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는 기타를 칠 때 팔에 힘이 빠지고 머리도 아프다고 말한다. 그걸 들은 큰 고모는 애들이 한쪽 팔에 힘이 빠지고 하는 것은 '모야모야병'일지도 모른다면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경도 아버지를 재촉했다.
"모야모야병이 뭔데?" 작은고모가 묻는다.
"아이들 뇌출혈 같은 병이야."
AI에게 물어보니 모야모야병(Moyamoya disease)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주요 동맥이 점점 좁아지거나 막히는 희귀 뇌혈관 질환이란다. 혈관이 막히면서 뇌는 부족한 혈류를 보충하려고 가느다란 새로운 혈관들을 만들어내는데, 이 모습이 혈관조영술에서 연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일본어로 “모야모야(もやもや, 뿌연 연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큰 고모는 이런 무시무시한 병을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람?' 작은 고모는 생각한다.
경도는 머리가 아프다며 학원을 빼먹는 날이 참 많았는데, 엄마아빠도, 고모들도 공부가 하기 싫어서 꾀병을 한다고 생각했다. 학원을 하루 쉬면 낫는 간단한 두통이겠거니 생각하고 학원을 빼주는 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음악적 소질이 뛰어난 경도는 요새 들어 혼자 기타 치는 연습을 자주 하는데, 갑자기 팔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기타는 경도가 치고 싶어서 치는 것인데, 꾀병을 부릴 리가 없다. 정말 어딘가 아플지도 모른다.
설 전에 대학병원 진료 예약을 했는데, 설이 지나고서야 날짜가 잡혔다. 진료를 받고 오더니 검사할 것이 여러 개라 입원해서 단숨에 검사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며 입원을 시키기로 했단다. 아동병실에 자리가 나려면 일주일쯤 기다려야 할 거라더니 진료를 본 날 오후에 바로 병실이 났다며 입원하라고 연락이 왔다.
경도는 다 커서 혼자서도 검사를 받을 수 있을 텐데, 병원 측에서는 미성년자라며 보호자 한 명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단다. 경도 아빠는 다음날 아침에 일을 하러 가야 해서 무직의 작은고모가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작은고모는 백수여서 이렇게 바쁘다.)
작은고모는 어제는 청계사를 갔다가 운동삼아 집까지 걸어서 오고, 그저께는 팔공산 갓바위를 갔다 와서 찬 바람을 쑀던 탓인지 감기가 들 것 같은 피곤한 감이 있다. (작은고모와 같이 갔던 큰 고모는 엊저녁부터 감기기운으로 드러누웠다.) 작은고모도 복잡한 병원에 도착하자 극도로 피곤해진다.
"고모도 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 것 같아. 오늘 네가 고모를 돌봐줘야 할 것 같아. 너는 검사하러 온 거지 멀쩡하잖아."
"나도 잠재적 환자야."
"오우! '잠재적'이라는 단어를 배웠어?"
경도 아빠가 접수를 하는 동안 작은 고모는 의자에 앉아 잤다. 애를 하루 봐줬다고 병이 나면 유새를 떠는 것이 되어버릴 테니.
"고모 여기서 자?"
"고모가 널 따라와서 병원에서 자고 감기 걸리면 네가 미안할 거잖아. 그래서, 쉴 수 있을 때 쉬는 거야."
경도 아빠는 돌아가고 경도와 작은고모 둘이서 아동병실로 올라왔다. 5인실이다. 환자들이 하나같이 커튼을 둘러쳐서 어떤 환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여기서 울고, 저기서 우는 것을 보니, 갓난쟁이가 셋이나 된다.
아기 엄마들은 아기를 안고 침대에서 같이 자면 될듯한데, 나는 환자 침대 밑의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자야 하는가 보다.
"경도, 우리 가위바위보해서 지는 사람이 밑에 자는 걸로 하까?" 작은고모는 진심으로 물어본다.
"....."
고모는 병실을 지키는 일이 너무 심심할까 봐 컴퓨터도 가져오고 읽을 책도 두 권이나 넣었다. 경도는 나 몰라라 하고, 환자침대의 밥 먹는 테이블을 펴고 앉아 컴퓨터를 한다. 경도는 핸드폰을 본다. 소변검사를 하라고 한 것 같은데, 경도는 어째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갈 생각을 않는다.
"너, 저거 해야 되는 거 알지?"
"소변검사 내야 돼?"
"그럼 마시냐?"
좀 놀고 있었더니 간호사가 와서 어디 어디 가서 검사를 하고 오라며 차례가 적힌 설명지를 주고 갔다. 1번 영상의학과, 2번 심전도실, 3번 채혈실.
"경도, 다 알아 들었어? 출발."
영상의학과와 심전도실을 거쳐 채혈실에 도착했다. 채혈 순서를 기다리며 앉았는데 경도가 묻는다.
"피를 뽑아야 돼?"
"그럼 피를 토할래?" 고모가 답한다.
순서가 되어 경도 혼자 채혈을 하러 갔다. 작은고모가 멀찍이 앉아서 보니, 경도는 자기 팔에 주삿바늘이 꽂히는 것을 두 눈으로 꽃꽂이 감상하고 있다.
'의사 할 자질이 좀 있는데?' 작은고모가 생각한다. 공부를 좀 잘하면 좋을 텐데.
남자 간호사가 채혈하는데, 주사 바늘을 제대로 못 꽂아서 그러는 것인지 한참을 조몰락거리고 있다.
'저러면 경도가 힘들 텐데?'
보호자가 가서 무서운 얼굴로 한 마디쯤 해줘야 하나 하고 어찌 된 일이지 살폈다. 바늘을 꽂아둔 채로 채혈관 어러 개에 피를 뽑고 있었다.
'피를 하나만 뽑는 게 아니구나.'
작은고모는 일단 주사기를 못 꽂아서 그런 것은 아니니 안심하고 멀찍이 앉아 그걸 지켜본다. 그런데! 도대체 몇 개의 채혈관을 채우겠다는 것인지, 끝도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게으른 작은고모가 결국은 일어나 다가갔을 때에야 드디어 피 뽑기를 멈추고 솜으로 주삿바늘 자국을 누르라고 했다.
"도대체 몇 개나 뽑은 거야?" 작은 고모가 놀라 경도에게 물었다.
"열일곱 개, 열아홉 개쯤?"
"뭘 그렇게 많이 뽑는데?" 작은고모는 경도가 어지러울까 봐 조금 앉아 있다 가자고 했다. 작은고모가 보기에 애가 휘청거릴 만큼 많은 피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병실로 돌아와 쉬자니 경도가 배가 고프단다. 지하 1층에 푸드코트가 있어 뭘 좀 먹으러 갈까 싶다. MRI가 비는 시간 언제든 찍겠다고 했으니, 기계는 비었는데 환자를 못 찾아 못 찍는 일이 안 생기도록 간호사에게 뭘 좀 먹고 올 테니 MRI촬영이 잡히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
"주사를 잡아놓고 가세요."
'MRI시간이 잡히면 10분 점쯤에 조영제 주사를 맞는다고 하지 않았나?'
간호사가 요구한 것은 MRI사진을 찍을 때 맞는 조영제 주사를 놓기 위해 팔에 주삿바늘을 꽂아놓는 것을 의미했다. 주사 바늘이 길어서 꽂는 게 힘이 들어서 그런지 미리미리 준비를 했다.
간호사는 초록색 불을 팔뚝에 켜서 핏줄을 찾았다. 경도는 65kg이 넘어 주사해 넣어야 하는 조영제 주사 양이 어째어째서 긴 바늘을 쓴다고 했다. 작은고모는 바늘이 살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장면을 끔찍해하기 때문에 멀찍이 서서 보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는데, 간호사가 바늘을 다 꽂은 후에 경도에게 자기는 이렇게 긴 바늘은 처음 꽂아봤다고 하더란다. 아동 병원 간호사라 그럴 수도 있었겠다.
저녁시간 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고, MRI사진을 찍는 데는 30분도 넘게 걸리니 일단 뭘 좀 먹을까 싶은데, 의사가 MRI 찍을 때 울렁거릴 수 있다며 먹지 않는 쪽을 권한다. 둘이 쫄쫄 굶고 앉았는데, 도대체 언제 MRI사진을 찍는다는 건지 소식이 없다. 경도는 주삿바늘을 꽃은채로 있자니 불편한가보다.
"고모, 이거 좀 접어줘." 환자복이 주삿바늘 꽃은 곳으로 자꾸 내려오니 경도가 팔을 좀 접어달란다.
"고모가 서비스 하나 해줬다. 잘 기억해 둬." 작은고모는 팔을 걷어주며 고모가 해주는 서비스는 다 가격이 있으니, 나중에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잘 기억해두라는 것이다.
언제 검사할지도 모른 채로 팔뚝에 주사 바늘만 꽃은 채로 침대에 앉아 지겹도록 기다린다. 사방에서 앙앙거리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아기의 울음소리는 시끄러워서도 힘들지만, 아픈 아기라 듣는 사람 마음을 무겁게 해서 더 힘들었다.
"고모 이거 봐봐."
경도가 가리킨 곳은 사물함 쪽에 붙인 '불만/고충 접수방법'이라고 적힌 안내지였다. 말도 못 하는 갓난아기들이 여기저기서 울고 있으니 시끄러운 것을 참느라고 상당히 힘이 드는데, '이것도 고충 접수가 될까?' 하는 농담을 하는 것이다.
병실 창문 밖으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오늘 눈이 많이 와서 땅이 질퍽해져서 경도 아빠는 내일 일을 못한단다. 그러면, 경도 아빠가 와서 경도와 자줘도 될 일이다. 고모가 물어본다.
"너거 아빠 내일 일 안 한데. 너거 아빠 오라 하까? 고모 있을까?"
"아빠가 코를 골잖아." 경도의 대답은 '고모가 같이 있어줘'이다. 이런 된장.
5시 반이 되자 저녁이 나왔다. 경도는 뚜껑을 몇 개 열어보더니 맛있어 보인다며 눈을 반짝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아까부터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언제 MRI를 찍을지도 모르고, MRI를 찍는데도 상당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저녁을 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먹어도 상관없다며 먹으란다.
"경도, 저녁 따뜻할 때 먹어버리자. MRI 언제 찍을지도 모르고."
"의사 선생님이 울렁거린다고 먹지 말라 했잖아."
"배고파서 울렁거리는 것보다는 먹고 울렁거리는 게 안 낫겠나?" 작은고모의 주장이다.
8시가 다 되어서야 MRI를 찍으러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경도는 MRI를 찍으러 기계 속으로 들어가며 후훗 하고 웃음이 났단다, 사람 찍는 기계가 신기해서.
MRI를 찍고 두 번째 저녁을 먹으러 지하 1층 푸드코드에 들렀다. 경도는 요즘 먹는 양이 많아서, 저녁을 한 그릇 다 먹고도 배가 안 찬다고 했다. 푸드코드는 다 문을 닫았고 편의점 한 곳만 열려 있었다. 작은 고모는 컵라면을, 경도는 편의점 덮밥 도시락을 택했다. 그걸 먹고도 어째 출출한 것 같아 바나나를 사들고 병실로 올라왔다.
"병실 안에서 이런 거 먹어도 되나?" 작은고모가 물었다.
"몰라." 경도는 입원해 본 경험이 많아 알 줄 알았더니, 모른단다.
"먹다가 혼나면 알게 되겠지 뭐. 먹자." 작은고모가 말했다.
오늘 먹은 것 중에 바나나가 제일 맛있었다.
큰고모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것도 챙겨가라 저것도 챙겨가라고 잔소리를 해줘서 간식거리를 잔뜩 챙겨 왔을 텐데, 큰고모가 아파 누워 있는 바람에 작은고모는 컴퓨터와 읽을 책을 가방에 넣고 세면도구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나게 많은 걸 챙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른 건 챙길 생각도 못했다.
작은 고모는 오늘 환자침대 옆 나지막한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자야 할 텐데, 몸살이라도 날까 걱정이 된다.
"경도, 고모가 위에서 자고 네가 밑에서 자는 거 어때?"
"내일 아침에 간호사가 보면 뭐라고 할까?"
"고모는 괜찮거든."
착한 경도는 정말로 자기가 간이침대에서 잘 준비를 한다. 경도는 이것저것 검사를 하러 입원을 한 거지 아파서 입원을 한 것이 아니어서, 사실 중년인 작은고모가 더 편하게 자야 될지도.
"너거 엄마 무서워서 밑에 못 재우겠다. 올라가서 자." 작은고모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무서운 것은 경도 엄마가 아니라 이럴 때는 이래야 한다는 세상의 융통성 없는 기준이었다.
"내가 비밀로 해줄게."
눈이 펑펑 내리는 낭만적인 늦겨울밤을 경도와 작은고모는 이렇게 병원에서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