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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Apr 21. 2021

RE-WRITE : 지 대 넓 얕 제로 #6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Chapter. 6

철학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철학, 그가 찾아온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인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철학으로 관통하기 때문에 온전히 쉽고 재밌는 철학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만큼 대놓고 철학이라고 적힌 타이틀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베다, 도가, 불교는 전부 중동과 동양 쪽 종교이자 철학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유럽의 철학을 알아보아야 할 차례다.


우리 모두가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그들을 말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일단 고대 그리스를 생각해보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하얀색 천을 걸치고 손가락을 하나 치켜 든 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각각 무리 지어서 토론하고 있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여기까지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학문인 철학과 그와 관련된 여러 사상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학문적 가치가 되는 시기엔 대개 인간사에 환란과 고통이 따랐다.


소크라테스가 덕망을 높이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에서 2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고 결국 아테네가 패한 뒤 유럽은 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있었다. 민주정이었던 아테네는 잠시 스파르타에게 민주정을 빼앗겨 버렸고 독선적이고 힘의 지배를 추종했던 스파르타에 의해 암흑기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당연히 인간 자체에 대한 학문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여기 저기 알려진다.


놀랍게도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쓴 저서가 없다.

모두 플라톤의 여러 저서에서 그가 등장함으로서 지금까지도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소크라테스 역시 그보다 훨씬 젊었던 제자 플라톤의 글을 보며 자신이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노라 말했다고 했다 하니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철학이며 어디까지 소크라테스의 철학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인데 이랬든 저랬든 이 둘은 서양 철학에 결단코 빼먹을 수 없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둘은 철저한 이원론자 였다.

육체와 영혼은 둘로 존재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믿음이 소크라테스가 담담히 독배를 마시게 했으며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정립하는데 거름이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죽음을 통해 완전한 세계로 떠날 것이라 믿었으며 그랬기에 독배를 마시며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남을 나누고 이를 "파이돈"이라는 훌륭한 서적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근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저서 <순수 이성 비판>에서 임마누엘 칸트가 제시한 충격적인 가정이 철학계를 뒤흔든다.

우리가 신체적 매커니즘으로 익히 알고 있었던 세계는 사실 허구 일수도 있다는 가설이었다.

그는 인식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눈 앞에 물체가 눈으로 보여서 머리 속에서 인식되어 그것을 명명했던 실재론적 세상이 사실 이미 내 머릿 속에 주입 되어 있는 일종의 색안경에 의해 저 물체를 정의 해 놓고 그것을 바라보면 그것이 그 물체라는 이미지를 마음 속에 그려내 정의한다는 관념론을 제시한 것이다.

좀 어려운 설명이 되었지만


쉽게 말해 칸트는 지금 당신의 휴대폰이 사실 휴대폰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물음표가 뜨는 것이 당연하다. 최초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이 집필되었을 때 많은 학자들이 이 책을 두고 혼란스럽다 말했으니 말이다.


나의 인식체계에 저장되어 있는 휴대폰이라는 정의가 그것을 휴대폰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 내 손에 있는 휴대폰은 휴대폰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이는 어찌 보면 현대의 "양자물리학"의 기초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철학은 이렇게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해 칸트로 마무리 된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철학 편에서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한 문장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진정한 현명함이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것에서 출발 할 수 있음을

소크라테스는 알고 있었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어느날 우연히 신탁을 전달 받았다.

그의 제자가 신전에서 이 세계에 과연 소크라테스 보다 지적인 존재가 있는가 라는 물음에 없다라는 답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신탁은 굉장히 위엄있어서 이 신탁을 감히 의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결코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지위가 높고 위대한 인물들이 많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 여러 대화들을 나누며 감히 이 신탁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내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들보다 자신이 현명한 것은 단 하나, 내가 내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에는 "미적지근한 지식인"이 많아졌다.

이 미적지근한 지식인들이 점점 세를 불리자 이제는 "오해하고 있는 지식인"들이 생겨났다.

오해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이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판단해 보지 않고 무리를 군집했다.

무리가 군집되자 힘이 생겼고 이 힘은 또 다른 지식인들 사이에 대립을 만들어 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오히려 정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만약

스스로의 무지를 온전히 깨닫고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진솔하고 낮은 자세를 겸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꼰대"가 되지도 않을 것이며 내가 타인을 "꼰대"라고 지칭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를 먹는 것에 제곱으로 아는 것이 많아지고 있노라 착각할까?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를 점검하는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왜인지 모르게 높아만 지는 어깨의 높이와 콧날에 주의해야 한다.

최근 은퇴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지금의 직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며 많은 부분에 아는 것이 많아졌지만

나는 겨우 이 세상의 수도 없이 많은 분야에 작은 한 부분의 지식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불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인생에서 반드시 배울 부분이 많으며 그들의 깊이를 내가 오해해서도 안된다.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보다 40살 이상 어렸던 플라톤을 제자로 두었다.

적어도 그는 "꼰대"가 아니었고 플라톤은 그를 "꼰대"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 상상한다.

그런 그가 현명함에 대해서 정의한다.


이 가르침이 내 인생 길에 또 하나의 등대가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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