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송산문창원구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월드마스터즈가 시작하는 17일과 18일은 경기를 하는 가까운 경기장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2틀 오는 것으로 신청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길을 걸어서 도착했다.
4번 창고에는 이미 통역봉사자가 넷이나 있으니, 오늘은 5번 창고에서 어제와 같을 일을 해주면 된단다. 오늘도 똑같은 장소였다면 지겨웠을 텐데, 5번 창고로 가라니 잘 됐다.
"좋아요."
오늘의 멤버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두 분, 어린 남자애, 나 이렇게 넷이다. 나이 지긋하신 두 분 할머니의 일하는 스타일이 극적으로 다르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지?'
테이블 뒤에 서있다가 방문객이 다가오면 응대하면 될 것 같은데, 첫 번째 할머니는 설문조사 바코드가 찍힌 안내문을 들고 아예 출입구로 가서는 사람들을 향해 '설문조사 좀 해줘요'하며 달라붙는다. 그래야 자원봉사를 하러 온 자기가 뭔가 일을 하는 것처럼 느끼는지.
두 번째 할머니는 반대로 에너지를 아끼는 쪽이다. 첫 번째 할머니가 너접대는 것이 영 불만인지, '우리가 뭐 물건 파는 사람도 아니고, 저럴 필요가 없는데 '하고 불만을 토로했다. 두 번째 할머니는 방문객에게 줄 선물이 바닥나면, 박스에서 꺼내 진열하는 것을 자기 일로 삼았다. 바닥에 있는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야 했기 때문에, 그녀가 힘들 것을 생각해 내가 해주고 싶었지만, 그 일을 뺏기면 봉사하러 온 의의를 찾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그 일을 사수했기 때문에, 나는 몇 번 돕다가 그녀의 일을 뺏지 않는 의미로다 돕기를 그만뒀다.
비가 억수같이 와서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방문객이 어제의 반도 안 되는 것 같다. 어쩌면, 4번 창고보다 5번 창고에 볼 게 없기 때문에 방문객이 안 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리하여, 오늘은 내가 할 일이 하나도 없다. 방문하는 사람 자체가 워낙 적은 데다, 그들이 우리가 있는 테이블까지 걸어올 새도 없이, 적극적인 첫 번째 할머니에게서 잡혀 필요한 설명을 다 듣는다.
어제처럼 2025 월드마스터즈 기념카드라도 나눠주면, ’ 스탬프는 4번 창고에 4개 있고, 이곳 5번 창고에 2개 있는데, 6개를 다 찍으면 이번 대회의 마스코트 쭈앙빠오(庄寶)가 만들어져 ‘하고 설명이라도 하며 시간을 보내겠구먼,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에 제한이 있다고, 찾아와서 달라고 하면 주고, 일부러 나눠 주지는 말란다.
할 일이 없으니 잘 됐다 하고 앉아, 한 주 후에 있을 가이드 구술시험 준비를 했다. 나는 그런 뻔뻔함이 있다. 좋게 표현해보자면, 나는 그런 융통성이 있다. 다만, 성실하지 않은 자원봉사자처럼 보이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이상한 한국인으로 비칠까 봐 조금 걱정은 됐다.
나는 마치 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앉아 내 할 일을 하는데,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의자에 앉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듯 보였다.
"저 처럼 앉으세요. 하루 종일 서 있으면 힘들잖아요." 내가 서너 번 권하고서야 두 번째 할머니는 겨우 앉았다. 자원봉사자는 왜 편하게 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거기에 더해서, 두 번째 할머니는 '자원봉사자'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등식을 갖고 계신 분 같았다. 자원봉사자 옷을 입고서 관광객처럼 기웃기웃 놀면 안 되고, 화장실을 가는 외에는 자리를 비우면 안된다고 생각하셨다. 그래도, 기념카드는 갖고 싶으셨던지, 친구분에게 부탁해서 한 장 만들어오게 했다.
"직접 가서 찍어보세요. 이건 직접해야 재미있어요." 내가 권했다.
"아니, 자원봉사하러 왔는데, 자리 비우기가 좀 그렇잖아." 두 번째 할머니가 겸연쩍어 하신다.
"뭐, 어때요, 방문객도 이렇게 적은데. 우리가 있잖아요. 놀다 와요."
내가 한가한 틈을 타서 요리조리 몇 번을 놀러 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내가 서너 번 권하자 못 이기는 듯 자리를 비우셨다.
"천천히 놀다 와요." 두 번째 할머니를 등밀어 보내며 내가 말했다.
반듯하게 서 있던 어린 남자애도 우리를 본받아 요리조리 놀다 왔다.
'자원봉사자'는 '도적적인 사람'과 이콜이 아니다.
내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커녕, 쓸모 있음이 느껴지도록 뭔가 책임지고 할 일도 없었지만, 자원봉사가 재밌기는 하다.
뭐가 재밌다는 것일까?
세계급 행사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좋은 걸까? 돈벌이가 아니라, 무급 봉사를 한다는 것에 고상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누구나 다 하는 게 아닌데, 나는 하고 있다는 으스댐일까? 다른 곳에서라면 그렇지 않은데, 다들 자원봉사를 왔기 때문에, 쉽게 친해지는 이 느낌을 좋아하는 걸까?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은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할 수 있는 즐거움일까?
잘 모르겠다. 어지간한 친구랑은 수다떠는 시간도 아깝다고 싫어하는 내가, 뭐가 재밌다고 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