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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Jan 18. 2019

말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영화 <말모이>

 4차 산업혁명, 미래, 격변하는 산업 기술들, 빨라지는 사회, 높아지는 장벽들과 세상의 파도들, 뒤처짐, 고단함, 순간뿐인 재미와 감동에 치여 살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내가 한 해를 살아왔는지, 아니 이제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삽니다. 


 20살이 되기까지 참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 20살이 지나고 나니 나이를 먹고 있는지도 모르는 새에 나이는 이만큼 먹었고 나는 여전히 여기 그대로 서 있는 것만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누리는 세상의 가치들과 흥미로운 요소들 속에서 나의 시간은 이만큼이나 잡혀 먹혔나 싶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저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기타 여타 여러 가지 나의 득실을 떠나서 저는 글을 씁니다. 즐겁게 씁니다. 행복하게 씁니다. 이 글이 나의 시간이 되고 놓친 모습들이 되고 그날의 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영화를 봤습니다. 

말 모이랍니다. 아름다운 제목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했다고 합니다. 또 애국심 충만하게 만드는 영화일라나 싶었습니다. 

뻔한 소재로 감동을 이끌어내고 다시 한 번 현재에 감사함을 이끌어내는 줄 알았습니다.

배우진들도 확 눈에 끌리지는 않았습니다. 굳이 봐야 하나 싶었습니다.


 영화 상영 전 한 손에는 포스터를 들고 있었음에도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냥 휴대폰의 루미큐브를 돌리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어두워지자 자연스럽게 휴대폰 화면의 조명을 낮추고 다리를 꼬며 영화의 시작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까지 깊이 있게 함께 했습니다. 



 말이 모인답니다.

말모이라고 합디다. 

이곳에도 말이 모입니다. 

인터넷 속에도 온통 말 천지입니다.

세상 속에도 온통 말 천지입니다. 말은 끊임없이 모이고 나를, 여러분들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말을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말을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자유를 만납니다.


 나의 자유입니다. 언어의 자유입니다. 말의 자유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 조선어학회 류 대표는 말합니다. 

말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답니다. 


 돌아봅니다.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봅니다.

지켜봤습니다.

그들이 내가 오늘도 여전히 가볍게 흘려보내는 말들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지켜봤습니다.

강압적으로 스며드는 일본어를 통해 정체성을 잃어가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김판수의 마음속을 들여다봤습니다. 

탄압 속에서 어떻게든 조선어 사전을 만들고자 사투하는 류 대표의 마음속에서 함께 했습니다.

엎어지고 뒤집어지면서도 끝까지 한글을, 우리말을 지켜내고자 했던 조선어 선생님들의 마음속에서 함께 했습니다. 

3천여 개의 언어 중에서 사전이 있는 언어는 20개 남짓이랍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국의 언어를 회복시킨 나라가 대한민국이랍니다. 


 세종대왕님은 한글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위대한 성군이라고 칭송합니다. 동상 속에서도 항상 책을 펴고 계시는 세종대왕님을 봅니다. 

세종대왕님께서 만드신 이 글을 지킨 자들이 있었습니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라고,

한 명의 열 걸음이 큰 것이 아니라 열 명의 한 걸음이 더 큰 것이라고 믿었던 자들이 있습니다. 

세종대왕님은 몇 백 년 전에 한글을 만드셨지만 

불과 백 년도 되기 전에 이 한글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자들이, 어쩌면 세종대왕님보다 더 큰 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참 많은 사람들과 말을 섞습니다. 

그 안에서 무너져 가는 한글들을, 우리말들을 만납니다. 

마음대로 짧게 줄여 쓰고 자음만 덩그러니 남아버린 글들을 만납니다.

재밌어서 웃고 요즘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서 따라 했습니다.

지키는 건 나이 먹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랬었네요. 네, 그랬었습니다. 


 오늘따라 노트북의 자판들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주변의 말들이 더 깊이 있게 들립니다. 

지금의 이 현실이 더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말이 모이는 곳에 우리의 정신이 모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이 땅을 밟고 서 있는 이 땅을 지키고 정신을 지켜냈던 

위대한 조상들의 후손입니다. 이제는 말이 모이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의 “정신”을 더욱 하나로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말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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