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결정

비자 신청

by 김동해

대만 입국

코로나19로 인해 대만으로 가는 일이 번잡스러워졌다. 학교 측은 언제 내 입국을 허락할는지 줄곧 연락이 없다가 드디어 비자 신청할 준비를 하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럼 입국은 언제 하게 되죠?" 그냥 '소식을 기다려주세요'하는 답장만 왔다. 개학은 9월 5일이고, 신입생 건강검진은 한 주 전으로 잡힌 학교 일정을 봤다. 제발 너무 일찍 오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입국 후 1주일 격리 기간과 신입생 건강검진까지 생각해서 부르면, 개학일보다 2주나 넘게 일찍 입국해야 한다. 그러면 그건 8월 중순 전이란 소린데, 그러면 한국에서 홍탕홍탕 놀 날은 얼마 남지 않는다.

한국에 오래 머무는 것도 겁이 나고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것도 겁이 난다. 한국에 오래 머물면 투지가 어째 희미해져버리고 말 것이 두렵다. 그냥 이렇게 날마다 잉여인간으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낮잠 자고 싶을 때 툭 자고 하면서 살아도 큰 일 날 것 같지 않아져 버린다. 투지가 사라지면 큰 일이다. 그냥 신경이 싸움닭처럼 파르라니 곤두서있길 바란다. 나는 아직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지. 이대로는 나 자신이 사랑스럽지 않아서 남은 생을 기쁘게 살기 힘들단 말이지. 나 자신이 예뻐 보이도록 힘을 내서 뭐라도 공들여 하나쯤 이뤄야 한다.


비자신청 예약제

나는 대구 사람이라, 비자신청을 하러 보통 부산대사관에 간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태풍이 지나가서 부산 쪽은 비가 많이 올 거라고 하니 수요일쯤으로 미룰까도 궁리한다. 미루다가 8월 광복절 휴가가 끼거나 해서 비자 발급이 늦어져 마음 졸이게 될까 봐 비가 오든 말든 화요일에는 가리라 맘먹고 신청 준비를 한다.

대만과 한국의 공휴일이 달라 그날이 한국은 공휴일이 아니지만 대만대사관은 업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대사관 사이트를 좀 뒤적이다가 보게 된다. 비자신청이 예약제로 변경되었다! 예약을 하러 클릭해 들어갔는데, 내가 방문하려던 날에 예약이 꽉 찼다. 아, 이런! 다음 주도 예약이 꽉 찼다. 그다음 주도. 그리고 또 그다음도. 오 마이 갓! 한 달 하고 2주 후쯤에나 예약이 가능하다. 난 9월 5일에 학기가 시작한다고! 그전에 가서 일주일 격리도 해야 한다고! 9월 13일에나 비자 신청 예약이 가능하면, 비자가 나오는 것을 기다려 입국하려면 학기가 한 달이나 가버린다고! 이런 된장! 머리가 아득하니, 점심이 넘어가질 않는다.

장학생 단톡방에 나랑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나 하고 도움을 요청해 본다, 서울대사관으로 가는 방법을 궁리한다, 대사관 교육조에 문의 메일을 보낸다, 하며 좀 동동거린다. 그러다, 서울대사관은 '장학생에 있어서는 8월 31일까지 예약 없이 방문가능하다'는 공지를 보고는 안심을 한다. 이제는 대사관 교육조에 부탁해서 어쨌든 부산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되는 방법 하나를 찾아놨으니, 이제 더 쉬운 방법을 찾아보는 거다. 나는 게으르기 때문에.


부산의 대만대표부

서울대표부에 문의했더니 부산 쪽에서 협조를 해주기로 했다며 예약 없이 그냥 가면 된단다. 무작정 도착하고 보니, 부산대사관 쪽에서 하는 말이, 장학생들 비자업무에 협조해 주기로 한 것은 맞는데, 전화로 연락하고 약속을 잡아서 왔어야 한단다. 담당 아가씨는 업무에 지친듯한 얼굴로 내가 무턱대고 찾아온 것을 언짢아했다. 일단 예약한 사람들부터 해주고 시간이 나면 해주겠다며 앉아 기다리란다. 이건 시간이 안 나면 안 해줄 수도 있다는 소리다. 대사관의 업무는 우리가 서비스를 받는 식이 아니라, 서비스를 구걸해야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상당 불친절하다.

온라인 예약페이지에서는 20분 단위로 예약을 받아주고 있었는데, 정말 한건마다 20분쯤이 걸릴 태세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세 건의 비자 신청이 이뤄졌다. 첫 번째 한 가족의 비자 신청에는 20분이 다 소요되었다. 그다음으로 남자 둘이 각각 앞뒤 20분 단위로 예약을 하고 같이 와서 처리하는 바람에 다음 예약자가 올 때까지 약간의 시간 공백이 생겼다. 아가씨가 나를 부른다. 다행이다! 나는 오늘 반나절 기다릴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마 다음날 또 와야 하는 것까지는 각오되지 않았다.

비자 신청은 이미 여러 번이라, 내가 갖춰간 서류는 그냥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수준으로 깔끔했다. 그녀, 내 서류를 한번 쓱 뒤적여보더니 다 됐단다. 17일쯤에 비자가 나오고 18일에 등기 발송을 할 거란다. 그러고는 결정적으로 내 결정장애를 유발하는 말 한마디를 던졌다.

"요사이 어느 지역은 등기 도착이 한 삼사일 지연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유념해 주세요."

나는 처음에는 우편으로 받겠다고 했다가, 그녀의 이 소리를 들으니 조금 망설여진다. 빠르면 19일 받겠고, 늦어지면 주말을 지나 22일이나 23일이 될 것 같은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비자가 박힌 여권의 등기우편이 중간에서 분실되는 상상을 깜빡해버린 것이다. 어째, 직접 가지러 오는 게 안전하려나?

“일단 지금 등기우편으로 신청했다가, 나중에 직접 가지러 오는 걸로 바꿔도 될까요?”

“요즘 비자발급업무가 많아서 우편으로 발송하겠다고 접수해 놓은 것을 다시 빼기가 힘들어요.”

무에 힘들게 있단 말이야? 이건 우편으로 발송할 서류 쪽, 저건 직접 찾아갈 서류 쪽, 이렇게 담아뒀다가 내가 전화로 직접 가지러 가겠다고 하면 여기 있는 서류를 저기 있는 서류로 담아버리면 될 일을.

'예약을 하지도 않고 왔는데 오늘 업무처리를 해준 것만도 과분한 줄 알아라, 더 이상은 어떤 친절도 없다.' 이런 느낌이랄까. 하긴, 내가 오늘 예약을 안 하고 왔다고, 그녀가 영 까칠하게 굴며 업무처리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니, 뭐 비자를 찾으러 한번 더 오는 것도 그렇게 억울할 건 없다 싶은 것이다.

“그럼 제가 직접 가지러 올게요.”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왜 직접 가서 수령하겠다고 했는지 후회가 돼서 꿀꺽 화가 치미는 것이다! 나는 아주 게으른 사람이다! 이건 게으른 나의 격조에 너무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었다. '내가 왜 이런 멍청한 결정을 했지?'

가지러 가야지 별수 있나 하고 포기가 될 때쯤 짜증도 좀 가라앉으면서, 내가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한 숨은 의도를 발견한다. 내 마음 저 아래에는 엄마로부터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로부터 좀 벗어날 수 있다면, 까짓 거 몇 시간 기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한들 기껍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엄마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나갔다가, 동네 지인이 주는 양파 한 박스를 뒤에 싣고 내리막길을 평소처럼 내려오다, 뒤에 실은 박스의 무게로 속도가 붙었고, 제동을 잡을 새도 없이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두 달여 가까이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지냈는데,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가장 한가한 내가 엄마를 돌보게 되었다. 밥이며 빨래며 청소의 기본 일상 위에, 날마다 엄마를 목욕시키고, 엄마 친구들이 놀러 오면 먹을 것들을 좀 챙겨내고, 뼈를 빨리 붙여준다는 민간 탕약을 끓이고, 밤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휠체어를 끌어내주고(엄마 방에는 문턱이 있다) 하는 신체적 노동 위에, 회복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엄마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는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정서적 피로까지 더해 나는 에너지가 바닥이 났던 것이다. 하루쯤 엄마를 벗어나 쉬고 싶었던 것이다. 어쩜, 동기가 없는 행위란 없는 거였다.


코로나

두 주가 걸릴 거라던 비자는 일주일 만에 나왔다. (평시에는 일주일이었는데, 코로나19로 두 주로 늘어났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에도 교육비자는 정상적인 속도로 발급되었다.) 그러니, 등기 도착이 삼사일 늦었졌던들 원하는 날짜 안에 충분히 받을 수 있었던 거였다.

비자를 찾으러 갔다 온 며칠 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여름 내내 엄마를 먹이고 씻기느라 대문 밖에도 안 나가본 내가 코로나에 걸렸으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염될 경로는 비자를 수령하러 가던 그날의 부산행 기차밖에 없었다. 물 한 모금 마시겠다고 마스크를 딱 한번 내렸을 뿐인데, '옳거니 지금이다'하고 전염되고 말았다. 엄마를 돌보느라 체력적으로 소진되어 있었던 탓에 면역력이 약해있었던 때문인 것 같다. 다행히, 내가 코로나로 드러누웠을 때, 엄마는 막 깁스를 다 풀었다.

내 멍청한 결정이 끌고 온 성가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에만 있던 내가 코로나에 걸렸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고, 고열이 나던 날 갔던 응급실에서도 코로나 판정이 나지 않아, 따로 격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 언니와 남동생에게 전염을 시키고 말았다. 그 바람에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나 혼자 엄마 돌보느라 피곤해서 걸린 거거든? 두 달여를 나 혼자 고생을 하고 있으면,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내게 중간중간 하루쯤의 휴가를 만들어 줬어야 한다. 내 형제들은 다 우리 엄마의 자식이어서, 이런 인자함이 없다. 없는 인자함을 강요하는 것도 지혜롭지 않아서 나는 그냥 조용히 욕을 먹고 말았다. 나도 내 엄마 딸이라서 속이 좁은데, 욕을 먹은 만큼은 마음이 넓어졌다. 누가 그랬다,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억울한 걸 참아낼 수 있도록 마음이 커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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