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나는 이미 <곤지암>이라는 영화를 봤다. 세간이 떠들썩했기에 도저히 안보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제일 컸다. 팝콘을 사지 말라느니 하는 다양한 평가들이 쏟아졌고 무섭다는 홍보가 너무나 많이 되어서 기대감도 자연히 높아졌고 높아졌던 기대감이 무너져내리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세상 정신없고 지들끼리 물어뜯는 상황 속에서 도저히 공포라는 것이 스며들 수 없었다. 몰입은 당연히 포기였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시각적인 공포효과들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영화에서 사용하고 있었고 효과들은 전부 무료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서였다지만 나는 전혀 그 부분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고도 도저히 쓸 말이 없어 리뷰를 하지 못했다. 그냥, 공포영화였다. 단지 곤지암 정신병원을 등에 엎은 허세 좋은 속 빈 강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이 녀석은 진짜다. 정말 진짜다. 올 후반기까지 어떤 영화들이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이 분야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는 이 녀석이다. 분명하다. 만약 아직도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보기 바라며 이렇게 글을 쓴다. 진짜는 누구나 알아보는 법이다. 그 진짜가 여기 있다.
# 관전 포인트 1. “소리”
공포를 주관하는데 오감의 요소는 빠질 수 없다. 가장 지대한 부분이 아무래도 시각이다. 눈에 보이는 공포가 단연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나머지 감각들이 포함되고 합쳐져서 더욱 자극적이고 사실적인 공포효과가 드러난다. 이 영화는 사실 시각적 공포는 없다. 그러나 시각적 효과 따위 개나줘도 우린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표본 같은 영화다.
“소리”는 정말 엄청난 역할을 해냈다. 고요한 가운데, 대사도 많이 없다. 당연하다. 괴물이 소리를 듣고 죽이러 오는 마당에 대사라니 말도 안 된다. 주변의 소리가, 그 자연스러운 노이즈 속에서 인물들은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숨통을 조여 오는 느낌은 그 덕분에 배가 된다. 배우들의 소름끼치는 연기(한분 빼고-적어도 내 기준에서는)가 한 몫 톡톡히 했다. 내가 봤던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고요했지만 아마 사람들이 많았더라도 영화관 내부가 고요했을 것이다. 내가 다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입을 틀어막고 발버둥 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몰입했고 영화 속에 내가 있었다.
“소리”는 공포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이 영화를 계기로 오감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각은 더 이상 왕 노릇을 못 할 것 같다.
# 관전 포인트 2. “섬세함”
굉장히 섬세했다. 어떻게 하면 극단적인 스릴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고심했던 결과가 드러난 포인트들이 많았다. 일단 기본 소재를 소리로 잡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 되어 인간의 심장을 조여 올 수 있는 요소들을 넣었다. “소리”라는 것을 듣지 못하는 첫째 딸. 그녀는 소리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심성이 떨어진다. 태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으며 보는 우리는 소위 “암” 걸리게 하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게다가 임신한 아이들의 어머니는 등장과 동시에 내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출산의 고통에서 소리를 지를 수 없는데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연히 울기 마련이다. 도대체가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진행이어서 숨이 막혔다. 이 둘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슬기롭게 이러한 상황들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들 속에서도 고민의 모습들이 보였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사용한 부분들, 기본적으로 수화의 사용부터 큰 소리 뒤에 숨어 작은 소리들을 내는 것, 오래된 마룻바닥에 소리가 나지 않는 부분을 표시해 둔 것, 태어날 아기를 위해 방음이 되는 지하방을 준비하고 아이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산소 호흡기를 아이용으로 준비하고 꽉 막힌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것 등 진행되는 스토리 별로 보는 사람이 연출에 의문을 품지 않게끔 세심하게 각 부분의 개연성을 잘 조립해 놓았다.
# 관전 포인트 3. “스토리와 가족”
고난의 순간에 한 가족이 주요 이야기를 끌어간다. “왜?” 이런 괴물들이 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으나 그편이 더 났다고 생각한다. 자질구레한 부가적 이야기들을 펼쳐놨다가 수습도 못할 바에 이 가족의 생존일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그리는 편이 훨씬 좋았다. 더 몰입할 수 있었고 이들을 응원할 수 있었다. (한명만 빼고)
세 명의 아이와 함께 살아가던 이들이 고난을 이겨내던 중 막내아들이 첫째 딸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후에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 양상과 부모로서의 고민, 아이들 사이의 분열, 대부분의 인물들이 주어진 역할에서 할 수 있는 표현을 충분히 해냈다. 다만 아까부터 계속 이야기 하는 그 한 명. 사실 제일 중요한 인물임에도 연기력이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많이 본 것 같다. 바로 첫째 딸 래건 애보트 역의 배우 ‘밀리센트 시몬스’다. 소리가 없기에 표현력이 많이 필요했던 영화였고 무엇보다 듣지 못하는 역을 해야 했던 그녀였지만 그 배역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 한 것 같다. 표정이 많이 어색했고 다른 배우들에 비해 몰입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약간의 스포겠지만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장면이 있다. 동료와 함께 영화가 끝나고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자식들을 위해 이러한 상황에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가? 실제로 자식이 있던 동료의 대답은 “쉽지 않을 것 같다.”였다. 물론 뜬금없이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는 모든 부모들이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막내아들을 잃어 자식을 잃은 슬픔에 시달렸고, 막 갓난아기가 태어났으며 아내에게 반드시 부모로서의 역할을 해달라며 아이들을 지켜 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 참 잘 만들었구나.
공포이자 스릴러이며 전반적인 스토리와 요소들까지 놓친 부분이 없었던 수작이다. 서두에도 이야기 했지만 아직까지 보지 못한 분들은 꼭 영화관에서 보기 바란다. “소리”가 주는 소름 돋는 공포와 이들의 생존기를 통해 내가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feat. 김큰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