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너무 불합리하지 않아?

대만의 국민의료보험

by 김동해

30일은 어떻게 계산하나

내가 부지런을 떨며 의료보험공단에 간 것은 어떻게든 하루를 더 벌어보기 위해서였다.

대만생활을 처음 시작하면 국민의료보험 관계로 처음 6개월 동안은 30일을 초과해서 대만을 떠나면 안 된다. 국민보험은 6개월간 지속적으로 대만에 머물러야 그다음 달부터 자격이 생긴다. 30일을 넘으면, 처음부터 다시 6개월 계산을 시작해야 한다. 보험자격은 빨리 획득하는 것이 좋으므로, 사실 나야 아플 일이 없을 것이어서, 뭐 그렇게 믿고 산다, 병원 갈 일이 없으니 딱히 보험이 없어도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장학금을 받는 학생주의사항에 최대한 빨리 보험자격을 획득하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지켜야 했다.

대구에서 타이베이로 돌아올 때 당일 밤에 출발하면 대만 시각으로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다. 그날 출발해서 그날 도착하는 거면 날짜 계산하기가 쉽겠는데, 출발과 도착 사이에 하루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30일을 어떻게 계산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모르면 그냥 안심되게 29일이나 28일쯤만 떠나 있을 작정을 하면 되는데, 그렇잖아도 30일밖에 안 되어 짧은데, 하루나 이틀 더 줄인다는 건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만 의료보험공단 규정이 허가하는 최대한의 범위만큼 떠나야겠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물어볼 겸 해서 직접 의료보험공단을 찾아갔다. 내 어리숙한 중국어 실력으로 전화로는 확실한 답을 알아낼 자신이 없었다.

절대 처음부터 이런 부지런함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먼저 학교 측에 메일로 물어봤다. 우리 학교는 외국인학생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행정부서인 국제사무처를 따로 두고 있는데, 외국인 학생이라면 여기다 뭐든 물어볼 수 있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 "집주인이 갑자기 방을 빼라고 해서 새 방을 구해야 하는데, 어디 좀 급하게 구할 곳 없을까? 도와줘." 하물며 이런 것도 있다. "나 이런 연구 중인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저런 설문조사를 하고 있거든, 국제사무처에서 내 설문조사 메일을 외국인 학생들에 좀 보내주면 안 될까?" 나도 상당 사소한 걸 물어보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곤 한다. 국제사무처를 너무 귀찮게 하나 싶기도 하지만, 학교가 외국인 학생의 편리를 위해 제공해 주는 행정시스템이니까 뭐.

메일을 보내서 물었더니, 담당자가 직접 내게 전화를 했다. 이런 경우는 잘 없다. '어머 이 아가씨, 일 처리를 참 적극적으로 해주네.' 하고 마음에 든다. 그녀의 중점은 30일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있지 않았고, 나의 보험자격 획득 예정일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학기에 입학 등록한 모든 학생들은 학교 시스템상에 몇 월 며칠에 보험자격이 시작된다고 뜨는데, 내 것만 안 뜬단다. 자기가 공단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으나, 정확한 답변을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보고 직접 가보란다. 아, 놔 이런. 나는 귀찮아서 의료보험공단에 물어봐야 할 일을 국제사무처를 시켜서 알아낼 작정으로 메일을 보냈더랬는데, 거꾸로 국제사무처는 나보고 가서 해결해 보라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난 몰라'하고 말았을 텐데, 오늘내일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야 하는 내가 30일을 어떻게 계산하는지가 급했기 때문에, 또 국제사무처의 새로운 담당자가 참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직접 가기로 한다. "내 중국어가 엉망이어서 담당자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죠?" 그녀는 소통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자기한테 연락하라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의료보험공단에 가다

의료보험공단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번호표를 뽑아 기다린다. 거의 동시에 도착한 한 사람을 제치고 동작 빠르게 번호표를 뽑아 쥔 것을 기뻐하며. 한참을 기다리다가 발견하는데, 각 창구마다 뜨는 번호가 어째 일련성이 없고 제각각이다. 이 번호표로 기다리면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물어본다. 번호표를 빼주던 도우미 할머니가 내가 보려는 업무가 어느 창구에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안내데스크로 가서 물어보란다. 안내데스크의 그녀는 상당 불친절한 얼굴이다.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들어야 나를 어디로 보낼지 알 텐데, 그녀는 내 첫마디에 이미 짜증스러운 얼굴을 마스크를 끼고서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말 이해 불가다. 그녀의 임무는 안내데스크에 앉아 고객들이 '나 이런 일로 왔는데 어느 창구로 가서 일을 보면 될까' 물으면 어디로 가라고 대답해 주는 것이 임무가 아니던가? 어째 자기 임무의 일을 하면서 저런 싹퉁머리 없는 낯빛을 하는 것일까? 그냥 뺨따귀를 한대 딱 날려주고 싶었지만, 착한 내가 참기로 한다. 어디로 어디로 가란다. "어디로 가라구요?" 내가 한번 더 묻자, 그녀는 아주 진정머리 떨어지는 얼굴을 하고서는 이번에는 영어로 안내를 한다. 나는 네가 더 진정머리 떨어지거든!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데 금세 내 순서가 왔다. 먼저 30일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부터 물었다. 순수하게 대만을 떠나 있는 날만 세는 거였다. 그러니까 대만을 떠나는 날과 대만에 다시 돌아오는 날 이틀은 그 30일에 포함하지 않는 거였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여행일을 32일로 잡을 수 있는 거였다. 앗싸!

두 번째로 국제사무처가 내게 시킨 업무를 처리한다.

“제가 학생인데, 아직 의료보험이 없어요, 입국 후 6개월이면 보험자격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내 자료가 학교 측 시스템에 안 뜬다는 거예요, 학교에서 나보고 직접 가보라고 하네요. 나 언제부터 보험자격이 생기는 거죠?”

“학교 측에서 모른다고 해요?”

“네, 학교 측에서 그러는데, 자기들이 물어봤데요, 국민보험공단에. 그런데 여기서 제대로 대답 안 해줬다던데요?"

“거류증 줘봐요.”

그녀는 거류증으로 조회를 해보더니, 자료를 출력하고, 혼자 열심히 자료를 훑어보고, 상사한테 자료를 가져가고, 이리저리 분주하다. 아주 시간이 든다. '나. 뒤에 점심 약속 있어, 좀 빨리 처리해 주면 안 될까?' 이 친구와 오래간만에 잡은 약속이라 지각하고 싶지 않은데, 내 앞의 이 아가씨는 내 마음을 모르니 조금도 조급하지 않다. 내가 업무를 본 창구는 옆 쪽 창구와 달리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서, 그녀는 빨리 움직여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녀가 연필로 체크해 가며 이리 세고 저리 세는 것을 가만 보면서 초초해하고 있자니, 그녀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당신, 8개월치 보험료를 안 냈네요?"

"뭐라구요? 그런 적 없는데요?"

몇 년 몇 월부터 몇 월까지 안 냈다고 알려준다.

"나 그때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었어요."

"그 보험료를 내야 해요."

"왜요?" '왜? 왜?'

그녀의 설명은 이렇다. 나의 거류증이 정지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기간에도 계속 보험료가 책정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이민소가 알려주는 명단에 보험료를 청구할 뿐이고, 이민소에서 나는 보험료 대상이라고 하니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졸업하고 대만을 떠나면 거류증이 자동으로 정지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이민소에 가서 내 거류증이 이미 8개월 전에 효력정지 되었다고 확인받아오면 되는 건가요?"

"그거 별로 가능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많은 외국인들이 대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출국했다고 해서 바로 거류증을 정지시키지는 않는단다. 정지를 시킬 생각이면 본인이 개인적으로 신청을 했어야 한단다. 아, 된장.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있고, 마음이 급해진다.

"보험료가 얼마쯤인데요?"

난 그때 뭔 생각으로 그 보험료가 아주 싸게 느껴졌던지 모르겠다. '엄청 싸네, 까짓 거.'

"알았어요. 내가 낼 테니까 학교 시스템에 내 정보가 보이도록 처리해 줘요."

"이 보험료를 학교 시스템 안으로 집어넣어 줄까요, 지로 용지로 발급받아서 따로 낼래요?"

"지로 용지로 보내줘요. 따로 낼께요."

이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이렇게 선택했기 때문에, 한편 버티며 보험료를 내지 않고, 한편 6개월을 채워 보험 자격을 얻었다.


거류증과 의료보험료의 관계

다음날 국제사무처 담당자를 찾아가 어제 의료보험공단에 가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고했다. 그리고 따져 물었다.

"거류증 정지가 안되어 있어서 내가 대만에서 거주하지도 않았던 8개월간 보험료를 내야 한다더라고요. 이거 너무 불합리하지 않아요? 왜 학교 측은 졸업을 하고 떠날 때 거류증 정지 신청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은 거죠? "

이래서 그녀가 마음에 드는데, 그녀는 발뺌을 하지 않는다.

"미안하게 됐어요. 국제사무처의 이 자리가 변동이 참 많아요. 내가 업무 인계를 받았을 때, 여기에 대해 지시를 받지 못했어요. 이 자리에 사람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업무에 좀 소홀한 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다음 해부터는 이 부분에 대해 시정하도록 할게요."

이렇게 까지 말하는대야 무슨 할 말이 있겠나. 그리고 그녀가 내 입장에서 한마디 더 붙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낼 건 8개월치가 아니예요. 당신은 12월에 대만을 떠났지만, 그때 이미 3월까지의 보험료를 학비 안에서 지불했다고요. 그러니 4, 5개월치만 달라고 했어야 해요."

"아, 그래요? 뭐 어쨌건 난 일단 안 내고 버텨볼 생각이예요. 너무 불합리한 것 같아서요."

내가 보험료를 내지 않고 버텨보기로 한 데는 '너무 불합리하다'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보험공단 직원이 보험료를 계산하는데, 컴퓨터의 자동시스템에 의해 조회해 보는 게 아니라, 뭔 페이지를 출력해 와서 자기 손으로 한 달 한 달 세어가면서 계산을 했기 때문에 참 믿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저런 원시적인 방식이 다 있담.'

6개월을 채워 보험자격이 생겼고 의료보험증도 받았다. 한편으로는 그때 안 낸 보험료 내라는 지로용지를 꼬박꼬박 받고 있다. 지로용지는 2달에 한 번씩 온다. 우리나라와 달리 보험료 지불을 미뤄도 가산금이 붙지 않았다. 뭐, 그러니 더 늦게 낸다고 해서 부담될 것이 없다. 그러니 일단 미뤄본다. 그리고, 내가 정말 낼 것 같으면 보험공단에 연락을 해서 학비에 포함해서 냈다는 그 기간만큼 빼달라고 해야 하는데 이 귀찮은 걸 어떻게 하냐고.


남들에겐 합리적인 방식

나는 이 보험료 책정 방식이 너무 불합리한 것 같아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서 민원을 넣을 수 없나 하고 검색을 좀 해봤다. 그러다 납득하게 된다. 이게 그렇게까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

보통 학생이라면 거주증이 1년씩 발급되기 때문에 학년도와 똑같아서 졸업을 할 때쯤이면 거주증도 같이 끝이 난다. 그러니 거주증 정지 신청을 딱히 하지 않더라도 나 같은 일은 생기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졸업을 하고도 반년 넘도록 거주증 기한이 남아있었던 것은 중간에 코로나로 한 학기 휴학을 했던 탓에 학년도와 거주증 간에 반년의 차가 생겨버린 때문이다.

많은 동남아시아 학생들은 졸업을 하고 잠시 자기 나라로 갔다가는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 일하거나 학업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는 거류증이 자동으로 정지되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 거류증이 정지되어 버리면 보험 자격도 끝나버린다. 그러면 다시 돌아왔을 때, 거류증도 다시 신청해야지, 보험자격 생성되려면 다시 6개월을 기다려야 하지, 상당 귀찮아진다. 나 같은 경우보다 동남아시아 학생들의 이런 경우가 더 많다 보니 이민소에서는 본인의 신청이 없으면 출국했다고 해서 거류증을 정지시키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에도, 만약 밀린 보험료를 내기만 하면 보험자격이 지속돼서 다시 6개월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라면, 조금 아깝긴 하지만, 나도 8개월치의 보험료를 기꺼이 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30일만이 아니라 2개월이 훨씬 넘는 방학 전체를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밀린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내고, 보험 자격은 다시 6개월을 기다려 받으라고 하니, 억울하지 않겠냔 말이지.

나, 못내!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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