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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Jan 19. 2021

RE-WRITE : 강신주의 감정수업 #13


Chapter 12. 회한


* 무력감을 반추하도록 만드는 때늦은 후회 *


"회한이란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140p




회한이라는 단어는 마음을 축축하게 만든다.

젖는 것 같다. 마음이 아련하게 젖는다. 이것은 꽤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슬픔이어서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첫발과 동시에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다. 스피노자가 정의한 회한의 해석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저자는 이곳에서 회한을 보다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누군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그들을 구해주어야겠다는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타심이 사명이 되어 자신의 자랑으로 굳어진 사람들도 있고, 혹은 표면만 그럴 뿐 정작 실제적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 여성이 다리 위 난간에 위태롭게 서있다. 누가 봐도 그녀는 곧 자살할 것만 같다. 이 다리를 우연히 지나게 된 나는 그녀를 본다. 갈등한다. 그러나 별 일 있겠어? 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지나친다. 다리의 끝에 다다랐을 때 첨벙하는 물보라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몇번, 비명소리가 동시에 밀려든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한다. 이미 늦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소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세상은 다시 고요 속에 가득 찬다.


이번 챕터에서 소개하는 알베르 카뮈의 <전락>이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클라망스가 경험한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를 구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오는 클라망스 스스로의 자책보다도 그의 마음속에 회한이 더욱 그를 파멸로 이끈다. 회한의 포커스는 클라망스가 내린 결론 속에서 찾아볼수 있다.

클라망스는 자아도취에 빠진 인간이었다.


위와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면 언제든 당당히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고 또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떨쳐내는 사람일거라는 스스로의 믿음이 강했다. 아마도, 도망치는 사람들, 외면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조롱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클라망스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치자 그는 이제껏 그가 조롱했던 사람들과 같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또한, 자위했다. 어쩔수 없었노라고. 

이것이 회한이다.


믿어왔던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

나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적적한 마음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고개를 드는 것은 대단할 것 없었던 오만 투성이의 자신일 것이다.

결코 발견하기 싫었던 무력함 덩어리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회한에 찬다.

그러나 나는 생각해본다.


우리는 이런 회한의 순간을 반드시 맞이하고 받아들어야 한다.

회한을 경험해본 사람은 축복이 있는 사람이다.

결국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네이버 웹툰에 <더 복서>라는 작품 속 주인공인 "유"는 자신에게 팬이라며 다가온 아이에게 과한 무력감을 선사해준다. 꿈과 희망에 가득차 있었던 꼬마 아이는 아무리 강한 복서여도 죽는 것은 똑같다며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를 날카롭게 표현하는 "유" 덕분에 큰 울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게 된다.

"유"는 상당히 강한 복서다. 세상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눈과 괴물적인 감각,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의 피지컬은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그의 매력에 매료되게 만든다. 마치 신과 싸워도 이길 것만 같은 "유"의 강함은 어쩌면 그가 스스로 완전히 알고 있는 자신의 본질적인 무력감, 인간이 가지는 한계점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래, 그런 사람들이다.

나라도 뭐가 더 뛰어나고 당신이라고 뭐가 더 대단하겠는가.

"세져 봤자 딱히 좋은 거 없는데,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 맞으면 죽어"라는 "유"의 말처럼 평생 천날을 살아낼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언젠가 한계점에 부딪치고 망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계가 있는 '나'이기에 더 과감히 다를 것 없다고 믿으며 덤빌 수 있는 건 아닐까?


회한에 젖어서 나락에 떨어지지 않으려거든

당신이 대단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라.

오히려 대단하지 않은 당신이 이뤄낸 대단한 행적들을 바라보라.

행적에 감탄해 나를 높이지 말고 행적을 달성한 나 자신에게 감사하라.

인간인 당신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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