지 하나하나 검색을 해본다.

'더럽게 멀잖아!'

자원봉사를 하러 가는데, 1시간 30분, 돌아오는데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테니, 하루에 3시간을 길에서 버려야 한다. 하루 종일 무급 봉사하러 가는데, 오가는 시간만 벌써 3시간을 버려야 한다? 정말 내키지 않는다. 요새 알바를 좀 해볼까 하고 기웃거리는 중이라 생각이 미치기를, 2주간 하루 종일 일하면 최저 시급을 받아도 제법 벌 수 있는데, 뭐 하러 그 멀리까지 무급 자원봉사를 하러 가겠다고 이러나 싶은 것이다.

'그래, 경기장이 너무 멀어서 안 하는 거야.'

아침에 이렇게 깨끗이 맘을 접었다. 그리고 오후에 마음이 흔들렸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수칭을 만났는데, 봉사활동 한다던 거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 것이다.

"아니, 내가 신청한 경기장들이 경기가 다 취소되었다지 뭐야. 여전히 자원봉사를 하고 싶으면 남은 경기장 중에서 신청할 수 있다는데, 다 너무 멀어! 1시간 반이나 걸려."

"그 운동회 얼마동안 하는 건데?"

"2주 정도."

"1시간 30분이 걸린 들, 2주 정도야 뭐 어때?"

'그런가?'

수칭은 불교신자로 방학 때면 해외 봉사활동을 다닌다. 그리고, 십수 년째 머리카락을 기증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보기에 1시간 30분쯤 걸려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일은 뭣도 아닌 것이다.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자원봉사 교육도 하루 갔다 왔고, 온라인 교육도 6시간이나 받았는데, 이것도 좀 아깝긴 한가?

주견(主見)이 없는 나는 수칭의 말에 호락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장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내가 신청한 경기장이 다 취소되었다는데, 나 어떻게 해야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거야? 여기 여기가 내가 갈만한 거리야. 이곳으로 바꿔줄 수 있어?"

"우리가 당신의 자료를 검색할 수 있도록, 신분증번호를 알려주세요."

신분증 번호를 보냈더니,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곧장 회신이 왔다. 회신에는 내가 신청한 5곳 모두 취소되지 않았단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송산(松山) 구, 신의(信義) 구, 다안(大安) 구, 완화(萬華) 구, 중산(中山) 구의 축구장과 배구장을 신청했더랬다.

'그럼 내가 받은 그 메일은 뭐야?'

하여간, 아! 이렇게 나는 어영부영 정말 자원봉사자 활동을 하게 될 건가 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원봉사를 신청하는 꿍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