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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Sep 26. 2018

넌 봤니? 더 넌?

영화 <더 넌>

믿고 본다...! 하긴 그렇지만 영화 <컨저링> 이후로 꾸준히 그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공포영화의 가지 중 하나 <더 넌>


 <컨저링> 이후 그 후속작들은 사실 그렇게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그렇긴 해도 어느 정도 평타 이상의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고 본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 공포라 함은, 스크린을 벗어나서도 이어지는 공포가 진짜라고 생각하기에 사실 악령이나 귀신같은 것으로 이어지는 공포적 느낌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은 공포영화로서 점수를 크게 주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나 뭐, 스크린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 당시의 느낌은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정말, 엄청나게, 깜짝 놀랜다. <더 넌>이 유독 더 그런 연출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 했던 이 영화를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화 <더 넌>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는가?




휘황찬란한 말들이 항상 포스터에 붙곤 한다. 특히나 공포 장르의 영화들을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하면 더욱더 기괴하게 포스터를 꾸밀까 고민하고 또 그 안에 문구는 어떻게 넣어야 할까 하는 대 숙제 앞에 고민하는 디렉터들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기억하는가? 영화 <컨저링>에서 포스터에 적혀있었던 글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참 멋진 문장이 아닐까 싶다. 공포영화 이면서도 무서운 장면이 없다고 대놓고 떠들어 놨다. 그래놓고는 무서운 영화라고 하니 이 반어적 표현에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까놓고 보니 무서운 장면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영화 자체도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공포영화의 표현력에서 서양권은 영화들은 어느 정도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또한 적당한 시리즈물도 없었던 시기에 터진 <컨저링>이라는 영화는 지금까지도 많은 후속작을 뱉어내며 서양 영화 공포기에 하나의 흐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런 시점에서 영화 <더 넌>은 <컨저링> 문구의 옳지 않은 활용 예를 보여준 것 같다. "죽을 만큼 무섭지만 죽진 않는다!" 이게 무슨... 문구만으로 피식 거리게 했던 영화답게 후반부에서는 사실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이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 거라면... 큰 그림이라 인정할 만하다.  



 말했듯, 공포는 기준 이하다. 악마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여서 더 바랄 것도 없긴 했다만 전 시리즈에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던 수녀 귀신의 내막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이제는 의리로 찾아본다는 느낌도 있었기에 상영관에서의 설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밤늦게 봤다.)

 그러나 뭐 역시나, 수도 없는 놀람 요소 말고는 깊이도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스토리 라인 역시 해괴하기만 한 공포영화로 마무리된 것 같다. 


 수녀원에서 잠들어 있었던 악마가 깨어나 수녀들을 모두 죽이고 그 수녀원을 탈출하고자 하는데 마침 걸려든 한 신부와 견습 수녀, 그리고 그들을 그곳까지 안내했던 청년 셋이서 악마를 막는 이야기가 주가 된다. 보통 퇴마 사제로 나오는 신부님들은 보면 하나같이 멋진 유물과 말도 안 되는 능력들을 발휘하곤 하는데 이 신부님은 수녀님 이름 부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고 자기 트라우마에 갇혀 도움 하나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안내했던 청년이 총과 용기로 악령들을 때려잡고 수녀는 난생처음 접하는 이 괴이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간다. 


 마지막에는 이 세 명의 인물이 결속하여 마치 악령판 어벤저스처럼 악마를 두들겨패는데 짜릿(?) 하고 통쾌(?) 해서 웃음만 나왔다. 역시나 이 영화 시리즈는 항상 마지막에 관객들을 물 먹이는 것 같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스토리와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작품을 인정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단순히 사람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해, 놀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면 돈을 주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푹푹 찌는 여름이라면 또 모를까 요즘 같은 선선한 날에 선선한 공포는 내 주머니만 선선하게 만들 뿐 결국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수녀 귀신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 전 편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고 그렇다고 그 이상을 연계해서 고민해보고 싶지도 않다. 다음 편은 또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궁금하기도 하다만 여전히 이런 흐름으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면 생각을 좀 고쳐봤으면 좋겠다. 김치도 이 정도 우려먹었으면 별의별 음식 다해 먹고 셔 꼬부라져 못 먹을 텐데 색다른 메뉴를 내놓아도 좋지 않을까? 


 한 번쯤은 공포영화에서 숨도 못 쉴 만큼 헉헉 거려 보고 싶은 것이 관객들의 마음일 텐데 말이다. 

 

 feat. 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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