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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Feb 13. 2019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 <증인>

  대한민국 영화계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한동안 성공과 흥행의 아이콘은 자극적이고 짜릿함이 대세였죠. 그간 개봉한 영화들의 라인업도 보면 어느 것 하나 심심한 요소 없이 하나같이 과하고 짰었고요. 그게 또 관객들에게 먹히던 시대였으니까요. 형사가 등장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저기 피 칠갑에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엔딩을 보고 나서는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영화들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렇게 흥행의 길로에는 늘 핏덩이들이 즐비했어요. 


 그러나 대중들도 이런 자극적인 것들에 상당한 피로도를 느끼고 있었고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영화 같은 일이 현실로 벌어졌던 대형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면서 소위 질릴 대로 질려버렸을 겁니다. 이제는 그 끗발도 다했다는 말이죠. 이런 과정 속에서 등장한 <극한 직업>은 지금도 1300만을 돌파하여 행진 중입니다. 물론 스크린의 대부분을 장악해서 새로운 영화들이, 또 다른 좋은 작품들이 발 디딜 곳조차 제공하지 않는 영화계 현실이 안타깝지만 돈이 물려 있는 곳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새이지 않나 싶어요. <극한 직업>, 마냥 웃기만 했던 이 영화가 1300만을 돌파한 것은 설 대목에 껴 있었다는 이유보다 그냥, 관객들에게 전심을 다한 재미와 기쁨을 선물해 줬다는 것. 오랜만에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느끼게 해줬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오늘 봤던 <증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주제와 중심적인 스토리라인은 사실 뻔합니다. 이런 유의 영화에는 대략적으로 누가 범인이겠다가 느낌상 맞춰지기 마련이에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주인공이라면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당연히 이 아이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그러나 삼겹살의 맛을 안다고 해서 다시 먹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그 안에서 색다른 매력, 차별화를 기대하며 영화관을 찾고 작품을 봅니다. 대개는 실패할 때가 좀 더 많지만 이 영화만큼은 그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연기력은 알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김향기"라는 배우는 분명 본인만의 "향기"를 가지고 그 향기를 퍼트릴 줄 아는 매력적인 배우임이 스크린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정우성"씨는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97년작 <비트>라는 영화 속의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그만큼 동안의 얼굴에 연기력까지 탄탄했다는 말이죠. 


 연기력이 받쳐지자 영화는 날개 돋친 듯이 본연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톱니바퀴가 어긋나 돌아갑니다. 스토리에 불협화음이 보이고 납득이 되지 않는 구간들이 발생해요. 의문을 가지고 바라봤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맞춰질 때, 반전으로서 가미될 때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게 됐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공포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등장했을 때는 오금이 저렸답니다. (으으... 다시 생각해도 그분의 소름 돋는 등장 신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네요 - 보신 분들은 아시겠죠?)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 봤습니다. 


 양 변호사(정우성 역)는 꽤 오랫동안 민변을 맡았던, 즉 언제나 정의에 편에, 진실에 편에 섰던 남자였습니다. <더 킹>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죠. 그러나 가족의 빚과 삶의 고단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형 로펌에 들어가고 변호사들의 꿈이라는 파트너 변호사의 자리까지 올라섭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을 버리게 됩니다. 그는 그가 이제까지 입고 다녔던 "낡은" 정상을 벗고 말쑥한 "명품"정장과 구두를 신으며 좋은 차를 선물로 받습니다. 


 그런 그가 맡은 사건의 열쇠였던 자폐 아이인 지우(김향기 역)를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다양한 접촉들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정의를 다시 찾아갑니다. 지우의 꿈은 변호사였습니다.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자신이 자폐아임을 스스로 알기에 변호사의 꿈도 스스로 접습니다. 그런 지우가 양 변호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당신도 저를 이용할 것입니까?"


 양 변호사는 선뜻 답하지 못합니다. 사건이 진행되고 내막이 밝혀질수록 추악해지는 진실을 마주했을 때 양 변호사는 "명품"정장과 구두를 벗고 "낡은" 정장을 다시 입습니다. 


 모든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나서 마지막으로 지우의 생일에 찾아간 양 변호사에게 지우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때의 양 변호사 눈에 맺혔던 눈물의 의미를 절절히 마음속으로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꿈을 어렸을 때 꾸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적어도 제가 어렸을 때에는 꿈이 공무원이 아니었습니다. 경찰이었고, 소방관이었고, 군인이었고, 연구원이었으며, 대통령이었습니다. 하나같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꿈꿨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서 우리를 자꾸만 좋지 않게 만들어갑니다. 획일화 시키고 살아남게 만들며 없으면 죽을 것 같이 만들어갑니다. 이제는 저도 제가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것은 한마디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비록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지우처럼 순수한 아이가, 정말 깨끗한 아이가 나에게 해주는 한마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 한마디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우의 말에 저도 같이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어쩌면 양 변호사에게 양변 호사가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증인"이 지우였던 것처럼 우리의 주변에도 우리를 순수히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멋진 "증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이 잘 나아가고 있노라 당당히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픈 오늘을 우리는, 저는 살아갑니다. 내일도 고프겠지만 모레도 고달프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이 이미 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Feat. 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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