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반혁명과 재한 이집트 정치 난민들 사이에서

검토서를 보내고, 난민 연대 집회에 다녀왔다

by 김동욱
12월 3일 유엔 난민협약 가입일에 즈음한—“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집회와 행진


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아침, 이집트의 반혁명에 관한 책 검토서를 펍헙번역그룹에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행 기차를 탔다.


2011년 이집트 혁명은 30년 무바라크 독재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2년 뒤 엘시시의 쿠데타로 반혁명이 일어났고, 그는 지금까지 이집트를 철권통치하고 있다.


내가 검토한 책의 저자는 이집트 출신 정치 활동가다. 그는 엘시시 정권이 단순히 과거 독재를 복원한 게 아니라, 군대·경찰·정보기관을 단일 지휘 체계로 통합해 이집트 역사상 전례 없는 억압적 질서를 구축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에서 이집트는 ‘피라미드의 나라’ 정도로만 인식된다. 이집트의 반혁명을 다룬 책이 한국어로 번역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래도 검토서에 나름의 기획 아이디어를 적어봤다. 내 아이디어가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편집자가 있으면 좋겠다.


서울 광화문으로 향한 건 ‘재한 이집트 정치 난민들’이 주최한 ‘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엘시시의 반혁명에 맞서다 체포, 투옥, 고문을 겪고 이집트를 탈출한 사람들이다.


한국은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도 제정했지만, 누적 난민 인정률은 2.7퍼센트다. 최근에는 1퍼센트대로 떨어졌다. 대부분 2018년에 입국한 이집트 정치 난민들은 7년간 난민 심사를 기다렸지만, 작년 한국 정부는 줄줄이 불인정 처분을 내렸다.


오는 12월 3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윤석열 쿠데타 시도를 막아낸 지 1년이 되는 날이자, 한국이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날이다. 시민들의 힘으로 쿠데타를 막아냈지만, 이재명 정부 하에서도 난민 인정은 거부되고 있다. 오히려 최근 이집트 공식 방문에서 이집트를 ‘평화 촉진자’라며 엘시시를 칭찬했고, 엘시시는 뻔뻔하게도 한국의 계엄 사태를 보며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에 놀랐다”고 화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한 이집트 정치 난민들이 12월 3일을 앞두고 난민 지위 즉각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 것이다.


IMG_4160.jpeg 전단지 배포를 맡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흔쾌히 받아주셔서 100여 부가 금세 동났다


나는 난민 인정자든 미인정자든 재한 이집트 정치 난민들을 여럿 알고 있고, 이들의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오늘은 전단지 배포를 맡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흔쾌히 받아주셔서 100여 부가 금세 동났다. 행진 중 손 흔들며 환영하는 행인들도 여럿 봤다. 정말로 “Refugees are welcome her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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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알리님, 아흐메드님, 홍덕진 목사님, 이상윤님, 살레흐님


알리님의 대표 발언에 이어, 홍덕진 목사님, 의사 이상윤님, 난민 인정자 아흐메드님의 연대 발언이 있었다. 아흐메드님의 발언이 특히 인상 깊었다.


“난민 신청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책임이 있기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난민 인정을 받아도 대단한 부를 누리지 않습니다. 불안과 불안정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난민이 특권을 누린다는 혐오에 맞서는 당사자의 목소리였다.


이집트인들이 주최한 집회지만, 용기를 얻어 함께한 수단인, 예멘인 난민들도 있었다. 예멘인 살레흐님은 난민 신청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전했다. 건강보험은 기본적 인권이지만 난민 신청자는 가입이 거부된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 얼마 전 아이 출산에 1000만 원 넘는 비용이 청구됐는데, 뜻있는 의사들의 도움으로 해결된 사례가 있었다고 사회자가 덧붙였다.


의사이자 연구원인 이상윤님은 국내 난민들의 의료 실태를 조사해 한국 사회에 널리 알리겠다며 난민들에게 조사 참여를 호소했다.


행진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출발해 조계사를 지나 광화문을 거쳐, 출입국외국인청 세종로출장소 앞에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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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과 연대를! 한국 정부는 난민 즉각 인정하라!


집회와 행진 내내 아침에 보낸 검토서가 자꾸 떠올랐다. 내가 검토한 ‘이집트의 반혁명’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면 좋겠다.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한국도 작년 민주주의가 총칼에 위협받았던 상황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