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논문투고
상업중국어 시간에 지아훼이는 건성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노트북을 펴놓고 뭔가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MTC(Mandarin Training Center)에서 중국어 가르치는 일을 얻어냈는데, 그래서 그 수업준비를 하느라고 바쁜가 하고 물어본다.
“연구토론회에 보낼 소논문을 고치고 있어. 원래 17일까지 마감이었는데, 24일까지 원고를 받는 걸로 연장됐어. 너도 투고해 봐.”
“11월 3일 개최되는 그 연구토론회 말이지? 코퍼스(corpus) 관련 연구 논문을 받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내 소논문은 좀 그 범위가 아닌 것 같아서 포기하고 있었지.”
지아훼이는 내 논문 제목을 듣더니 이 연구토론회가 제시한 두 번째 주제에 적합할 것 같다며 일단 응모해 보란다. 연구토론회에서 소논문 발표를 두 번 하거나, 저명한 학술지에 한 편의 논문이 실려야 한다가 우리 과 졸업 관문 중 하나다.
그래 집으로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24일까지 논문 초록만 보내면 된다고 되어 있다. 지아훼이는 왜 전문을 고치고 있었지? '나, 초록만 준비하면 되는 건가?' 그녀는 포르투갈인지만 화교여서 중국어는 그녀에게 모국어나 다름없다. 그녀가 논문모집 공지를 잘못 봤을 리 없다. 문자를 보내 물어본다.
“초록만 보내면 된다고 되어있던데, 넌 왜 시간에 쪼들려하며 전문을 고치느라 애먹고 있어? 초록이 통과됐는지 어쨌는지 발표가 난 후에 전문을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난 논문모집 공고 어디에서도 전문을 보내라는 말을 보지 못했는걸?”
“나는 우수연구논문에 출품하는 거라서, 24일까지 전문을 보내야 해.”
“와, 너 정말 욕심쟁이구나.”
그녀가 자기 논문을 좀 검토해봐 줄 수 있겠냐고 해서 받아서 읽어봤다. 초록에는 연구방향과 연구방법밖에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았고, 전문은 논문격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좀 엉망으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초록이 통과하기만 해도 다행이다 싶은데, 그녀는 우수논문상을 노리며 투고를 했다!
로빈의 답문
집으로 와서 곧장 원고투고를 한 나의 이 행동력이 스스로 뿌듯하여 누군가에게 자랑질이 하고 싶어 로빈에게 문자를 보낸다.
“로빈, 나 막 11월 3일 그 연구토론회에 논문 투고를 했어. 너도 해봐. 원래 17일까지 모집인데 24일까지로 연장됐단 말이지. 이건 투고 들어온 논문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겠어? 그러니 투고만 하면 쉽게 통과될 것 같지 않아? 누가 알겠어, 우리 둘 다 나란히 통과돼서 같이 발표하러 갈 수 있게 될지.”
조금 시간차를 두고 날아온 그녀의 대답은 '오' 단 한 글자였다. 사실 '오' 옆에는 '축하해!'도 있었지만 내 눈에는 '오'만 드러나 보였다.
‘응? 오는 뭐야?'
나는 누가 졸업관문 하나를 처리하면서 옆에 있는 나를 자극해 주는 걸 기꺼워한다. 나도 그녀를 따라 하다 보면 저절로 졸업을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빈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될 일을 온 동네 광고하듯이 알리고 있으니, 내 엄마가 애정 결핍자처럼 온갖 일들을 가족단체톡에 올려서 응답을 갈구하는 것이 나를 짜증 나게 하듯이, 나의 행동이 로빈을 짜증 나게 하는 것이었나 싶은 것이다. 로빈의 '오'에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읽었다는 표시로 동그란 얼굴 아이콘만 하나 띄운다. 로빈은 자기 대답이 너무 온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나? 이어 다시 긴 문자를 보내왔다. 자기 수중에 소논문이라고는 홍교수 수업의 기말보고서뿐인데, 좀 엉망진창이어서 투고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 시간이 넘게 문자를 주고받는다.
최종적으로 로빈도 논문 투고를 했다. 일단 초록만 통과하면 그 소논문이 잘 쓰였거나 말거나 우리는 가서 발표할 수 있고, 두 번 발표해야 한다는 졸업관문 하나를 넘는 것이다.
'너의 자극법이 작용을 했는데'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고서야, 기분이 풀렸다. 그리고 그제야 어째 로빈의 ‘오’라는 답변이 납득이 되지 않아, 지나간 문자를 다시 확인해 본다. 로빈은 내게 그렇게 냉담한 적이 없단 말이지, 거기서 그녀의 '오'는 합리적이지 않단 말이지. 그리고 뒤늦게 발견한다.
그건 ‘와(哇)’였다.
내가 발음기호를 제대로 모르고 ‘와(哇)’를 ‘오(哦)’로 착각하고는 로빈을 오해한 것이다. 로빈은 박사 공부를 하는 지난 두 학기 동안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준 친구인지 모른다. 칭루가 졸업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 버린 자리에, 로빈을 보내주신 것에 온 우주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었는데 말이지.
중국어의 '오'와 '와'
중국어의 ‘오(哦ò)’는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했다, 수락한다 또는 응답하는 데 사용된다. 한국어로 치면 가볍게 ‘응, 알겠어’하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중국어의 ‘와(哇wā)’는 놀라움, 감탄 또는 흥분과 같은 강한 감정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오'에 비하면 감정이 좀 실린 생동적인 느낌이다. 한국어의 감탄사‘와’와 거의 같다.
내 중국어 실력이 이렇다. 감탄사 하나로 하마터면 로빈을 오해할 뻔했다. 감탄사 하나도, 설풋 알아서 될 일이 아니다. 제대로 공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