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아름답다

by 김동해

비가 아름답게 온다.

아침 9시를 향해 가는데, 밖은 저녁 여섯일곱 시를 향해가는 것처럼 어두컴컴하다. 비구름이 하늘을 두껍게 덮었기 때문이다. 빗소리는 샤워 꼭지를 가장 세게 틀어재낀 것처럼 쏴악 하고 거세다. 좀체 그칠 것 같지 않은 기세로 내려 붓는다. 나는 이런 비가 아름답다. 나, 좀 사이코적인가?


하늘이 밝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전 내내 이렇게 세상이 떠나가도록 촥촥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빗소리는 냇물이 돌덩어리 장애물이 많은 지역을 자글자글 흐르는 소리나 해안가로 바닷물이 밀려왔다 후퇴했다 하는 소리만큼이나 아름다운 백색소음이다. 이렇게 비가 오면, 세상의 잡다한 소음이 사라져서, 쑤아쑤아 내리 붓는 빗소리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조용해진다.


비가 오랫동안 무겁게 쏟아붓는 날씨면, 나는 차분해진 마음으로, 어쩌면 이건 약간은 가라앉은 기분일 수 있는데, 논문을 써 내릴 수 있다. 논문을 쓰는 데는 좋은 아이디어가 투둑 튀어나오는 맑은 정신도 필요하지만, 그건 가끔이면 된다. 더 많은 날들은, 엉덩이를 들썩이지 않고, 좀 가라앉은 채로 꿈쩍 앉고 멍하니 앉아만 있고 싶은 회색빛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처럼 내리는 비가 딱, 나를 잡아 앉혀주는 비다.


그래서, 오늘은 논문을 좀 썼느냐 하면, 그건 또 그렇지 않다. 자격시험 때 쓴 문장을 졸업 논문 여기저기에 가져다 붙이고 보니 흐뭇한 분량이 되면서, 새로 쓴 것은 딱히 없으면서, 그냥 뿌듯해져서 좀 게으름을 피웠다. 오늘은 그냥,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되지 않는 꼭 필요한 논문 한편을 국가도서관에 가서 스캔해 오는 것으로 '오늘 분량 다 했음!'으로 샘 친다.


후기 :

국가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잠깐 기록해 두기로 하자. 외국인은 여권으로 도서관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나는 거류증이 있으니 그걸로 발급받았다. 도서관증은 새로운 카드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고, 학생증이나 교통카드에 스티커를 하나 붙여준다.

나는 주로 우리 학교 도서관 시스템을 통해 찾아지지 않는 논문을 찾으러 간다. 논문을 보려면 국가도서관 사이트에 접속해서 미리 열람 신청을 해두고 가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아이디를 잊어버려서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해 둘 수가 없었는데, 신청을 하고 무려 1시간여를 기다렸다. 어떻게 좀 빨리 안 되냐 그랬더니, 논문이 보관된 곳은 좀 멀어서 물리적으로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국가도서관의 아이디는 여권번호나 거류증 번호이고, 비밀번호 찾기를 하면, 새 비밀번호를 자기 생년월일 8자리로 바꿔준다. 원칙은 그런데, 계속해서 내 아이디가 틀렸거나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떴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문의해 보고서야 기억이 났는데, 국가도서관의 아이디는 앞에 점 하나 찍고, 여권번호와 거주증 번호를 넣어야 했다. 그놈의 점이 기억났을 리 있나! 무려 1년 전에 딱 한번 이용했을 뿐인데.

참고하려고 찾은 논문은 졸업논문을 쓰는 동안 보고 또 봐야 해서 거기 앉아서 보기보다 인쇄해서 가져오는 편이다. 지난번에는 몰랐기 때문에 인쇄를 했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오늘은 스캔을 했는데 그건 학생증을 보여주면 공짜였다. 스캔할 때는 USB를 끼우고 종이 크기를 설정하고, 한 페이지씩 한 페이지씩 펼쳐가면서 작동 버튼을 누르면 된다. 나는 오늘 무슨 선경지명이 있었던지 마침 USB를 가져갔다. 그런데, 자기 USB를 꽂으면 포맷하고서야 쓸 수 있기 때문에, 포맷해 놓은 도서관 USB를 빌리는 게 낫다. 도서관 측은 아주 여러 개의 USB를 준비해 놓고 빌려준다. 스캔을 마치고 나면 옆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도서관 USB의 것을 내 USB로 옮기면 된다. USB를 안 가져갔다면 자기 이메일로 보내거나 하는 방법도 있겠다.

국가도서관은 리뉴얼을 해서 상당히 예쁘다. 앉아 있으면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커피숍 가는 셈 치고 들러 예쁜 의자에 앉아 책 한 자락 읽으며 오후 한 나절을 보내는 일도 즐거운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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