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걸 어떻게 알아듣지?

여자들이 말하는 방식

by 김동해

여교수의 암시하는 말투

나는 그녀가 어떻게 천교수의 그 말뜻을 알아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녀는 지각을 해서, 앞에 어떤 상황이 있었던지 알 수 없었단 말이지.

상황은 이렇다. 오늘 수업은 학생들 발표로만 쭉 이어진다. 천교수는 그저 앉아 학생들 발표를 들으며 점수를 매기고, 발표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줄 것이다. 천교수는 컴퓨터가 설치된 교사 탁자는 발표자가 앉아 조작하도록 내주고, 교사 탁자와 가장 가까운 우리 테이블로 와 자리를 잡았다. 이 교실은 긴 마름모꼴 책상 둘을 마주 붙여 육각의 테이블이 되게 한 후 둥글게 모여 앉는 식이다. 보통 육각의 테이블에 서넛씩 앉아 수업을 듣는다. 내 다섯 씩 앉으면 이미 좀 붐빈다는 생각이 든다.

천교수는 다시 더 설명할 거리가 생겨 잠시 일어나 교단에 서서 어쩌고 저쩌고를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서야 베트남 아가씨 팡썅이 교실로 들어오며 지난 시간에 앉았던 바로 그 테이블, 그러니까 내가 앉아 있고, 천교수가 앉아 발표를 듣겠다고 자리를 잡아 놓은 테이블로 와서 마지막 남은 한자리를 차지했다.

우리 과 애들은 학기가 시작하는 첫날 한번 그 자리에 앉으면 한 학기 내내 죽도록 그 자리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다른 테이블에 앉거나하면 마치 남의 자리를 뺏는듯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팡샹이 자기 자리를 찾아 와 앉은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천교수는 교단에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팡샹이 가방을 놓고 앉는 것을 흘긋 보면서 혼잣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이 테이블 정말 르어나오(熱鬧) 하는구나."

중국어 르어나오(熱鬧)는 똑 같이 대응되는 한국어 단어가 없다. 거리가 '번화하다', 분위기가 '벅적벅적하다', '왁자지껄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교수의 저 말은 "이 테이블 정말 벅적벅적하구나." 쯤이 되겠다. 그 말이 떨어지자 팡샹는 자기가 그 자리에 앉으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알았던지, 저 뒷자리로 가 앉았다. 우리 테이블의 누군가가 '여기 교수님이 앉으시려고 하셔'라고 귀띔을 준 것도 아니다. 그녀는 지각을 해서 교수님이 그 자리에 앉아 발표를 들을 계획인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교수의 속내를 알아채고 자리를 비켰나.

나는 그녀의 눈치 빠름에 완전 경탄을 해서, 수업을 마치고 그녀에게 물어봤다.

"팡샹, 너 왜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교수님이 딴 데 가라는 눈치를 주셨잖아."

"교수님은 '르어나오'라고 밖에 안 했어. '르어나오'라는 말 어디에서 그걸 느낄 수가 있었어?"

"너무 명백하게 전달하셨잖아."

"뭐? 도대체 어디가 명백하다는 말이야?"

그녀는 교수가 '르어나오'라는 한 단어에서 명백하게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난 모르겠는데?


나는 여교수들의 이런 말투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모국어로 소통하느냐 외국어로 소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나라면, "내가 여기 앉아서 발표 채점을 하려는데 다른 자리로 좀 옮겨주지 않겠니?"라고 했어야 알아들을 수 있다. 나는 여교수들이 거의 예술적 수준으로 직설을 피하고, 이렇게도 들리고 저렇게도 들려 암시를 보내 상대로 하여금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에 거의 공포를 느낀다. 내가 남자교수를 지도교수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만사람들의 공손한 말투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의 식민통치를 받은 역사가 있는데, 한국처럼 그 시기를 악랄한 식민의 역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통치를 환영하는 편이라 일본의 영향을 많이 흡수했다. 그래서 대만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은 많이 일본인스러운 구석이 있다. 일본인처럼 뚜에부치(對不起,미안해), 씨에씨에(謝謝,고마워), 커아이(可愛,귀여워), 하오쿠(好酷,멋져), 쩐빵(真棒,대단해)를 입에 달고 산다. 나는 도대체 어느 게 진짜 쩐빵이고 어는 게 예의상 하는 쩐빵인지 구별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으면 없는 알레르기가 다 올라올 지경이다.

대만과 중국이 같은 중국어를 쓴다고 사람들 성향까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만사람들은 중국인이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서 무례하다고 아주 싫어한다. 우리 학과에도 중국 대륙에서 온 학생들이 몇 있는데, 그들은 쯔, 츠, 쓰(zhi, chi, shi)의 권설음(捲舌音) 때문에 중국대륙에서 온 것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인 말투에서 중국 대륙에서 온 것이 감춰지지 않는다.

대만에서는 나도 자주 '넌 너무 직설적이야'하는 질책을 받는다. 미안하지만, 난 직설적인 말투를 사랑하는 걸 어쩌겠어. 난 몽롱하게 말하는 예술을 모르는 걸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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