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원봉사 3일째, 타이베이 육상경기장

台北田徑場

by 김동해

자원봉사자 센터를 찾는데 온갖 땀을 다 흘렸다. 1층이 아니라, 2층에 있었다. 2층이 관객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하는 입구였다. 거기서 보안검사를 거쳐 입장한다. 시간이 되자 책임자가 와서 봉사자들에게 업무를 배정한다. 통역봉사자들에게 원래 배정하려던 곳은 연속근무자가 있다며 우리를 이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더니 경기장 트랙으로 데려간다.

'실내가 아닌 거야? 더워 죽었군.'

오늘 할 일은 트랙의 골인지점에 서있다가 1, 2, 3등으로 도착하는 선수를 잡아서 상을 받는 곳까지 안내하는 일이다.

"그럼 여기 3명만 필요하겠네? 자원봉사자가 이렇게 많이 필요 없지 않아?" 어제 이미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해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3명보다 더 필요해. 60세 이상 조와 65세 이상 조가 함께 경기하고 있어서, 6명의 수상자가 나올 거잖아."

"아, 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 없으면 몰래 좀 게으름을 피우려고 했지."

예닐곱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거기 어색하니 서서 선수들이 골인지점에 들어오기를 기다릴 참인데, 경기 진행 담당자가 어디 시원한 곳에 앉아있다가 이삼십 분 후에나 오라며 우리를 흩어 보낸다. 오늘 이곳에서는 경보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트랙 12바퀴를 걸어서 도는 것이기 때문에 한 경기 당 삼십여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러니 햇볕 아래서 계속 대기할 필요가 없고, 1등 선수가 마지막 바퀴를 돌 때쯤 트랙에 나타나면 되는 거였다.

쉬다오라니, 나는 얼른 그늘 쪽 벤치에 앉아 일요일에 있을 관광 가이드 시험 공부를 했다. (일요일에 한국어 관광 가이드 2차 시험이 있다.) 다른 자원 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상대에게 관심도 없는데, 그렇지 않은 양 위장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앉아 공부나 하기로 한다.


선수들은 골인지점에 도착한 후 좀 쉬고, 뒤에 도착하는 선수를 기다려 같이 사진을 찍고 하느라고, 보통 참가선수 모두가 골인지점에 들어오고서야 1,2,3등의 선수들이 함께 수상석으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자원봉사자 한 명이면 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쓸모없음을 당했다. 이건 자원봉사자에게는 아주 불쾌한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쓰임을 당해야 한다. 골인지점에 배정된 우리 모두는 실질적으로 한 명 외에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렬한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역할을 조정했다. 그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내가 상상한 그림은 한국인팀이 바글바글해서 아주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에는 슈아이꺼(帥哥)*도 있어서 내 눈에는 분홍빛 방울이 막 터지고, 한국어로 통역하는 나는 빛을 발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명의 한국선수도 만나지 못했다.

며칠 자원봉사를 해보고서야 아는데, 이번 대회에는 참가한 한국선수 자체가 없어서 한국어 통역을 신청한 나는 자원봉사를 하는 내내 쓸모가 없을 예정이었다. 거기다가 한 경기장에 계속 참가하는 게 아느라, 나처럼 하루는 여기, 하루는 저기씩의 뜨내기 놀이를 하는 자는 중요한 임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경보 경기는 5살 간격으로 나이가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육상 경기장의 트랙은 보통 400m 내지 500m쯤 되고, 오늘 선수들은 12바퀴를 돌았으니, 5000m 트랙 경보였던가 보다. 다 할아버지 할머니 선수뿐이다.

'이 대회는 35세부터 참가가 가능하다고 그러지 않았나?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만 참가하는 거였어?'

이 오해는 다른 경기장을 둘러본 후 풀린다. 역기나 농구 같은 경기는 대부분 젊은 선수들이었다.


오늘 이 경기장에서는 작은 시위가 하나 있었다. 인도 할아버지가 인도 국기를 걸치고 하루 종일 경기 추최석을 맴돌았다. 경기 도중에 경보 자세를 어겨 실격 선언을 받고도 트랙에서 내려오지 않고 골인지점까지 걸어온 후, 왜 자신에게 금메달을 주지 않는 것인지 항의하는 거였다.

'오, 할아버지 귀여우신데?'



어제 송산 박람회에서 봉사를 하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자원봉사자 선물가방에는 자원봉사자 배지가 있단다. 내 가방에는 없었다. 나는 그 배지를 꼭 가져야겠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주최측과 라인(LINE)**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거기다 메시지를 남겼다.

"제 가방 안에는 자원봉사자 배지가 없었어요. 이건 돈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난 이걸 자원봉사 참여 기념으로 꼭 갖고 싶은데,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어머머, 곧장 답이 왔다.

"정말 미안해요. 하필 배지가 누락된 선물가방을 받게 해서요. 내일 자원봉사 센터를 찾아가서 달라고 해요. 우리가 그곳에 맡겨둘게요."

여기까지는 어제 상황이고, 나는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경보 경기 트랙에서 박수를 치고 있자니 주최측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 계세요?"

"타이베이 육상 경기장 트랙에 있어요."

"배지를 가져다 드릴까요?"

이건 너무 미안하잖아?

"아니에요, 제가 자원봉사 마치고 찾으러 갈거예요."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최측이 직접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딱 나를 알아보고는 배지를 주고 갔다.

'어떻게 날 한 번에 알아본 거야?'

나중에야 깨달았는데, 나는 라인(LINE) 프로필에 증명사진스럽도록 큰 얼굴 사진을 올려놨는데, 아마도 그걸 보고 한눈에 알아본 것 같다. 또, 주최측이 직접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경기의 총 주최측 사무실이 아마 오늘 내가 봉사하는 이곳, 타이베이 육상경기장에 차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번에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나눠줬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던 것을 보면.

옆에 있던 아가씨가 뭔 일이냐는 눈빛으로 본다.

"내 가방엔 자원봉사 배지가 없지 뭐야, 주최측에게 말했더니 친절하게도 이렇게 가져다 주네?"

"그거 작은 주머니에 박혀 있어서 잘 찾아야 해."

"가방 바닥까지 꼼꼼히 다 찾아봤다고."

집에 와서 다시 찾아보니, 배낭 바닥에 작은 주머니가 있고,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왜 이렇게 숨겨놨담!'

하나를 돌려주겠다고 주최측을 다시 번거롭게 할 수는 없잖아? 이렇게 해서 나는 빼지 두 개를 갖게 됐다.



*슈아이꺼(帥哥) : 잘 생긴 오빠

**라인(LINE) : 우리나라의 카카오톡 같은 대만의 메신저앱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원봉사 2일째, 松山文創園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