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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Feb 19. 2017

사죄할 수 있는 기회

영화 <재심>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분할까. 

 영화를 보면서 든 가장 많은 생각이었다. 며칠, 몇 달, 몇 년도 아니고 14년을 타인의 강압에 의해서 버려야 했던 그 아까운 시간, 청춘. 겪었을 고초와 고통. 고뇌와 분노. 그리고 사회에 되돌아 나왔을 때 자신에게 꽂히는 비난의 화살. 빨간 줄. 나는 아니라고 비명을 질러봤자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 다른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 

 이제는 제발 이런 비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재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잘 들어. 변호사는 사과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야."


 먹고살기 위해 변호사를 선택했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이준영'변호사. 영화 초반 그가 이야기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변호사의 정의는 어떻게 보면 사명이 부재된 이 시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직업명 뒤에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기 위해 세상 사람들은 기를 쓰고 노력한다. 좁디좁은 고시원에서 인생 한방을 꿈꾸며 자신의 청춘을 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그들을 변호해주기 위해서? 그런 진실되고 청렴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다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다. 인간은 언제나 휘둘리고 무너진다. 처음에 가진 순결한 의지를 끝까지 이어나가기엔 너무나 큰 희생이 따른다. 그런 희생을 사회가 요구하고 또 유혹한다. 

 그런 그가 '조현우'를 만난다. 무려 14년을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던 불쌍한 청년을 말이다.



 변호사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쩌다 걸린 돌부리 같은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의 피의자 '조현우'를 만나게 된 '이준영' 변호사는 점점 그의 배경과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수사 과정에 대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진심으로 변호하고자 한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양아치였던 '조현우'가 당시의 부패한 경찰들에게 거짓된 진술을 하기까지 그 과정이 심각하게 잔혹해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너무 화가 났다. 지금 당장 내 방 문을 열고 경찰들이 달려 들어와 나를 데리고 으슥한 곳에 밀어 넣은 뒤 갖은 폭력과 협박으로 나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한다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그저 그때에 '조현우'가 경찰들 눈에 걸렸기 때문이지 '조현우'가 아닌 다른 이가 살인범으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사실이 너무나 화가 났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을 남용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그 죄 없는 사람들은 힘이 없다는 이유로 타인의 죄를 자신의 죄라고 말해야 하는 사실이.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그 모든 내막을 파헤치고 자신이 원하던 부와 명예를 집어던진 '이준영' 변호사는 자신에게 닥치는 난관들을 이겨내며 끝내 '조현우'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재심'을 얻어낸다. 기대하던 재심 심판과 '조현우'의 무죄 판결 그리고 공권력을 남용하고 타인에게 죄를 덮어 씌웠던 경찰 일당들의 소탕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영' 변호사의 가치관이 변하는 과정, '조현우'의 억울함, 경찰들의 잔혹함 그리고 그 속에서 아직도 아득한 사회 속 정의를 찾고자 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 정우, 강하늘, 한재영 씨에게 감사를 보낸다. 그들의 매끄러운 연기력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심'의 사실적인 모습을 우리들의 눈에 그리고 마음에 명확히 전달해 주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는 실제로 이 억울한 살인범 누명을 쓴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당시의 경찰들은 감옥살이 중이며 해당 변호사는 지금까지도 재심이 필요한 사건들을 전문적으로 해내고 있다고 한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을 이렇게 영화화해준다는 것이, 그리고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심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으로 발휘되는지 모른다. 잊지 말자. 그의 안타까운 비명을, 혹은 어딘가에 있지 모를 억울한 이의 신임을 외면하지 말자. 

 '재심' 마지막 장면. 재판장에서 '이준영' 변호사의 한마디를 기억나는 대로 적으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 저는 이 자리에 '조현우'씨를 변호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15년 전, 대한민국 사법부가 한 소년에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나왔습니다."


feat.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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