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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Apr 20. 2021

RE-WRITE : 지 대 넓 얕 제로 #5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Chapter. 5


불교



불교.


여러분은 불교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가?


물론 힌두교와 이슬람교 보다는 훨씬 대한민국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종교 이며 지금 종교 인구 중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나 카톨릭 보다 훨씬 이 땅에서 오래 역사와 함께 했던 종교 이기 때문에 보다 친밀한 종교라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불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다. 산 속에 있고 보통 살생을 하지 않는 교리 때문에 채식을 위주로 하며 소유보다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그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의 시선을 보내곤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불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의 역사나 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불교의 신자들을 존경하고 속세의 삶에서 떠나 진실된 불도를 닦아가는 스님들 역시 존경한다.


하지만 이 책은 종교의 영역에서 벗어나 내면의 가르침을 보고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불교의 역사와 더불어 이 안에서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지 저자의 생각과 인도를 따가라 봐야만 한다.

불교에는 제일 처음 "깨달은 자"가 되었던 붓다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있었다.


그는 사실 어떤 나라의 왕자였는데 당시 베다의 우파니샤드에 의한 가르침이 퍼지던 때였기에 그도 내면의 수양을 위하여 29살의 나이에 고행길을 떠났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그 유명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7일간의 명상 끝에 결국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붓다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상에 아직 깨닫지 못한 채 고통에 사로잡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당시 베다의 어려운 가르침들 보다 비유와 우화, 세속적인 단어의 사용을 통해 보다 쉽게 사람들을 가르쳤던 붓다 덕분에 많은 제자들이 생기고 그를 따랐다.


불교의 핵심 교리는 다음과 같다.


사성제와 팔정도


고 : 고통 = 인간 세상에서 겪는 다양한 고통들

집 : 집착 = 고통의 원인이며 갈망과 무지에서 비롯된다.

멸 : 깨달음의 상태 = 열반

도 : 멸에 이르는 여덟가지 방법 = 팔정도



사성제는 고,집,멸,도를 말하며 이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상태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말한다. 그 중 팔정도는 열반을 향해 개인이 가져야 할 여덟 가지 자세를 말하며 팔정도에서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은 중도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붓다는 사람의 몸이 실체가 없다고 봤다. 내면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채우는 것은 불필요한 찌꺼기 들인데 이 찌꺼기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 스스로를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면 우리는 그 곳에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소유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집착을 이끌어 내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나야만 우리는 진정한 열반에 이를 수 있다.


붓다의 이와 같은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삶으로 인도했다.

이런 붓다가 죽고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다양한 분파들이 생겨났다. 붓다 역시 스스로 집필한 책이 없었기에 그의 사상은 제자들의 기억에 의해 작성되었고 퍼져나갈 수록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전파 되어 갔다. 그렇게 500년 뒤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목표를 둔 대승 불교가 나타난다. 이 대승 불교는 중국의 도가 사상을 흡수하여 한반도까지 들어오게 되고 뿌리 내리게 된다.


대승 불교에는 양대 학파가 있었는데 중도의 중관파와 의식의 유식파로

중도의 중관파는 세계 뿐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도 공의 상태로 보지만

의식의 유식파는 세계가 공인 상태는 인정하나 우리 마음까지도 완벽하게 그러하다고 보진 않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교에서 제일 중요한 가르침은 "무아"이다.

베다 편에서 이야기 했지만 베다를 밑거름으로 불교가 발전했기에 누군가는 베다와 불교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살펴보면 불교와 베다는 세계를 보는 관념 자체가 완벽히 달랐다.

불교는 "무아"를 중요시 한다. 무아는 고정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다는 "진아"를 말한다. 이는 영원 불멸의 내면의 존재가 있으며 그들은 이를 아트만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붓다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자아의 고정된 실체가 없음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믿으며 집착하는 태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해탈에 대한 집착이 해탈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처럼

참된 나를 찾고자 하는 집착이 나와 멀어지게 만든다.




이 말이 왜 불교가 속세에서 떠나야만 했는지, 그리고 소유보다는 무소유를 지향하며 조용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갔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붓다는 우리의 자아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믿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내면에는 그저 찌꺼기들이 쌓여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이 땅에 잠시 살다 가는 존재라고 가정해보자. 조금 더 극단적으로 내일 죽는다고 더 강렬하게 가정해 봐도 좋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열망하고 집착했던 것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고 또 그것이 얼마나 나를 괴롭혔는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내일 죽는다면 사실 나 역시도 굳이 이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이런 행위 역시도 나라는 존재를 사유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위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목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목표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참된 나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하나 참된 나를 찾고자 하는 걸음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일까?


우리에겐, 아니 적어도 나에겐

위대한 그의 가르침을 내면에 온전히 받아들일 용기와 자신이 없다.

그러려면 정말 내면의 수행을 위해 속세에서 멀어져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걸음과 삶에 욕심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것이다.

완전히 덜어낼 수는 없다. 완벽히 덜어 낸다는 말은 교만과 착각일 뿐이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인지하며 저 문장을 가슴에 품고 저 문장을 떠올리며 나를 대입해 보는 과정을 매 순간 적용해 보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나는 또 한번 점검한다.

나를 얼마나 소유하려고 애쓰며 그 소유를 통해 나 자신을 갉아 먹고 있는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걸음들은 항상 값지고 빛난다. 인류는 이런 사람들의 걸음을 통해 지금까지 나아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마치 배터리와 같다는 것을 모르는 듯 하다. 언젠가는 충전하고 점검받아야 한다. 충전하지 않으면 언젠가 난감한 곳에서 멈출지 모른다. 점검 받지 못하면 어디서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가르침 앞에서 나 자신을 충전하고 점검해야 한다. 아마 그것이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동력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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