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ovi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an Feb 05. 2017

꿈속에 한계는 없다.

영화 <뚜르 : 내 생에 최고의 49일>

 아직도 감동과 전율에서, 그리고 안타까움과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를 너무나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윤혁'씨의 놀라운 도전에 환호하고 그 장관에, 그의 모습들에 공감하고 영화 마지막 죽음을 앞에 둔 그의 모습에 너무나 깊은 슬픔을 느꼈다. 

 나에게 있어서 자전거란, '이윤혁'씨와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그의 2009년 그가 도전할 당시 나이 26살, 나의 작년에 나이 26살. 그는 희귀암이었고 나는 연골 염좌로 왼쪽 무릎이 크게 다쳐 줄기세포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도 자전거를 타면 안돼는 위치였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와 나의 삶의 방향성은 명확히 달랐다. 나는 단지 회복하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지만 그는 회복할 가망성이 없는 희귀암이었기에, 더 이상의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그의 꿈을 향해 팀을 모았다. 이 영화는 그의 감동적인 삶에 대한 마지막 회고록이다.



  그는 운동을 사랑했다.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와 유도를 배웠고 군대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누구보다 건강하다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 입대 후 4개월째 휴가를 나온 아들의 배에서 단단한 무언가를 발견한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병원에 방문하고 그가 0.1% 발병 확률을 가진 희귀한 암에 걸린 환자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때 병원에서 말한 그의 삶의 기간은 3개월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싸워냈다. 그러나 암이라는 것은 줄어들었다가 확산됐다가를 반복했고 25번째 항암치료와 함께 그는 치료를 그만두고 그의 남은 일생에 큰 점하나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이 바로 뚜르 드 프랑스 21개 코스 3,500km의 완주였다. 암을 몸에 심고서 그 고난의 코스를 도는데 어떤 의사가 동의하겠는가? 하지만 그의 답은 올곧았다. 그저 나는 내가 달리다 죽을지언정 가겠다는 뚝심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후원자를 모았고 동료를 모았다. 의사와 메카닉, 자전거를 같이 타고 갈 동료, 현지에서 길과 숙박 등 모든 것을 총괄해줄 스텝 두 명 그리고 촬영 스텝들. 이들 10명이서 함께 그의 도전을 지켜봐 주기로,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여정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누구보다 건강해 보였다. 아프지 않았고 그저 주변의 경관과 자신의 숨소리와 귓속을 자극하는 즐거운 음악. 그리고 내가 달리는 이 길이 선수들이 달리던 길이라는 놀라움, 자신이 그 길을 달리고 있다는 자부심에 똘똘 뭉쳐 너무나 행복하고 유쾌했다. 그는 전혀 아픈 사람같이 않았다.

 그러나 숙소에서 링거를 맞고 밖을 바라보던, 혹은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은 그저 암 환자 그 자체였다. 오직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이 그의 말대로 '살아 숨 쉬는 순간'이었다. 

 3,500km는 어마어마한 길이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9번 정도를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이며 그 사이사이 넘어야 하는 산맥들도 엄청나다. 라이더들에게는 업힐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데 말 그대로 대관령 구 도로 같은 굽이진 산길을 쉴 새 없이 올라가야 하는 난 코스들을 말한다. 실제 선수들도 나가떨어지는 이런 코스들을 '이윤혁'씨는 묵묵히 혹은 노래를 부르며 올라갔다. 

 그것이 그가 자신과 싸우는 방법이었다.



 마지막 20번째 코스를 완주하고 그들은 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었다. 21번째 코스는 파리에서 개선문까지 가는 단순한 코스로 사실상 20번째 코스가 마지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곳에서 그의 모습은 밝았고 모든 스텝들은 그의 완주에 환호했다. 사실 스텝들 모두가 처음부터 손발이 맞았던 것은 아니다.

 다투기도 하고 서로 불편한 기색을 역력히 보이기도 했다. 영화감독에게 감사한 것이 그런 모습들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영화 촬영진들과 스텝들과도 싸움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조차도 그대로 비치며 그들의 여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들도 동일한 목표 속에서 다시 뭉쳤다.

 그렇게 그가 개선문에 도착하고 펑펑 울면서 스텝들과 포옹하고 자신이 성공해 냈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모습. 나는 가슴속으로 사람으로서, 또 한 명의 자전거 라이더로서 그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냈다. 2010년까지 뚜르 드 프랑스 21개 코스를 완벽히 완주해 낸 사람은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0.1%의 발병률을 가진 희귀 암 환자 '이윤혁'씨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암이라는 것은 결국 생명을 훔쳐 갔다.  그는 2010년 7월 중순,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년 만에 엄청나게 야윈 그의 모습에 마음이 져려왔다. 누워서 거의 완성되어가는 그의 여정이 담긴 영화들을 보며 조금도 눈을 떼지 못 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그려진다. 

 꿈 앞에서 단 한순간의 포기도 하지 않았다. 일생일대의 마지막 도전에 당당히 성공했던 그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내 자전거 인생에, 그리고 내 삶에 항상 또렷하게 살아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이었기에 그는 이런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싶지만 병이라는 것은, 사고라는 것은 언제 나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다.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세상이 값질까, 내가 작은 고민에 시달릴 필요가 있을까?

 그 어떤 영화보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큰 자극을 줬던 영화였다. 그의 나이 27살, 지금 나의 나이 27. 올해 국토종주, 제주도 종주, 동해안 종주를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 한번 도전의 열기를 불러일으켜 줬다. 아직 내 무릎이 완벽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도 도전을 미루지 않아야겠다. 내 삶에게 미안하지 않게 말이다. 

 상영관이 많이 없어서 굉장히 안타까웠지만 삶에 지치고 회의감에 빠진 분들에게 이 젊은 청년의 놀라운 완주를 지켜봐 달라고 하고 싶다. 그만큼 그의 마지막 여행은 굉장했다. 마지막으로 어두운 밤을 달리면서 그가 했던 가슴 울리는 말을 올리고 글을 마치고 싶다.



feat. 김큰별

매거진의 이전글 웅장하고 신선한 새로운 SF 작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