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착한 사람

비행기 공포증

by 김동해

비행기에서 하는 기도

방학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비행기를 한번 더 탈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비행기 타는 것이 지독하게 무섭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하늘님께 기도를 하며 거래를 한다. 제발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 주시면,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가족들에게 친절하고, 내가 손해 보고 살고, 남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나는 그 기도를 비행기가 활주로로 가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부터 착륙하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한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자면 비행기가 어지간히 흔들려도 설마 별일 없을 것처럼 조금 안심이 된다. 비행기 안에서 잠이 쑥 들어서 비행기가 뜨는지 착륙하는지 못 느끼도록, 하루를 일부러 바쁘게 보내서 몸을 지치도록 만들어도 보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좀체 잠들지 못한다. 비행기가 높이 떠서 마치 멈춘 듯 아무 진동이 없어서야 꼭 잡은 두 손에 힘을 뺀다. 꾸벅 잠이 들뻔하다가도 비행기가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온갖 세포들이 파닥하고 곧추선다. 대만에서 한국까지의 두 시간여 동안의 그놈의 긴장은 굉장히 피곤하다.


시안에서 시작된 비행기 공포증

나는 이 비행기 공포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안다. 중국 시안 여행에서부터다. 한국으로 시집온 중국인 친구 채암을 따라 중국 시안 여행을 갔었더랬다. 그녀는 몇 달 전에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여행일이 가까워서야 나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기 때문에, 같은 항공사 표는 구하지 못했고 비슷한 시간대의 다른 비행기를 타고 나 혼자 시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당시 중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고, 친구를 따라가는 거라 시안에 도착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길이 어긋나거나 하면 나는 비행장에서 꼼짝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처지였다.

내 비행기표는 시안 직항이 아니었고, 먼저 북경에 도착하고, 거기서 갈아타야 했다. 북경에서 갈아탈 때, 착륙할 도시의 기상 상황이 좋지 않다면서 9시간이나 지연됐다. 밤늦게서야 비행기가 뜨긴 했는데, 비행기는 시안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작은 도시에 착륙했다. 나는 영어도 제대로 안되고, 중국어는 일도 모르니, 안내 방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시안에 도착한 줄로만 알았다. 여행가방을 찾아 나가기만 하면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여행 가방이 나올 생각을 않는 것이다. 그래 지나가는 공항 관계자를 잡고 안 되는 영어로 묻고 또 물어서야 겨우 여기는 시안이 아니고, 시안 근처 어느 도시인데, 오늘은 배정해 주는 호텔에서 자고, 내일 다시 시안으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장황하니 하냐면, 내가 비행기에서 비명을 지른 데에는 이런 배경상황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난생처음 겪은 것이다.

내가 비명을 질러댄 것이 시안 가는 비행기에서였던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였던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건 상황은 이렇다. 중국 스튜어디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 기류가 불안정하니 어쩌고 저쩌고 안내방송을 하다가 갑자기 뚝 멎어버렸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긴장감과 불안감이란! 그 안내 방송을 끝으로 비행기 안의 승객들 숨소리마저 조용해졌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비행기 공포증이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가 어지간히 흔드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이 쓰인 것은 스튜어디스의 목소리였다. 너무 피곤했던 탓에 잠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온몸의 털이 삐쭉 서고, 허리가 꼿꼿해지며 눈이 번쩍 뜨였다. 비행기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이 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본 적이 있다면, 급강하할 때 몸이 느끼는 그 꼿꼿함이 어떤 것인지를 다들 알 것이다. 오줌 지릴듯한 아찔함. '아, 난 오늘 여기서 끝장이 나는구나.'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비명은 대단한 소리로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왜 너무 놀라면 비명을 질러도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는 그런 것 있지 않나. 비명이 숨소리로만 새어 나오다가 새된 소리로 변하려 하는 순간 나는 왼쪽 대각선 앞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 표정은 뭐지?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 이 긴박한 순간에, 무슨 여유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지? 어이없어하는 듯한 저 눈빛은 뭐지? 내 몸이 추락을 느낀 것과, 눈을 뜬 것과, 비명을 지른 것과, 그 남자의 눈빛과 부딪힌 이 모든 것은 정말 순간적이었고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것과 또 거의 동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는 알아차렸다! 그건 추락이 아니라 착륙이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내 몸은 급추락의 속도를 경험하고 말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일어나면서 내 온몸의 세포들은 그 속도를 급추락으로 새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공포는 계속 남아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를 힘들게 한다. 내 꿈 중에 하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문화를 맛보겠다 인데, 늙어서 몸이 허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는 것이 공포스러워서 이 꿈을 그만두게 되는 날이 와버릴까봐 두렵다.

훗날 중국 드라마를 보다가 알게 되는데, 차분하고 신뢰 가는 목소리로 안내 방송을 하는 것도 스튜어디스에게 절실히 필요한 자질이었다. 승객은 스튜어디스의 긴장한 목소리로 인해 심한 불안을 느꼈다면, 이런 것으로도 항공사에 민원을 넣을 수 있는 거였다. 나의 비행 공포증은 절대 그녀의 울먹이는 목소리 탓이다. 진작에 이런 민원 제도가 있는 것을 알았으면 나는 그녀를 고소했을지도 모른다. 스튜어디스는 그런 목소리로 방송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특히나 '기류가 불안정하니'로 시작되는 방송은 말이다.


비행기를 타야할 때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대만으로 돌아가는 날, 하필 태풍을 만났다. 뉴스에서 며칠 전부터 계속 크게 보도하기를, 역사상 그런 적이 없는 위도 25도에서 태풍이 발생했고, 이번 태풍은 매미나 루사 급 폭풍을 몰고 온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걱정을 하니 엄마 앞에서는 "위험하면 비행기가 알아서 안 떠. 걱정하지 마." 하고 느긋하게 말했지만, 사실 나는 무섭다. 역사상 그런 적 없는 큰 태풍이라고 해서 비행기가 하루쯤 늦게 뜰 줄 알았더니, 제시간에 출발했다. 한국 상공을 빠져나가는 동안 기내 모니터로 비행기의 위치가 계속 안내되었는데, 그걸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안전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떼지 않았다. 태안반도 상공을 지날 때쯤 비행기가 많이 흔들렸고, 남해안 상공을 지날 때 또 한 번 심하게 흔들렸다. 유래 없이 심하게. 비행기는 대기권 위를 지나가는 것이라 태풍을 그 아래에 두고 날아가는 것인 것을 머리로야 알지만, 아주 겁이 났다.

사실, 태풍이 없는 날도 비행기 타는 것은 두렵다. 언젠가 읽었던 항공사고 관련 책에서 항공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는 하늘을 날 때가 아니라 이착륙 시점이라고 했던 문장까지 기억을 비집고 나와 이륙을 할 때도, 착륙을 할 때도 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날 내가 탄 중화항공은 느낌도 없이 깔끔하게 내려앉았다.

내가 매번 방학 때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에 느적느적하는 것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비행기 타는 일이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비행기표를 일찌감치 사는 법이 없다. 출발할 수 있는 날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중에 용기가 충천하는 날 갑작스럽게 표를 끊어서 갑작스럽게 비행기에 오른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당일 낮에 사본 적도 있다. 비행기표를 미리 사두고 어느 날이 비행기 타는 날인 것을 수첩에서 하루 보고 이틀 보고 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다. 이미 느꼈던 긴장들이 떠올려져서 느껴지는 스트레스.


그래도, 뭐 이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나는 비행기를 타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너그러워지는 사람이 되고 있으니까. 목숨에 비하면 뭐든 그렇게 대단할 것이 없기 때문에, 뭐든 참지 못할 것이 없고, 극복 안 될 것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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