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루의 졸업 도와주기
칭루, 내가 도와줄께
칭루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화가 나버렸다.
칭루는 졸업을 해야 하는 기한까지 며칠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졸업과정을 밟았다. 본인은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여기서 발로 뛰어야 하는 과정을 나한테 부탁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급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한국인 아가씨의 졸업과정을 도와준 적이 있기에 뭐 그냥 해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칭루의 부탁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하나씩 쌓이고 쌓이자, 하나가 더 얹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은근 짜증이 나는 것이다.
“동해, 지금까지 쓴 것 논문 격식 좀 살펴봐줘.”
“칭루, 논문 격식 따윈 지금 신경 쓸 것 없어. 일단 내용부터 다 써.”
그렇지만, 칭루가 격식에 목을 메니 구글미트로 만나 이렇게 저렇게 고쳐야 한다고 알려준다.
“칭루! 논문초록, 목록, 표목록, 그림목록, 매 장의 첫 페이지, 참고문헌, 부록은 홀수 쪽에 와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왜 매번 고칠 때마다 잊어버리는 거야?”
“아 그랬어? 그것도 홀수 쪽에 와야 되는구나.”
학과에서 올려놓은 논문 격식 예시를 따라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동해, 논문발표에 쓸 깔끔한 PPT양식 하나 보내줘. 너 PPT양식 많이 갖고 있잖아.”
논문발표가 코 앞이고, 그 시간 안에 PPT를 다 만든다고 하더라도 발표 연습할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웬 이쁜 거 타령인지. 내가 갖고 있는 PPT를 다 클릭해서 열어보고 깔끔 버전으로 여럿을 보내준다. 이때만 해도 박사학기가 시작하기 전이라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그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집착하는 칭루가 답답했을 뿐이다. 칭루는 행동은 완벽주의자가 아닌데, 마음은 완벽주의자라, 늘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 자신도 그걸 안다. 나는 PPT 작성이 다 되면 나를 상대로 논문발표 연습을 해봐도 된다고, 내가 한번 들어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리고, 칭루는 정말 나를 상대로 논문발표 연습을 했다.
“동해, 논문 시험 때 네가 좀 참석해서 교수님들이 지적하는 걸 좀 기록해 주면 안 될까?”
“칭루, 이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네 연구가 나랑 같은 영역도 아니고. 내가 네 논문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교수님들의 지적을 잘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 도와주고 싶지만 내가 능력이 안될 것 같아.”
“도와주기 싫다는 거지?”
칭루가 딱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이런 느낌이었다. 당시 나는 막 대만에 입국해서 격리호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대만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 입국자에 대해 1주일 격리 정책을 할 때였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칭루의 표현을 되씹다가 도와줄 방법이 떠오른다.
“칭루, 내가 교수님들이 지적하는 내용을 하나하나 기록하지는 못해도 참석해서 녹음을 해줄 수는 있겠어. 이거라도 원하면 내가 도와줄게.”
칭루의 논문발표 시험은 2명의 학생이 앞뒤로 이어서 치러졌는데, 앞에 발표한 학생에 대한 교수들의 의견이 많아 칭루의 논문시험은 거의 1시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그러니, 나는 칭루가 원했던 시간에 접속해서 1시간을 더 붙잡혀 있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졸업 논문 발표는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녹음버튼을 눌러만 두고 내 볼일을 봤어도 좋았을 것을, 나는 또 행여 비상상황이 생길까 봐 그 긴 시간을 꼿꼿이 컴퓨터 앞에 앉아 세 교수들의 긴긴 지적을 다 들었다.
칭루는 교수님들의 제안대로 논문을 고치고 나서 다시 한번 논문 격식을 봐달라며 보내왔다.
“동해, 교수님께서 사소한 틀린 글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너 어디 아는 대만인 좀 없어? 너 인맥이 넓잖아.”
“내가 미리미리 이야기했잖아. 모국어자라고 그냥 논문을 던져준다고 고쳐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가면서 고쳐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학교가 제공하는 외국인 학생 도와주는 언어 자원봉사자들 만나서 조금씩 조금씩 고쳤다고.”
나도 내 논문을 던져주고 고쳐달라고 할만한 만만한 대만친구가 없다. 있다고 한들 미안해서 그 부탁을 할 수 없다.
“동해. 졸업하려면 다음으론 뭐 해야 해?”
'넌, 학과조교가 준 설명서 도대체 보는 거니 안 보는 거니? 그냥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된다고.' 그렇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고, 내가 먼저 졸업을 경험했기 때문에 친절하게 알려줘야 한다. 나도 정말 귀찮도록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봤으니까. 물론 나는 조교가 준 설명서에 나와있는 것까지는 묻지 않았다.
“다 고친 논문을 학과조교에게 이메일로 보내서 주임교수의 사인을 받아달라고 해야 해. 이거 한 반나절 걸려. 그리고 통과된 논문을 도서관 시스템에 올려. 이거 한 삼일 걸려. 그러면 도서관이 통과했다는 서류 1장을 줘. 그럼, 주임교수가 사인한 종이 한 장, 도서관 시스템이 준 종이 한 장, 그리고 논문, 책등, 이렇게 4가지를 나한테 주면 내가 인쇄해 줄 수 있지.”
조교가 고친 논문을 종이로 인쇄해서 가져오라고 한단다. 남들은 이메일로 처리를 하기도 하더구먼. 어쩔 수 있나, 내가 칭루를 대신해서 인쇄해서 가져다준다. 주임이 거기다 사인한 종이는 이메일로 칭루에게 보낼 줄 알았더니, 그녀가 이것도 나보고 받으러 가란다.
“동해, 과 조교가 연락이 왔는데, 주임교수 사인받아놨다며, 직접 와서 받아가래. 너 지금 좀 갈 수 있어?”
난, 여기서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도 막 학기가 시작한지라 입학 절차를 밟고, 신입생 건강 검진을 받고, 거류증을 신청하느라 바쁘다. 내 할 일도 다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몸까지 묵직해서 아침부터 침대에 누워 종일을 쉬고 있는 참이었다.
“나 피곤해서 막 침대에 누웠어. 내일 가면 안 될까? 많이 급해? 누군 이메일로 보내주더라는데? 너도 이메일로 좀 보내달라고 해봐. 그리고, 그거 도서관 시스템에 논문 올릴 때 꼭 필요한 서류야? 아니라면 일단 넌 도서관 시스템에 논문 올리는 과정부터 하면 되잖아. 그리고 내가 내일 가지러 가고. 양슈엔이 막 도서관 시스템 통과했으니까 잘 기억하고 있을 거야. 물어봐, 주임교수 사인받은 종이가 꼭 있어야 도서관 시스템을 밟을 수 있는지. 필요하다 하면 내가 지금 갈게,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내일해도 되는 거잖아.”
칭루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내가 가기 귀찮아하니 그럼 내일 가라고 한다.
“알았어, 내일 가. 내일 아침에 일찍.”
‘넌 지금 졸업을 완성해야 하는 기한일까지 하루가 급한데, 하루를 미뤄서 될 일이 아니잖아. 내가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다음 과정을 밟는데 필요한지 물어보고 내게 알려달라는 거잖아. 꼭 필요한 거면 내가 지금 가겠다고.’
내일 아침에 가는 것이 백번은 더 귀찮다.
“내가 원하는 건 다음 과정을 밟는데 그게 꼭 필요한 건지 알려달라는 거잖아. 양슈엔에게 물어보라고.”
결국 내가 직접 양슈엔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
“필요해.”
대충 단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칭루가 전화가 와서는 달리 부탁할 사람을 물색하고 있는데, 우리 학과 사람도 아니고 해서 믿음직스럽지도 않고 어쩌고 한다.
“나 나갈 준비 다했어. 지금 갔다 올게.”
늦은 밤에 또 전화가 왔다. 도서관 시스템에 논문을 올리면 논문 권한에 대한 여러 사항에 체크를 해야 한다.
“동해, 이거 어디다 체크해야 하는 거야?”
“칭루, 나도 그거 잘 몰라. 내 원칙은 이랬어. 모두 공개한다는 원칙으로 가장 간단한 방법에 체크했어. 어떤 항목을 체크하면 밑에 선택항이 또다시 뜨는데, 그러면 그건 가장 간단한 방법이 아니라는 거야. 네가 캡처해서 보여줘도 나, 지금은 뭐 체크했는지 생각 안 나.”
며칠 지나 도서관 시스템이 통과했다며 논문을 인쇄해서 도서관에 좀 제출해 달란다.
“내가 말했던 4가지를 내 이메일로 보내.”
타인을 위해 시간을 쓰는 일
칭루의 논문을 복사집에 맡겨 인쇄하고, 논문을 도서관에 제출하고, 칭루가 도서관 책을 늦게 반납해서 생긴 벌금을 대신 물고, 본부 행정처에 들러 그녀의 졸업장을 수령했다. 바쁜 오후를 보내느라 내 저녁밥시간이 훌쩍 늦어졌다. (나는 16대 8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어서 오후 4시 전에 저녁을 먹는다.)
칭루의 뒤치다꺼리는 이제 막 다 끝났는데, 화는 더 치밀어 올랐다. 칭루에게 보다, 타인을 위해 시간 쓰는 것이 아까워서 화가 나는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나 왜 이렇게 속이 좁니?' 칭루가 있어서 내 학교생활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말이지. 칭루가 내 영혼을 얼마나 따뜻하게 해 줬던가 말이지.
한편 화가 난 채로, 한편 우울한 채로 어둑해지는 저녁거리를 무뚝무뚝 걸었다, 현금을 좀 찾아야 했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가까운 ATM기를 검색하다 전봇대에 쾅하고 대책 없이 부딪혔다. 안경다리가 90도로 획 꺾였다. 금속으로 된 안경다리가 획 꺾인 것을 보고 걷는 것의 속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낀다. 부딪힌 것이 안경 쪽이 아니고 맨 얼굴이었더라면 멍이 크게 들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걷기의 시속
휙 돌아간 안경다리는 내 손으로 조물 해서는 고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안경점을 찾아간다.
“이거 수리가 가능할까요? 길을 걷다가 무심결에 기둥에 부딪혔는데, 이렇게 휘어져 버렸어요.”
“겉은 금속이지만, 안에 들어있는 성분이 어떤지 몰라서… 되돌리다 보면 부러질 가능성이 커요. 그래도 고쳐보시겠어요?”
“어쩔 수 없죠. 일단 고쳐보죠. 부러지면 다시 해야 줘 뭐.”
점원은 전문공구 여러 개를 쫙 펼치더니 이걸로 쪼물, 저걸로 쪼물 해서 안경다리를 제자리로 돌렸다.
“일단 고치긴 했지만, 속에 있는 것이 충격을 받아서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그 말은 마치, 칭루와 나 사이가 충격을 받아서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소리처럼 서글프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