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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Sep 20. 2019

무비딕 프리뷰 : 애드 아스트라

김큰별의 영화 이야기 


* 오랜만에 리뷰입니다. 본래의 문체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애드 아스트라. AD ASTRA


별들의 시대라고 해석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인류의 숙명과도 같은 미래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액션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우주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우주는 이제 영화계에서도 뜨거운 소재인 것이 확실하다. 방향성은 과거에 비해서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과거의 우주는 상상력의 도화지 이자, SF라는 장르의 핵심적인 그릇이었다. 보여 지는 모든 것들이 신기했으며 액션을 가미하는데 있어서 더 없이 맛깔 나는 재료였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우주라는 그릇은 더욱 사실적인 묘사와 두려움, 그리고 보다 확실한 미래를 담는 그릇으로 변모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제는 더 이상 상상으로만 남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영화이지만 휴먼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마, 짜릿한 무언가를 기대했다면 많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예고편에 혹해서 봤다면 아쉽지만 2시간이 아까웠으리라. 영화의 내용은 우주의 장엄함보다 한 명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것이 다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 한 명의 삶이 우주를 통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말하고 싶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가 찼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더 중요한 것 같다. 내 삶의 모습을 바라봐도 많은 부분이 부모님을 닮아 있으니 말이다.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제는 나와 동등한 한 명의 사람으로 보일 때 그때가 돼서야 알았던 사실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 하면 영화의 주인공 맥브라이드의 삶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맥브라이드의 아버지는 우주사령부에서 역사적인 인물로 해왕성 탐사까지 성공했던 위인으로 칭송되었다. 그에겐 가정이 있었지만 사회적인 명성에 반해 가정적이지 못한 남자였고 그의 마지막 항해에서의 사고로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했다. 맥브라이드의 아버지는 철저히 외향적인 남성이었다. 임무가 중요했고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되었다. 이런 성향은 아들인 맥브라이드에게도 자연스럽게 주입되었고 그의 꿈 역시도 아버지와 같은 우주비행사가 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의 데칼코마니같은 아들 맥브라이드를 아버지는 자랑스러워 했을까? 


맥브라이드는 이런 아버지 덕분에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설립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었다. 옳은 일에 매진하지만 자신을 아낄 줄 몰랐다. 아버지를 잃었지만 당연하다 여겼으며 아버지를 존경했다. 임무를 우선시했고 시선에 신경 쓰며 삶을 살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어려움을 끼친다면 내쳤다. 복잡한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이 모든 자신의 모습 속에 스스로도 염증을 느낄 때 그는 해왕성에 아버지가 탐사선 안에서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아버지의 탐사선 속 문제가 지구에 큰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상부의 보고에 화성에서 아버지와 통신 접촉을 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숙련된 우주비행사였기 때문에 여정에서 닥치는 문제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지만 화성에서부터 점점 그는 자신의 신뢰했던 부분들 속에 비틀어진 틈을 다시 닫지 못하고 그것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홀로 화성에서 해왕성을 향해 세피로스 호를 타고 가는 장면이라고 본다. 이때 철저히 우주 속 혼자가 된 맥브라이드는 이제까지 닫아왔던 모든 감정적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혼란 속에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찾아들어가기 시작한다. 억지로 심박수를 조절하며 우주비행사로서의 임무를 위해 절제해왔던 감정을 다시 받아 들이고 이미 틀어진 모든 부분들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한다. 


해왕성에 도착했을 때 이제 그에게는 단 한 가지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던 “아버지”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철저한 사명감 앞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고 맥브라이드는 그를 어떻게든 설득해 다시 지구로 돌아가려 하지만 결국은 아버지는 자신의 목표를 놓지 못하고 홀로 우주복을 입은채 해왕성 너머로 멀어져버린다.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맥브라이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를 놓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에 걸었던 고리를, 부디 자신을 풀어달라고 이야기 하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며 풀어냈을 때, 우주로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볼 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건축해 줬던 아버지를 그렇게 우주로 보냈을 때.


맥브라이드는 다시 자신이 타고 왔던 세피로스로 돌아가 지구로 귀환한다. 아버지의 연구 자료를 담고, 지구를 위협하던 문제를 해결한 뒤 성공적인 복귀를 해낸다. 그리고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번외의 이야기긴 하지만 요즘 흥행하고 있다는 게임, 와우 <클래식>을 볼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아재들이 돌아왔구나, 와라버지(와우 할아버지)가 돌아 오셨다. 이런 것들보다도 지금 너무나 편리해진 와우라는 게임의 체계에서 무려 15년 가까이나 지난, world of walkcraft라고 불렸던 불편해 마지 않는 체계를 가진 클래식이 흥행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때의 사람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은 아닐까?


그 세계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고 웃고 고난을 넘었던 진짜 RPG의 세계가 그리웠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이제는 우리라는 말 보다는 '나'라는 말이 더욱 중요해져서 울타리가 없어지고 혼자가 더 강한 시대가 되고 있다. 뭐든지 앞에 ‘1인’이라는 단어가 붙고 혼자를 배려해야 살아남는 세대가 됐다.


영화의 모든 부분에서 우주라는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즐기는 장면은 거의 없다. 다들 사무적인 분위기에서 각자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 죽었다고 격한 슬픔을 느끼지도 않고 죽음이라는 것 자체의 무게도 미래에는 이토록 가벼워지는 걸까? 그런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맥브라이드가 살아가고 있을까?


맥브라이드의 삶에 주춧돌은 아버지였지만 미래의 환경이 그 위에 세워진 맥브라이드라는 삶의 벽을 더욱 텁텁하고 삭막하게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철저히 혼자로 인정했던 맥브라이드가 우주 속에서 진정 혼자인 자신을 마주했을 때 결국은 1인이 아닌 우리를 생각하고 나 자신의 존재를 다시 정의했던 것처럼 시대가 변하고 삶의 가치가 변해도 인간은 그 단어의 뜻처럼 결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당신은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는가?

언제까지 혼자가 편할거라고 믿는가?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도, 사회가 사회라고 인정하는 것도 결국 혼자가 아닌 다수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대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세상에, 우주영화에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이 영화 진짜 이상하긴 한가보다.


김큰별의 무비딕 프리뷰 <애드 아스트라>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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