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죽을 뻔

무단횡단

by 김동해

해야할 일 목록

딱히 무단행단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거기에 건널목만 있고 신호등이 없었다!


이번 일주일의 격리는, 3일간의 격리 후에 4일째부터는 외출이 가능했다. 귀찮아서 호텔에만 있다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놓으면 격리에서 풀려나는 월요일에 할 일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는 것은 뭐 정신을 차리면 된다고 치더라도 그 많은 일들을 해내도록 절대적 시간이 있을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 마음이 급해져서 월요일에 해야 할 일 중에서 굳이 타이베이가 아니라 이곳 타오위안에서도 해치울 수 있는 일을 골라본다.

공항에서 8일짜리 전화기 심카드를 샀으니, 월요일이면 전화를 쓸 수가 없어지니 통신사에 가서 위푸카(預付卡)를 사야 되겠는 것이다. 위푸카는 전화요금을 미리 지불하고 쓸 수 있게 해주는 핸드폰 유심칩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시티카드 대신 새로 만들어온 하나비바 X카드로 대만돈을 뽑아 쓸 수 있는지도 좀 테스트해야 한다. 학비를 내야 하니까. 돈이 뽑아지면 바로 인출해서 편의점에서 학비를 납부하면 된다. 그러면, 새 전화번호를 만들고, 학비 납부하는 두 가지 일이 해결된다. 그러면 남은 것은 (1) 건강검진을 받고, (2) 그걸로 학생증을 만들고, (3) 학점면제 신청을 위해 좀 뛰어다니고, (4) 신입생 등록을 위해 석사 성적표와 졸업장 뽑을 일이 남는다.


중화통신 가는 길

먼저 위푸카를 사서 전화번호부터 만들기로 한다. 이건 마침 중화통신이 격리호텔에서 6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타이베이로 돌아가서 하는 것보다 더 간단해 보였다. 지도상으로 그냥 한 방향으로 직진만 하면 되는 장소에 중화통신이 있었다. 좀 맘에 걸리는 것은 오늘이 추석이라서 영업을 할는지 살짝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구글지도는 토요일도 영업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물론 붉은 글씨로 추석이라 영업시간이 다를 수 있다는 말도 함께 적혀 있긴 했지만.

호텔방에서 입고 뒹굴거리던 쭈글쭈글한 옷을 그냥 입고 나선다. 지도가 보여주는 대로 조그만 사거리를 둘 지났다. 세 번째 사거리에 도착하자 바로 건너에 중화통신이 보인다. 그냥 조그마한 대리점이 아니고, 타오위안의 중화통신 본부처럼 아주 큰 건물이다. 건너자니 건널목만 있고 신호등이 없다. '이걸 어떻게 건너면 되나?'하고 좀 궁리를 한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아가씨가 아무렇잖게 걸어왔다.

‘아, 여기는 신호등이 없으니 그냥 눈치껏 건너야 되는구나.’

이 사거리는 그냥 훤히 뚫린 사거리가 아니고, 좀 복잡하다. 건널목 우측은 평평한 일반 도로가 맞는데, 좌측은 평평한 도로와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경사진 도로로 갈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건널목을 건널 때면, 그게 몇 차선이 되었든 좌측으로 한번, 우측으로 한번 고개를 돌려 두 방향만 유념하면 되는데, 이 건널목은 건널목과 얼마간의 거리도 두지 않고 갑자기 고가도로로 이어져서 6차선은 거의 12차선처럼 복잡해 보였다. 평지로 이어진 상차선, 경사로를 내려오는 상차선, 경사로를 올라가는 하차선, 평지로 이어진 하차선 등등. 평지로 이어진 상차선 맨 앞에는 오토바이들이 사거리 건너편의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서있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지났다. 가운데 차선이 경사로로 이어지며 갈라지는데, 좌우를 보고 차가 없길래 건넜다. 그런데, 순식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빠아앙~' 하고 긴 경적소리를 내며 자가용 한 대가 나를 스치듯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운전자는 사람을 칠 뻔했다는 것에 흥분해서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엄청나게 욕을 퍼부었다. '내가 더 놀랐거든?' 사람을 발견하고도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 속도 그대로 횅 지나갈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나는 아주 죽을뻔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대만 욕을 배우지 않아서 운전자가 뭐라고 욕을 했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속은 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같이 도로교통등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무단횡단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거기 떡하니 건널목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지나다니던걸. 한 아가씨가 건너오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 복잡한 사거리를 감히 건너려고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그녀가 어찌나 낙낙하게 걸어오던지. 나는 누구나 그렇게 건널 수 있는 길인 줄 알았다.

그렇게 십 년 감수하고 횡단보도를 건너 중화통신에 도착했으나, 역시 예상답게 추석이라고 영업을 안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신호등이 있는 길로 돌아서 돌아서 왔다.

돌아오는 길에 초록색 나무 모양의 國泰은행 ATM기를 찾아 학비 낼 돈을 인출하고 편의점에서 학비를 내는데, 차에 처박힐뻔한 아찔한 느낌에 정신이 나갔던지, 수수료가 쓰얼(十二,12)이라는데 스쓰우(四十五, 45)로 잘못 알아듣는다.


대만에서의 무단횡단

나중에서야 들었는데, 대만 사람들은 무단 횡단을 잘 안 하기 때문에, 운전자가 교통신호등만 보고 달리지, 도로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잘 살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만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했다. 한동안은 초록불에 건너는데도 저 차가 멈추지 않고 질주할까 봐 오금이 저렸다. 그래 지금은 무단횡단하는 버릇을 고쳤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간단한 골목 신호등을 일일이 기다리는 것은 내게 '융통성 없음'이다. 내가 본 바로, 대만사람들은 간단한 골목 신호등도 정말 인내심 있게 다 기다린다. 이 점도 정말 일본문화를 닮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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